국내 여행을 하려면 일찍 움직이는 것이 지혜다. 그간 몇 번의 경험을 통해 확실하게 깨달았다. 특히 공휴일이나 주말에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현충일을 맞아 교회 여름 수련회 장소를 사전 답사하러 일찌감치 설악산으로 출발했다.
예전과 비교해 보면 서울에서 강원도로 떠나는 여행은 굉장히 편해졌다. 서울 양양 간 고속도로 개통으로 교통시간이 많이 단축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통체증이 발생하면 새로운 고속도로도 무용 지물이 된다. 어쩔 수 없이 도로 위에서 많은 시간을 견뎌야만 한다. 그래서 일찍 출발하는 것이 여러모로 유리하다.
세 부부가 함께하는 여행이었다. 한 차로 가기로 정하고 잠실에서 만나 출발하기로 했다. 아침 식사로 봄에 직접 쑥을 캐서 만든 쑥떡을 올리브유를 둘러 구워서 꿀과 함께 챙겼다. 새벽 5시에 기상해서 부지런하게 서둘렀음에도 한 시간이 지나서야 집을 나섰다.
아침은 언제나 가슴 설레는 신선함을 품고 있다. 서울 도심의 한가한 도로가 느긋한 여유를 선물한다. 여행이 주는 기대가 있어 마음도 설렌다. 중간에 한 부부를 만나 합류 지점으로 향했다. 이른 아침에 만나는 반가움에 여행의 기쁨이 퐁퐁 솟아나고 즐거운 대화 속에 강북에서 잠실까지도 순식간이다. 한 차로 모여 마음이 부풀어 왁작지껄하게 떠들며 설악산을 향해 힘차게 달린다.
서울 교외를 벗어나는 도로가 막힘 하나 없는 원활한 소통으로 마음까지 뻥 뚫린다. 꽤 긴 시간 차를 타지만 정담이 이어져 지루함은 전혀 끼어들 틈이 없다.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언제나 즐겁다. 행복은 사람들과 유대감을 나누는 것임을 온몸으로 느낀다. 가는 길에 가평 휴게소에 들러 챙겨 온 쑥떡으로 아침으로 먹었다. 내가 직접 쑥을 캐서 만든 정성이 가득 담긴 떡이라 나누어 먹는 기분이 더 특별하다. 과일도 함께 곁들여 입도 마음도 더한층 즐겁다.
두 시간 남짓 차를 달려 드디어 목적지인 설악산에 도착했다. 잘 자란 소나무들이 군락을 이룬 울창한 숲이 청정한 자연의 정기를 아낌없이 베풀어준다. 멀리 울산바위의 웅장한 위용이 한눈에 들어온다. 예전에 울산바위에 오를 때 고소공포증으로 느꼈던 두려운 감정이 내 속에서 뭉게뭉게 피어난다. 추억은 언제나 과거를 현재로 이끈다.
사전 답사장소인 속초 청소년 수련관에 들렀다. 공간이 널찍하고 깨끗하다. 운동장과 숙소동 그리고 주차장 등, 주변 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수양회를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장소라는 확신이 든다. 관리인이 없어 자세히 돌아보지 못한 아쉬움은 있지만 찾아온 목적을 조금이라도 달성했다는 편안한 마음이다.
시설을 돌아보고 나서 설악동으로 이동했다. 다행히 방문 차량이 많지 않아 수월하게 차를 입구에 주차를 하고 설악동으로 걸어 들어갔다. 흥미롭게도 입구에서 바쁘게 나무 위를 오가는 청딱따구리 한 쌍을 만났다. 썩은 나무에 구멍을 파고 들락날락하고 있는 것을 보아 새끼도 있는 것 같았다. 평소라면 그냥 지나칠 상황이지만 얼마 전 숲해설가 교육에서 배운 지식이 있어 그 사실을 눈으로 확인하게 되어서 너무 기뻤다.
청딱따구리
국립공원에 입장할 때 예전에는 사찰 관련 문화재관람 비용을 내고 입장해야 했었는데 폐지가 되어 우리는 자유스러운 마음으로 당당하게 들어간다. 괜히 우쭐한 기분이 든다.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불합리한 점이 개선이 되었다는 것으로 마음이 즐겁다. 하지만 약간 거슬리는 점은 나라에서 비용을 보전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마치 절에서 관람객들에게 시혜를 베푸는 것처럼 홍보물을 게시해 놓아 눈살이 찌푸려진다.
오랜만에 찾은 설악동에 저마다 기억을 소환하며 추억의 보따리를 푼다. 학창 시절 수학여행의 필수 코스였던 설악산이었고 여름마다 단골로 찾았지만 코로나 여파로 한동안 그러질 못했다. 그런 아쉬움을 달래며 광장을 지나 비선대를 향해 걸음을 옮긴다. 사전에 계획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기왕에 온 설악산을 조금이라도 맛보고 싶었다. 울창한 숲 속을 걷는 발걸음이 가볍다. 서늘한 바람도 불어 상쾌함이 배가된다. 등산객도 많지 않은 점이 한결 더 여유롭다. 숲에는 소나무뿐 아니라 갈참나무와 졸참나무가 많이 보인다. 지루하지 않게 산목련 꽃도 만난다. 걷는 걸음걸이가 전혀 힘들지 않고 가뿐하다. 강원도 깊은 산속을 걷는 기쁨이 온몸에 차오른다. 오르다 만난 계곡물이 너무나 맑고 깊어 푸른빛이 울렁거린다. 자연이 빚어놓는 아름다운 풍경에 저절로 매료되어 세상 일은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마침내 비선대에 올랐다. 깎아지른 기암 아래 속이 훤히 비치는 물이 하늘을 그대로 담고 힘차게 흘러간다. 너른 바위에 새겨진 한자들이 흘러간 세월을 넌지시 건넨다. 한동안 머물러 계곡이 주는 감동을 맛본다.
비선대
비선대를 내려와 속초에서 유명한 섭국을 먹었다. 자연산 홍합으로 요리한 섭국이 독특한 입맛으로 시장기를 잠재웠다. 다음 여정은 화진포였다. 김일성 별장과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이 있는 곳이다. 화진포는 내륙 깊숙이 자리를 잡아 호수처럼 보인다. 바닷물과 민물의 비율이 3대 7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유려한 곡선을 보이는 해변 주변에는 자태가 빼어난 소나무들이 자라고 하얀 백사장이 펼쳐져 있다. 백사장에는 갯메꽃이 소담스럽게 피었다. 이른 계절인데도 바닷물속에서 뛰노는 청춘들의 모습이 싱그럽다. 부드러운 모래를 맨발로 걸으니 밀려오는 파도가 발목을 간지럽힌다. 바다는 다양한 푸른빛을 머금고 끝없이 펼쳐져 한가롭다.
화진포
화진포 풍경
산과 바다를 마음껏 누리고 아내가 가고 싶어 했던 박포수 막국수집을 찾아 나섰다. 오후 6시도 안 되어 도착했는데 장사가 파했다. 하는 수 없이 시내로 들어와 명태회를 곁들인 막국수로 아쉬움을 달래고 서울로 발길을 돌린다. 오는 길이 다소 막혔지만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끊임없이 나누며 다음을 기약했다. 한 분이 식사를 온전히 섬겨주셔서 더없이 즐거운 설악산 나들이를 마쳤다.
여행은 많은 것을 선물한다. 익숙하지 않은 장소가 주는 새로움이 몸과 마음을 깨운다. 모든 것을 온전하게 계획하여 여행하는 것이 좋겠지만 조금 부족하고 여의치 않아도 나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설악산 나들이도 원래 사전답사가 목적이어서 휴일인 관계로 관리인 부재로 갈 이유가 없어졌지만 호기롭게 나서서 좋은 시간을 보냈다. 기회는 늘 주어지지 않는다. 마음이 앞서면 몸이 따라가면 된다. 앞으로도 여행을 갈 수 있는 틈이 생긴다면 절대로 놓치지 않고 무작정 나설 계획이다. 여행은 반전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흔치 않은 삶의 선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