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에서 첫 밤을 꿀잠으로 보내고 이른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였다. 스페인 방문의 꽃 가우디 투어를 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민박집에서 아침으로 한식을 제공하는데 식사시간을 맞추질 못해 컵라면으로 대신해야 했다. 모처럼의 한식에 이베리코 돼지 수육을 놓쳐 아쉬움이 컸다. 그 후로도 주말이어서 컵라면, 일요일이라 양식이 제공되는 바람에 결국 한식과는 인연이 닿지 않았다.
투어에는 20명 정도가 참여했다. 한꺼번에 많은 한국인들을 만나 더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음악과 인문학이 함께 할 거라는 가이드의 밝고 친절한 목소리에 투어가 기대가 되었다.
좁은 골목 사이로 보이는 카사 비센스
첫 번 방문지는 카사 비센스였다. 가우디가 최초로 건축한 개인 저택이다. 척 봐서도 범상하지 않은 눈에 띄는 독특함이 엿보인다.
건축가로서 가우디의 출발도 순탄하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병약했고 평생 고질병을 앓았다. 바르셀로나의 건축학교를 다녔지만 학업에 흥미가 없어 꼴찌를 했고 졸업 논문으로 총장이 설계한 대강당 수정안을 제출하는 파격으로겨우 졸업을 하면서 "가우디는 미치광이 거나 천재일 거라는 극단적인 평가를 받았다.
카사는 집이라는 스페인어로 카사 비센스는 비센스의 집이라는 의미다. 이 건물은 타일사업을 하는 비센스의 여름 별장으로 지어달라는 요청하에 건축되었다. 그의 요청대로 휴양의 목적에 맞게 건물은 방마다 지방색에 맞는 장식으로 각기 다르게 꾸몄다.
이 건물은 아카데미에서 배운 바 대로 직선으로 반듯하게 지어진 집이다. 가우디는 건축으로 소멸되는 자연을 안타까워하며 그곳에 살던 아프리카 금잔화와 종려나무 그리고 백조를 건물에 담아냈다. 그는 자연을 사라지지 않도록 세련된 디자인으로 문양을 재탄생시켰고 아름다운 장식으로 영원히 집과 함께 잊히지 않도록 남겨 놓았다. 이후의 작품에서도 자연을 사랑하고 존중했던 가우디의 심성은 곳곳에서 묻어난다.
쇠문의 종려나무
타일에 새겨진 아프리카 금잔화
상부의 백조 장식
가우디 집안은 대대로 대장장이었다. 그런 영향으로 가우디는 철을 다루는 법을 배웠고 그 결과 엿가락 다루듯 뛰어난 기술로 철로된 장식을 건축에 다양하게 활용했다. 이 건물에서도 철제 조형물들이 건물의 외관을 다채롭게 꾸미고 있는데, 장식 하나하나가단순한 장식이 아닌 뛰어난 조형 미술품이다. 아라베스크 문양처럼 식물의 형태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디자인들이 아로새겨 있어건물 전체에 자연적인 느낌이 가득하다.
아름다운 철 장식
건물의 내외벽에는 많은 타일이 사용되었다. 건축주가 타일 관련 사업을 해서 재고로 있던 타일을 아낌없이 사용하여 지었다. 외관이 마치 실내 벽지처럼 타일은 미적인 아름다움만 아니라 건물의 품격을 높이는 데 일조한 것으로 보인다.
건축기법은 이슬람풍의 그리스도교 건축양식인 무데하르 양식이다. 동서양이 혼합되어 여타 유럽지역과는 상이한 이러한 독특한 양식은 스페인 곳곳에서 묻어난다.
건물은 아름다운 첨탑이 배치되어 기품이 느껴지고 청 색과 붉은색의 대비가 꽃의 이미지를 풍긴다. 다양한 형태와 디자인의 장식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화려함이 극대화되므로 건물 전체가 예술품 같다.
가우디와 건축주들은 기이한 악연이 이어졌다. 하나같이 건축 이후에 건축주들이 망하게 된다. 그래서 가우디는 건축주를 망하게 하는 건축가라는 오명을 갖게 된다. 비센스도 망해서 건물을 팔아야 했고, 건물을 구입한 주베는 주거목적으로 구입하여 건물을 증축해야 했다. 중간의 기둥을 중심으로 오른쪽은 다른 건축가에 의해 추가로 지어진 것이다.
실내의 흡연실은 알함브라의 나스르 궁전에서 차용하여 화려하게 꾸몄다고 하는 데, 별도 실내 관람을 하지 않아 보지 못했다.
이 건축물은 가우디 모든 건축의 씨앗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유네스코 유산으로도 등재되었다. 바르셀로나에 15개의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있는 데 그중 7개가 가우디 작품이다. 건축주를 망하게 했던 그가 지금은 바르셀로나 전체를 먹여 살리는 건축가로 남았다.
가우디의 첫 작품부터 오묘한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 첫걸음 이후 더욱 발전한 그의 작품이 기대가 된다. 그의 마법에 빠져드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