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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석진 Jun 29. 2023

아들이 입원을 했다

건강한 아들이 병원에 입원했다. 운동이 우선순위였던 아들이 며칠 전 가슴이 답답하다고 하더니 가까운 병원에서 기흉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그 병은 폐에 구멍이 생겨 공기가 차는 질환으로 주로 흡연자에게서 발병한다고 한다. 그런데 아들은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아마도 격심한 운동의 충격으로 폐에 문제가 생겨난 것 같았다. 처음 듣는 아들의 병에 걱정이 앞섰다.


곧바로 대학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고 아내가 간병인으로 따라갔다. 치료는 폐에 구멍을 뚫어 공기를 빼내는 것이다. 시술 후 환자의 거동이 쉽지 않아 곁에서 세심하게 돌봄이 필요했다. 하루를 꼬박 아내가 병원을 지켜야 했다. 아내도 출근을 해야 해서 아들 간호를 나와 번갈아 하기로 했다.


내가 교대로 병원에 가기 위해 짐을 꾸렸다. 긴 시간을 무료하게 보내기보다 그간 읽지 못한 책들을 실컷 봐야겠다는 생각에 4권의 책을 챙겼고 간단한 생활도구들을 가방에 담았다.


입원한 환자의 보호자가 되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보호자로 병원에 머무르려면 무조건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했다. 밖에서는 코로나를 어느 정도 벗어났지만 병원은 아직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번거로운 절차를 마치고 병원에 들어섰다. 그간 건강 검진받는 일 외에 큰 병원에 올 일이 없었는데 너무 많은 사람들이 병원을 가득 메우고 있어 놀랐다. 아픈 사람이 이렇게나 많을까!


건강할 때 건강을 더욱 챙겨야 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병원이라 아픈 사람들이 당연히 있어야 하겠지만 생각보다 너무나 많은 이들이 있었다. 어려움에 닥쳐서야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깨닫는 삶이 참으로 안타깝다.


손목에 보호자 인식용 띠를 두르고 바코드를 읽혀야 병실을 출입할 수가 있었다. 아들의 병실은 4인실로 공간이 그리 넓지 않았고 휘장이 처져있어 조금 답답했다. 아들은 산소호흡기를 코에 달고 있었고 옆구리에 호스가 기계와 연결되어 있는 체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외관으로 보기에 견딜만해 보였는데 아들은 꽤 아프다며 너스레다. 환자 침대 곁에 보호자용 의자가 옹삭 하게 놓여 있었는데 펼치면 간이침대가 되었다.


아들의 시술은 마쳤지만 재발가능성이 있어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수술을 해도 주말에는 퇴원이 가능하다고 해서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환자가 쉬어야 할 것 같은데 아들이 온통 핸드폰에 빠져 몇 마디를 했더니 엄마에게 톡이 온다. 아들에게 잔소리하지 말라고 그렇게 부탁했는 그러지 말라며...


책을 펼쳐 들었는데 답답한 환경에 의자도 불편해서 집중이 되질 않았다. 그렇다고 병실을 거닐기도 어려워 시간 보내는 일이 쉽지 않았다.


저녁 식사시간이 되어 나로서는 이해가 안 되었지만 아들은 치킨을 시켜 먹었고 환자식을 내가 먹게 되었다. 수술하게 되면 먹을 수 없으니 미리 영양보충을 해야 한다나 뭐라나....


저녁을 먹고 나서 바람을 쐴 겸 밖으로 나가 경희대 교정을 돌았다. 비가 오지 않아서인지 후덥지근한 날씨였다. 거목들이 우거진 숲길을 올라 언덕 마루에 서니 건물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한참을 앉아서 바람을 맞았다.


저녁에 따로 할 일이 없어서 일찍 잠을 청했다. 하지만 부족한 공간에 의자를 침대로 펼치니 통로가 없어서 자다 깨다 해야 했고 침대가 너무 비좁아 운신하기가 어려웠다. 그렇게 밤을 새웠다.


평소에 깔끔한 아들은 씻지 못한 것이 아주 답답했는지 머리를 감고 싶어 했다. 나 같으면 거동도 불편해서 그런 생각을 전혀 안 할 것 같은데 아들은 아니었다. 샴푸를 사다 불편한 화장실 세면대에서 아들의 머리를 겨우 감겼다. 시원해하는 아들을 보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수술을 하기로 해서 사전 동의서를 썼다. 수술로 예상되는 최악의 상황들을 들으니 걱정이 마구 몰려왔다. 의례 하는 절차라지만 기도가 절로 나온다.


기대와 다르게 수술이 계속 미뤄졌다. 응급환자가 생기면 후순위가 되는 것이다. 아들과 마찬가지로 기다림이 좌불안석이 되었다. 수술도 간단치 않아 걱정인데 하릴없이 기다린다는 것이 더 큰 고역이었다.


가슴 졸이며 기다리다 밤 7시가 되어서 수술실에 들어갔다. 위급한 수술이 아니라지만 애가 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걱정과 염려의 시간이 지나고 회복실로 옮겼다는 연락을 받았다. 가슴을 쓸어내리면서도 회복하는 과정도 걱정이 된다.


살아가면서 인력으로 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 많다. 달리 생각해 보면 모두 살얼음판 위를 걷는 매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나날들을 아무렇지 않게 살아간다는 것이 정말로 기적이 아니고 무어랴!


늘 겸손해야 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잃고 나서야 뒤늦게 깨닫는 것은 분명 어리석은 일이다.


장맛비가 내린다. 우산을 썼지만 젖는 것을 막을 도리가 없다. 우리 삶이 딱 그런 것이 아닐까?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고 감사를 잊지 말아야겠다.


아들의 쾌유와 더불어 모든 아픈 이들의 건강을 기도드린다.

#에세이 #병원 #입원 #수술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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