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되면 사람들은 총천연색으로 물드는 자연에 빠져든다. 강변에는 바람에 살랑거리는 은빛 물결이 압권이다.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감성을 선사하는 이 풍경의 주인공은 대개 갈대가 아닌 억새인 경우가 많다.
갈대와 억새는 볏과의 여러해살이 풀로 외양이 비슷하여 일반인들은 구분하기가 어렵다. 몇 가지 차이를 들자면 서식지가 상이하다. 갈대는 주로 물가 습지에 많이 자라고 억새는 산이나 비탈 같은 척박하고 건조한 지역에서 자라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외양의 차이로는 갈대는 3미터까지 크지만 억새는 2미터 까지 자라고 억새의 꽃은 은빛으로 가지런히 피지만 갈대는 보랏빛으로 마치 더벅머리 총각머리처럼 어지럽게 핀다. 갈대가 피는 초기에는 보랏빛에서 금빛으로 물들며 보기에 좋지만 활짝 피어나면 별로다. 그에 반해 억새는 완전히 피어나면 은빛으로 눈부시게 아름답다.
뿌리가 자라는 것도 많이 다르다. 갈대의 뿌리는 옆으로 퍼지고 뿌리줄기에 마디가 있다. 그리고 마디에 수염뿌리가 많이 나서 줄기가 다시 올라온다. 하지만 억새는 아래로 뿌리가 자란다.
갈대와 억새는 아름다운 가을을 전하는 전령이기도 하지만 생태적으로도 아주 기특한 식물이다. 갈대는 습지를 정화하고 수질을 개선하며 억새는 산사태를 막고 토양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한방에서는 둘 다 약재로 활용이 된다. 실생활에서는 억새에 비해 갈대가 훨씬 쓰임새가 많았던 것 같다. 갈대 이삭으로는 빗자루를 만들었고 이삭의 털은 솜 대용으로 사용하였다. 성숙한 줄기는 갈대발·갈삿갓·삿자리 등을 엮는 데 쓰이고, 또 펄프 원료로 이용하기도 한다. 반면에 억새는 지붕을 얹는 재료로만 쓰였다.
갈대
사람들은 갈대만을 주로 기억한다. 그에 반해 아름다운 가을 풍경을 물들이는 은빛 억새는 아쉽게도 사람들에게 갈대라는 이름으로 오인되는 경우가 태반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도 비슷한 경우가 있다. 내가 한 일을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남이 그것을 가로채는 경우도 있다. 삶에는 얼마든지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다. 내가 한 일로 사람들에게 유익하다면 그걸로 족하게 살자. 꼭 내 이름이 알려져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갈대에 가려 억새가 기억되지 않아도 가을이 되면 산야를 은빛으로 아름답게 물들이듯이 우리도 그렇게 살 일이다.
갈대와 관련된 문학작품 하나를 소개한다.
신경림의 시 "갈대"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억새들의 노래
2. 토끼풀이야기
이름은 자고로 친근하고 부르기 좋고 기억하기 좋아야 한다. 풀 중에 토끼풀이라는 이름이 바로 그런 것 같다.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토끼풀을 잘 모르는 이는 드물 것이다. 그만큼 우리와 친숙한 이름이다.
토끼풀은 이름이 친밀해서 우리나라 토종 식물같이 느껴지지만 유럽 원산의 귀화식물이다. 콩과 식물로 땅을 비옥하게 하고 단백질 함량이 높아 목초로 쓰였다..
콩과 식물의 특징은 뿌리에 질소 고정 박테리아가 살고 있어서 대기 중에 있는 질소를 식물이 이용할 수 있는 형태의 질소화합물로 만들어 주어 토끼풀이 이용할 수 있게 하고 박테리아는 토끼풀 뿌리에서 합성한 아미노산을 받아 사용하는 공생관계를 맺으며 산다.
이러한 질소화합물이 땅을 비옥하게 해서 피복식물로 많이 이용된다. 콩과 식물로는 아까시나무, 콩, 박태기나무 등이 있다.
토끼풀 꽃은 누구에게나 아름다운 추억을 선사한다. 꽃반지를 만들고 꽃목걸이를 만들고 화환을 만들던 기억이 누구에게나 있다. 그만큼 우리에게 사랑받는 꽃이다. 하지만 잔디밭에 자라나면 잡초로 여겨지는 데 강인한 생명력으로 골칫거리 취급을 받는다. 물론 아무것도 섞이지 않는 푸른 잔디밭이 아름답긴 하지만 미관을 위해 토끼풀을 제거하는 것은 그다지 지혜로운 행동은 아닌 것 같다.
다양할 때 다채롭고 건강하고 아름답다. 더구나 땅을 비옥하게 해주는 유익한 식물을 단순히 외양에 거슬린다고 없애려 하는 것은 너무 획일적이다.
토끼풀 꽃은 단순한 한송이가 아니다. 작은 꽃 여러 송이가 공모양을 이룬 것이다. 한마디로 우리가 보는 꽃 한 송이는 한 다발의 꽃이다.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자신의 판단을 믿어버린다. 늘 진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틀릴 수 있고 아닐 수 있고 다를 수 있음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3. 화살나무 이야기
이름은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 이름 하나로 특징을 담을 수 있다면 그보다 훌륭한 카피라이터는 없을 것이다. 화살나무 이름도 나름 특징을 잘 드러낸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화살나무는 과연 화살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 답은 그렇다 이다. 화살나무가 갖고 있는 특징 중 하나가 화살과 매우 닮은 점이 있는데 특이하게 가지에 화살깃처럼 날개가 달려있다. 다른 나무와 확연히 다르게 코르크로 만들어진 날개가 십자모양으로 붙어있다. 이는 나무의 생존 전략과 관계가 있다. 수분 손실을 막고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나무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화살나무는 노박덩굴과로 우리나라에는 노박덩굴, 사철나무가 이에 속한다.
화살나무는 가을철 붉게 물드는 단풍이 아름다워 관상수로 많이 식재가 되고 있다. 낙엽 관목으로 목재로써 이용가치는 없지만 잎과 가지와 뿌리껍질 그리고 열매까지 한방에서는 약용된다. 특히 새순에는 퀘세틴이라는 성분이 함유되어 혈액순환에 도움을 준다고 알려져 있고 홑잎나물이라는 별칭으로 나물로 대접을 받는다.
화살나무의 학명은 Euonymus alatus로 그리스 신화의 운명의 여신과 날개를 뜻하는 단어에서 유래하였다. 서양사람들도 우리처럼 나무에 날개가 달리는 것을 특이하게 본 것이다.
화살나무라고 해서 화살을 만드는 재료일 거라 추측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추측은 흔히 억측을 만든다. 사람의 생각은 단순해서 자꾸 그렇게 생각하게 되면 나도 모르게 그렇게 믿어버리게 된다. 제대로 잘 알지 못하면서 예단하는 것은 정말 위험하다. 편견을 버리고 합리적으로 사고해야 한다고 화살나무가 우리에게 교훈을 주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