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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야, 청산도 가자

청산도를 무박으로 다녀오다

by 정석진

섬은 그리움이다. 섬은 누구에게나 낭만을 불러일으킨다. 특별한 환경이 자아내는 신비로움일까? 망망대해에 떠 있는 푸른 섬은 찾는 이들에게 아스라한 동경의 대상이 다.


보리와 유채로 넘실대는 푸른 청산도에 대한 소식을 간간히 전해 들었다. 돌담길이 정겹고 걷기에 그만이라는 섬에 대한 이야기는 언젠가는 꼭 가보겠다는 의지를 다지게 했다. 올봄에 마침내 청산도에 가게 되었다. 은행동우회 산하 사진부에서 무박 2일 청산도 출사가 결정된 것이다.


사진에는 조예가 없지만 핸드폰으로 풍경 사진을 담는 것을 좋아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참여했다. 늦은 밤 11시 30분에 서울에서 출발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일행은 스무 명이 조금 넘는 상황이었는데 여성분들도 있었고, 연배가 적지 않은 분들인데도 무박의 힘든 일정을 선뜻 참여하는 열정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베개를 미리 준비해서 장기간 차를 타는 불편함을 조금은 줄일 수 있었다. 다섯 시간을 넘게 버스에서 졸다 깨다를 반복하며 새벽 다섯 시 조금 지나 완도항에 도착했다. 7 시에 배를 타야 하기에 아침은 준비한 김밥으로 간단하게 해결을 했다. 이른 시간인데도 잘도 넘어간다. 식욕이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뱃시간이 되어 자동차까지도 태우는 페리에 올랐다. 한 시간 배를 타는 동안 푸른 바다를 가르며 흰 포말이 이는 바다를 본다. 꽤 오랜만에 보는 바다인데도 익숙한 일처럼 특별한 감흥이 일지 않아 선내에서 시간을 보냈다. 밤 사이 지친 탓일까? 아니면 호기심이 줄어든 탓일까? 한참을 지나 섬 가까이에서 바라본 바다는 온통 양식장 투성이다.


배에서 내려 섬에 오른다. 항구 초입의 청산도 심벌의 조각이 눈에 들어온다. 다소 복잡한 틈에 배치가 되어 조금은 정신 사납다. 곧바로 청산도를 일주하는 버스에 올랐다. 섬을 돌며 풍경 좋은 곳에 정차해서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섬 구경에 나섰다. 가는 길가에 폐어구들이 쌓여서 산을 이룬 모습이 조금은 눈에 거슬린다. 섬 주위가 온통 양식장이어서 그런지 어구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단풍나무로 터널을 이룬 길을 지난다. 큰 렌즈를 장착한 사진기를 든 사진에 열심인 분들이 사진을 담기에 좋은 장소라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지금도 아름다운 길인데 단풍이 들면 눈부시게 빛나는 장관을 보게 될 것 같다.


드디어 기대했던 청산도의 독특한 풍광을 만난다. 간간이 보이던 유채밭이 본격적으로 펼쳐진 장소에 왔다. 너른 밭을 넘실대는 노란 유채꽃의 향연이 압도적인 풍경으로 다가온다. 바람에 살랑대는 만개한 유채꽃이 건네는 진한 향기가 코 끝을 스친다. 푸르름이 넘실대는 보리밭과 대조를 이루며 싱그러움이 가득하다.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 없는 길을 헤매며 언덕을 오른다. 발품을 파는 만큼 색다른 정경을 만난다. 멀리서 보는 경치도 좋지만 가까이 다가가서 보는 유채꽃들의 향연이 무척 인상적이다.


돌이 많이 나는 섬이어서 섬의 또 다른 볼거리인 돌담마을을 찾아간다. 촘촘하게 쌓아 올린 구불구불한 돌담길이 정겹다.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쌓은 담이지만 전혀 작위적이지 않다. 돌담 사이로 마당이 보이고 꽃을 가꾸는 섬사람들의 고운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어 마음도 따스해진다.


마침내 청산도의 하이라이트인 당리에 도착했다. 서편제 영화의 명장면이 연출된 곳을 찾아 길을 걷는다. 때에 맞게 흥겨운 남도가락도 흘러나온다. 덩실덩실 춤을 추고 싶지만 마음뿐이다. 그 길 따라 걸으니 묘한 느낌이 일어 사진에 담는다. 언덕에 올라서니 탁 트인 풍경에 유채꽃밭이 끝없이 바다까지 펼쳐져 장관을 이룬다. 구릉마다 중첩된 유채밭의 향연이 절정에 치닫는다. 구불구불한 길 따라 유채꽃이 넘실대고 중간에 소나무 드리운 풍경이 숨 멎도록 아름답다. 어디를 찍어도 절정인 봄의 풍경이 빛난다. 청산도를 만끽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바닷가를 도는 둘레길을 걸었다. 한적하고 여유로운 산책길을 걷고 싶었다. 하지만 길이 콘크리트로 포장되어 걷기에는 편했지만 도심을 걷는 것 같은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길가에 수선화가 줄지어 피어있지만 그다지 감흥은 느낄 수 없다. 간간이 만나는 흰 해당화와 각시붓꽃 같은 야생화가 아쉬움을 달래준다. 길가에 식재한 상록수인 굴거리 나무가 독특한 자태를 뽐내지만 그다지 조화롭게 보이지는 않는다. 대부분 양식장인 바닷가 경치여서 실망이었는데 산책 길 따라 바다만 보이는 풍경을 만나니 몹시 반갑다. 푸른 바다도 보이고 기암과 조화로운 소나무의 자태가 어우러진 경치를 보게 되어 숨을 돌린다.


유채와 보리밭은 매혹적인 풍경이었고 넘실대는 유채꽃의 향취도 기억에 남는다. 섬이 부유해지니 대리석 조각으로 치장한 분묘들이 곳곳에 보이고 폐어구들이 산재해 조용한 섬의 자취가 사라진 느낌이다. 바닷가는 온통 양식장으로 뒤덮여 있고 둘레길은 죄다 콘크리트가 포장된 넓은 길이어서 숲길을 걷는 흥취는 전혀 느낄 수가 없다. 개발은 해야 하지만 자연을 최대한 지켜나가며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데 지나친 인위가 불러온 파장이 너무 큰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 아쉬움이 크다. 꿈은 꿈으로 아름다운 것일까? 그래도 다행인 것은 점심 후 섬을 돌다 돌아오는 길에 할아버지께서 경운기를 태워 주셨는데 그나마 사람 사는 정을 느낄 수 있었다는 점이다. 경치는 마음에 담았지만 추억은 그다지 가슴에 새겨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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