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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석진 Aug 13. 2023

오밤중에 물난리

교회 수련회에서 물난리를 겪다.

교회 수련회를 와서 생각지도 못한 물난리를 겪었다.


첫날은 비가 오지 않았고 일정도 잘 마무리했다. 수련회 전체 진행책임을 내가 맡았고 가장 중요한 행사의 사회도 보게 되었다. 그 행사는 전체가 참여하고 즐기는 오락 시간으로 스킷과 율동이 있는 시간이다.


이틀째 밤이 공연일이었다. 일기예보에 우리가 머무는 지역에 호우주의보가 발령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워낙 무더웠기에 비가 내리면 오히려 시원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공연 전날 밤은 오후에 커피를 마셔서인지 밤잠을 설쳤지만 말똥말똥한 시간에 공연 멘트를 정리하는 시간이 되었다. 공연이 시작되며 다소 긴장이 되긴 했지만 여유 있게 박수로 아이스 브레이킹을 하며 시작했다.

공연장소가 비좁아 일부만 의자에 앉고 대부분 바닥에 앉아야 해서 공연을 신속하게 진행해야 했다.


유아들과 부모들이 꾸미는 가족 율동으로 무대를 시작했다. 춤추는 아이들의 해맑은 미소와 부모들의 밝은 표정이 보는 우리들의 마음을 열게 했고 웃음을 짓게 했다. 이어지는 캠퍼스 자매들의 오즈의 마법사 스킷은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코믹한 공연으로 연방 아이들을 까르르 웃게 했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명랑한 웃음소리에 덩달아 따라 웃었다. 이어서 초등학교 여학생들이 꾸미는 율동은 수준이 뛰어나 경탄을 자아냈다. 취미 수준이 아닌 프로나 다름없는 몸짓에 저마다 탄성이 이어졌다. 덩달아 공연하는 아이들도 신이 났다. 뒤 이어 스킷을 겸한 줌바댄스 공연이 이어져 흥겨운 무대를 만들었고 곧바로 개그맨 김미려의 김여사 버전으로 김여사 행복 찾기를 여장하고 천연덕스럽게 연기를 펼쳐 웃음을 자아냈다. 가장 압권인 공연이 마지막에 있었다. 형제가 트로트 가수복장으로 개사한 나훈아의 영영을 거의 표절할 수준으로 몸짓을 흉내 내며 노래를 불러 포복절도하게 만들었고 뒤이어 자매들이 홍진영의 사랑의 밧데리를 성령의 밧데리로 개사하여 보여준 율동은 댄스가수들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뛰어나 보는 이들의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더구나 시니어 자매들의 사진을 가면으로 쓰고 공연하여 궁금증을 유발하며 무대를 완전히 사로잡았다.

7가지 공연이 펼쳐졌는데 저마다 웃음이 있고 평소에 보지 못했던 끼를 발견하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콤팩트한 진행으로 1시간을 단축하여 끝냈다.


후련한 마음으로 공연을 마쳤는데, 그런데 웬걸!  3층 숙소가 물바다가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현장에 가보니 난리도 아니었다. 공연 시간 동안 폭우가 쏟아졌던 것이다. 옥상의 빗물이 3층 베란다를 통해 아래로 흘러가야 하는데 배수구가 너무 좁아 베란다가 물바다가 되었다. 이 물이 방에 쉼 없이 흘러들고 복도까지 물이 넘치는 물난리가 났다.


비가 퍼붓는 속에도 형제들은 베란다의 물을 퍼내며 비를 흠뻑 맞았고 자매들은 손에 잡히는 대로 각종 도구와 수건으로 실내의 물을 퍼냈다. 퍼붓는 비로 퍼내도 물이 금방 차올랐다. 계속되는 폭우에 모두가 하나같이 정신없이 물을 퍼냈다. 그 사이 119 출동도 했고 관리실 직원들도 비상 출동을 했다.


그러다 배수구가 막힌 것을 조치를 하면서 끝없이 물을 퍼내서 물길을 잡았다. 하지만 방에는 흥건한 물이 여전했다. 오밤중에 너나없이 달려들어 물을 밀어내고 닦아내고 훔쳤다.


그러다 진정이 되니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이 상황을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 와중에 행사가 빨리 끝났던 것이 불행 중 다행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한 시간이 더 흘렀다면 완전 침수가 되고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될 뻔했던 것이다.


한동안 물을 퍼내고 닦아내며 소동이 끝나고 마무리가 되었다. 놀라운 점은 어느 누구도 불평 하나 없이 내 일처럼 발 벗고 나서서 갑작스러운 재난에 재빨리 대처했다는 점이다. 성숙한 형제자매들이 참으로 자랑스러운 순간이었다.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선교사님과 리더들이 모여 감사와 이후의 안전을 비는 기도시간을 가졌다. 다행히도 별 탈 없이 밤이 지나갔다. 이튿날, 우리들의 발 빠른 대처와 수고에 청소년 수련관의 관계자도 우리에게 깊은 감사를 전했다.


아닌 밤 중에 홍두깨라는 말이 딱 어울릴 정도로 마치 한바탕 꿈을 꾼 것 같다. 즐거운 공연을 마치자마자 그런 난리를 겪었으니...

선조들의 아름다운 미덕이 떠오른다. 예기치 못한 환난에 기꺼이 서로 도우며 살았던 상부상조의 정신을.

우리도 갑자기 들이닥친 어려움에 조금도 요동하지 않고 한마음으로 똘똘 뭉쳐 이겨냈다. 여하한 고난에도 모두가 힘을 합치면 극복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는 사실을 몸으로 체감하고 오히려 이런 위기를 통해 하나가 되고 서로 사랑으로 결속하는 계기가 되었다.


잊지 못할 추억 하나를 기억의 창고에 담았다. 감사 제목이 하나 늘었다.

청초호 전경

#에세이 #물난리 #수련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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