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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알면 사랑이 보인다

나의 숲 해설 (느릅나무, 마로니에, 팽나무 이야기 )

by 정석진

숲을 이루는 가장 주요한 요소 중 하나는 나무다. 나무는 우리가 살아 숨을 쉬며 살아갈 수 있는 근간이다.

사람이 고마움을 모르면 사람취급을 받기 어렵다. 우리는 의외로 너무도 쉽게 감사함을 잊고 산다. 특히 나무를 포함한 자연이 주는 베풂을 존재하지도 않은 듯 기억에서 지우고 살아간다.


숲해설가 공부를 하면서 자연에 대해 알면 알수록 자연이 더 귀한 존재로 다가온다. 숲해설가 마지막 과정으로 야외 시연을 준비를 했다. 서울 숲에 있는 식물들 중에 몇 가지를 골라 사람들에게 해설을 해보는 것이다. 내가 고른 나무는 느릅나무, 가시칠엽수, 팽나무다. 이들은 교목으로 이른바 키 큰 나무들이다.


나무는 교목과 관목으로 나눈다. 교목은 지상 3미터 이상 자라는 큰 나무이고 관목은 지상 3미터 미만의 작은 키 나무를 이르는 말이다. 교목을 좀 더 세부적으로 설명해 보자면 다년생 목질인 곧은 줄기가 있고 줄기와 가지가 명확히 구분이 되며 중심 줄기의 신장 생장이 현저한 수목이다. 나무줄기와 가지의 구별이 뚜렷하고 나무줄기는 1개이며 가지 밑부분까지 나무줄기의 길이가 길다. 땅에서부터 나오는 줄기 하나로 시작되어 자라다가 중간에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특성을 갖는다.


이러한 교목의 생존전략은 경쟁우위를 점하기 위해 영양생장에 주력을 한다. 너도 밤나무와 같은 경우는 30-40년 동안 몸체만 키우다 자라고 나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상처가 생기면 빨리 구획화해 상처부위를 완전히 격리시켜 새로운 조직보호를 위해 조직 일부를 버린다. 가지와 가지 위쪽 줄기는 분리되어 있어 개별 가지는 거의 독립적으로 필요한 에너지를 자급자족하며 그늘 진 가지는 고사시키며 살아간다.


싹을 틔우면서 시작되는 수많은 장애와 고난을 지나오며 아름드리 성장한 고목은 그 자체가 경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거목을 마주하면 존경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공연히 마음이 푸근해지고 편안해진다. 마치 할머니와 엄마의 따스한 품속 같은 평안함을 누린다.


거목으로 우뚝 자란 오늘의 주인공들을 만나보자.

느릅나무 (국가생물종지식징보시스템에서 퍼옴)

느릅나무는 사람들에게 그다지 잘 알려지지 않은 나무다. 하지만 이 나무에 대하여 알면 알수록 긴 역사를 지니고 있고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나무이고 우리 삶과도 깊은 인연이 있다는 사실에 애정이 간다.


북구에서는 물푸레나무가 아담으로 변하고 느릅나무가 이브로 변했다는 신화가 있다. 느릅나무의 열매를 유협이라고 하는데 중국 한나라에서 사용하는 동전을 유협전이라고 불렀다. 이토록 느릅나무는 동서양을 아우르며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유럽에서는 수녀원이나 교회 또는 광장 입구에 복종과 헌신의 상징으로도 심는 품위 있는 나무다.


느릅나무는 계곡이나 하천변의 토심 깊은 비옥한 땅에서 잘 자란다. 그늘과 추위를 잘 견디지만 바닷바람과 공해에 약하다. 이 나무의 특징 중 하나는 일반 나무보다 많은 양의 이산화 탄소를 흡수하고 가장 많은 산소를 발생시키는 수종 중 하나로 아주 고마운 존재다. 좋은 점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느릅나무 목재는 물에 잘 썩지 않는 내휴력을 가지고 있고 휘어지는 성질이 뛰어나며 잘 갈라지지 않는 특질을 지닌다. 그래서 선박재, 교량재로 쓰이고 관의 재료로 쓰여 장례나무로 불리기도 한다.


우리 삶 속의 느릅나무는 구황작물이기도 했다. 보릿고개 시절 부드러운 속껍질에 전분이 많이 함유된 내피를 우려내어 소나무 내피 가루와 섞어 먹었다. 어린잎은 나물로 먹거나 떡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나무의 껍질도 질겨서 밧줄을 만들거나 옷감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더구나 느릅나무는 한방에서 유용한 약재로도 이름이 높다.


느릅나무와 가장 유사한 나무가 참느릅나무로 가로수로 많이 심는다. 그 차이는 잎으로 구분하게 되는데 느릅나무의 잎은 거칠고 뒷면의 맥에는 털이 있지만 참느릅나무의 잎은 털이 없고 잎에 광택이 있다.


영국에도 느릅나무가 많았다. 느릅나무는 대개 흡지(식물의 뿌리 관점에서 자란 줄기가 땅을 뚫고 올라온 것)로 번식해서 형제로 줄줄이 이어서 자라거나 무리로 자란다. 뿌리로 연결되어 마을을 보호하였지만 병충해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 네덜란드 느릅병이 전파되어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된 것이다.


강원도 삼척에는 400년 된 느릅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을 정도로 오래 산다.

느릅나무는 오랫동안 사람들과 깊은 인연을 맺으며 살아온 아름다운 나무가 분명하다.


다음은 가시칠엽수에 대해 알아보자

가시칠엽수 (네이버에서 퍼옴)

가시칠엽수는 흔히 마로니에로 부른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동숭동 마로니에 공원으로 잘 알려져 있고 대중가요에도 담겨 친근한 이름이다. 또한 마로니에는 세계인들이 사랑하는 나무다. 플라타너스, 히말라야 시다와 더불어 세계 3대 가로수로 선정될 만큼 잘 알려진 나무다.


마로니에는 어려서는 그늘에서도 잘 자라는 음수지만 자라면서 햇빛을 좋아한다. 우리나라 중부 이남의 토심이 깊은 곳에서 잘 자란다.


사실 마로니에는 목재는 중요한 건축에 쓰기에 너무도 부드럽고, 땔감으로 쓰기에도 잘 타지 않는다. 열매도 그다지 영양이 없고 오히려 글루코사이드 같은 독성물질이 함유되어 건강에 해롭다. 심지어 돼지조차 먹지 않는다. 그럼에도 시선을 독차지하며 사랑받는 이유가 궁금한 나무다.


마로니에는 나무들이 잠들어 있는 동안에도 겨울 내내 싹이 반짝인다. 봄에는 길게 갈라진 손가락을 자유롭게 펼치며 상쾌한 봄바람에 손을 흔든다. 다른 나무들이 감히 싹을 내밀지 못할 때 가장 큼직하고 가장 푸른 손바닥 잎사귀를 내민다. 비장의 무기도 감추고 있는데 다른 나무들이 봄빛을 입는 동안 로켓 같은 꽃차례를 선보인다. 크리스마스트리 같고 크림 같기도 하고 거품 같은 큰 꽃들로 뒤덮인다.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은 5월마다 이 꽃을 보기 위한 행차를 했으며 프랑스 귀족들도 사랑하는 나무로 베르사유 궁전뿐 아니라 파리의 에펠탑에도 마로니에가 심겨 있다.


마로니에는 Horse chestnut라고 하는데 말과 연관성을 굳이 찾자면 마로니에 잎 꼭지가 떨어진 뒤 남겨진 무늬가 말 편자를 닮아서 붙여진 이름일 수도 있고 마로니에 열매를 벗겨 보면 윤기 나는 말궁둥이를 닮기도 해서 그럴 수도 있다. 다른 한 편으로 껍질 밖으로 내미는 동그랗고 반짝이는 열매가 깜짝 놀랄 말의 눈을 연상시켜서 그렇다는 이야기도 있다. 미국 사람들도 이 나무의 사촌인 미국칠엽수를 buckeye (수사슴 눈)이라고 부르는데, 원주민들이 동그란 갈색 열매가 사슴 눈을 닮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란다.


마로니에가 단지 관상용으로만 그치는 것은 아니다. 밀원식물로서도 아주 훌륭한 나무다. 국립산림과학원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 대표 밀원수인 아까시나무보다 1.7배가 많은 꿀 생산량을 가졌다고 한다.


마로니에와 비슷한 일본 칠엽수가 있다. 거의 비슷하지만 열매에 가시가 없고 마로니에는 꽃잎이 짙은 분홍색인데 일본칠엽수는 그렇지 않다. 일본 칠엽수 열매는 마로니에 보다 독성이 약해 일본에서는 탄닌을 제거하여 떡을 만들어 먹는다.


우리나라에 최초로 들어온 마로니에는 1912년에 네덜란드 공사가 고종의 환갑을 기념하여 선물한 나무가 덕수궁 석조전에 자라고 있다. 대학로에는 마로니에 보다 일본 칠엽수가 주로 심어져 있는데 일본인 교수가 1928년에 심었다.


영국과 아일랜드에서는 마로니에 열매로 콩커스라는 게임을 하고 놀았다. 열매를 줄로 매달아 서로 깨트리는 게임으로 세계대회도 개최된다고 하니 그들의 마로니에 사랑이 놀랍다.

마로니에 꽃말이 낭만이라고 하는데 우리에게는 마로니에는 우수에 젖은 연인의 뒷모습이 저절로 떠오르는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나무다. 아름드리 칠엽수가 자라는 대학로나 남산공원을 연인들이 많이 찾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마지막으로 팽나무에 대해 알아본다.

팽나무(국가생물종지식징보시스템에서 퍼옴)
팽나무 열매(국가생물종지식징보시스템에서 퍼옴)


팽나무는 느릅나무과의 나무다. 느릅나무과에는 우리에게 너무 친숙한 느티나무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팽나무를 잘 모른다. 이 번 기회를 통해 팽나무를 잘 알게 되어 지나치나 만나면 반가운 인사를 나누면 좋겠다.


팽나무는 우리나라 정자목 중 느티나무 다음으로 많이 심어져 있는 수종이다. 그래서 천연기념물로 많이 지정이 되어 있다. 82호, 161호, 309호가 있는데 수령이 무려 500년이나 되었다.


팽나무는 양지와 음지를 가리지 않고 잘 자라며 성장이 빠른 편이고 추위에도 강하고 공해에도 견디며

바닷물에도 끄떡없는 강하고 적응력이 뛰어난 나무다. 뿌리가 잘 발달되어 있어 강풍과 해풍에도 강하다. 남부 지방에서 포구나무로도 불리는데 배가 드나드는 포구에는 팽나무 한 두 그루가 심어져 있기 때문이다.


팽나무의 열매는 10월에 성숙하는데 달고 먹을 수 있다. 이 열매는 아이들의 간식이 되기도 하고 새들의 먹이로 사랑받는다. 익기 전에 초록색 열매를 가지고 아이들은 팽총을 만들어 놀았다. 대나무로 만든 팽총으로 열매를 쏘면 팽! 하고 날아간다고 하여 팽나무로 불리는 이야기도 있다. 팽나무의 잎은 홍점알락나비, 왕오색나비의 애벌레의 터전이다. 나비 애벌레가 이 잎을 먹고 자라고 성충이 되어 다시 팽나무에 산란을 한다고 한다.


팽나무에도 유사종이 있는데 열매 색에 따라 검팽나무 노랑팽나무로 나뉘고 어린잎의 색이 다른 자주팽나무 그 외에 섬팽나무, 산팽나무, 왕팽나무, 장수팽나무가 있다.


안다는 것은 이해하는 것이고 이해하는 것은 더 깊은 사귐으로 가는 발걸음이다. 첫눈에 반하는 사랑은 우연일 따름이다. 함께하는 시간을 통해 익어가야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나무를 바라볼 때 앎이 없다면 그저 하나의 나무일 따름이다. 그러나 내가 이름을 불러 줄 때는 하나의 나무로 머무를 수 없다. 이름뿐 아니라 나무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알게 되면 이제는 특별한 존재가 된다. 아름드리 거목으로 주위에 자라는 나무들도 다 이름이 있고 역사가 있다. 누군가가 이름을 알고 불러주는 것을 통해 나무는 우리에게 귀한 존재가 된다. 자연에 대한 존중과 사랑을 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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