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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석진 Sep 16. 2023

사랑을 하게 되면 죽을 운명-영화 Afire

크리스티안 페졸트 감독 영화 Afire를 만나다

독일의 크리스티안 페졸트 감독의 영화 Afire를 관람했다. 이 작품은 2023년 베를린국제영화제 은곰상(심사워원대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최근 개봉작이다.


이 영화의 감독은 독립영화감독으로 우리나라에 많은 팬덤이 있다. 그는 동독과 서독 둘 다 배경으로 성장했으며 멜로드라마를 통해 홀로코스트, 인종간 충돌 등, 독일의 근현대사에 얽힌 어두운 시대의 이면을 담은 영화를 주로 제작했다.


그는 바로 전 제작 영화인 운디네(독일어판 인어공주)를 성공리에 개봉해서 파리에 초청을 받게 되고 그곳에서 코로나 팬데믹 시기를 맞는다. 초기에 코로나 감염이 되어 그는 죽음의 문턱을 경험한다. 그러는 중에 자신과는 판이한 경향의 프랑스 누벨바그의 영화감독인 에릭 로메르의 영화를 만난다. 그 감독의 영화 주제인 '사랑에 빠짐과  유혹'에 대한 영화를 보고 자신도 삶을 사랑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은 열망을 갖게 된다. 그래서 그는 이전과는 다른 성향의 영화인 Afire를 만들게 되었다.


이 작품은 발단 단계에서 미국식 썸머 무비로 시작하여 프랑스식 청춘영화로 전개하여 독일식 실존주의적  앤딩으로 구성되었다. 독일은 부모의 심한 간섭으로 미국식 썸머무비가 이루어질 수 없는 환경이다. 감독은 독일에서도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Sight와 Sound 가 영화의 핵심 요소인데 이 영화는 Sound가 가장 중요한 요소로 등장한다. 숲소리, 휘파람소리, 소설의 낭송, 시의 낭송 그리고 정사의 신음소리와 음악이 요소요소에 삽입되어 주제를 드러낸다. Sound를 강조하는 이면에는 감독이 대화재를 경험하며 화재의 현장에는 소리가 사라짐을 목도하고 영화에 Sound를 중요한 요소로 담게 되었다.


감독은 대본도 직접 쓰기도 하면서 배우들에게 일일이 맡은 배역의 성격을 세세하게 알려주었다. 또한 감독은 자신의 뮤즈를 귀하게 대했다. 그래서 그의 모든 영화에서 여주인공이 절대로 벗지 않고 등장하는 특징을 보인다.


영화의 줄거리는 작가인 레온과 그의 친구 펠릭스가 각자의 작업을 위해 펠릭스네 바닷가 인근 별장으로 차를 타고 가면서 시작된다. 레온에게는 도로에서 자동차가 고장이 나는 시점으로 모든 일정이 꼬이기 시작한다. 걸어서 겨우 도착한 별장에는 나디아라는 미모의 여성이 불청객으로 거주 중이다. 펠릭스는 이 모든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만 레온은 불편하기만 하다. 밤중에 나디아의 정사하며 내는 신음 소리로 네온은 뜬 눈으로 밤을 새우고 이후로 계속하여 불면의 밤이 이어진다. 그러다 나디아를 엿보게 되며 레온은 첫눈에 그녀와의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혼자만의 사랑일 뿐이다.


레온은 두 번째 작품의 탈고에만 온통 정신이 가 있고 그 밖의 모든 일에는 아무런 흥미도 없다. 반면  펠릭스는 예술학교에 제출할 포트폴리오 제작을 해야 하지만 매사에 여유를 가지고 삶을 즐긴다. 여기에 나디아의 연인인 바비트가 등장하고 이후에 펠릭스는 그와 친해지며 동성 연인이 된다. 친구 펠릭스는 게이였다.


레온에게는 벌어지는 모든 일이 못마땅하다. 더구나 편집자로부터 그의 작품이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져 심사가 뒤틀린다. 펠릭스는 바비트와 급격히 가까워지고 넷이 함께하는 식사 자리에서 심기가 불편해진 레온은 바비트를 깔보며 그에게 심술을 부린다. 그는 작가로서 지적 우월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인명구조요원인 바비트를 깔보고 아이스크림판매원인 나디아를 무시하는데 그 이면에는 바비트는 동독식 이름으로 동독출신으로 보고 나디아는 토스토에프스키 소설의 주인공 이름으로 러시아 이민자로 여겨 은연중 업신여기는 것이다.


나디아와 친해진 그는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자신의 작품 '클럽 샌드위치'를 나디아에게 보여주게 된다. 나디아는 형편없다고 혹평을 한다. 이에 청소부와 다를 바 없는 그녀에게 무시당했다고 생각하고 머리끝까지 화가 치민다.


편집자가 찾아오고 레온의 작품을 함께 검토하려 하는 시점에 그가 무시했던 펠릭스의 물에 대한 포트폴리오가 오히려 호평을 받게 되고 나디아가 문학박사 과정에 있음이 밝혀진다. 그녀의 논문 주제가 하이네의 시라는 것에 편집자는 나디아에게 큰 관심을 기울이게 되고 대화의 중심이 된다. 정작 자신을 찾아왔지만 자신에게 무관심한 편집자의 행동에 레온은 멘붕 상태에 빠진다.  


인근 화재로 인해 정비소가 문을 닫아 거리에 방치된 자동차를 바비트와 펠릭스는 견인을 하러 가는 사이

편집자가 갑자기 쓰러지는 일이 발생한다. 나디아가 차를 운전하여 병원으로 데려가고 레온은 걸어서 뒤따른다. 가는 도중 먼 곳에서 일어났던 대화재의 풍향이 갑자기 별장 방향으로 바뀐다. 이화재에 동물들은 불길을 피해 도망쳐 오지만 불이 붙은 새끼 멧돼지가 레온의 목전에서 죽는다.

편집자는 암투병 중이었다. 병실에서도 자신의 문제에만 몰입된 레온은 이 상황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질투에만 눈이 멀어 나디아를 추궁한다. 기가 막힌 나디아는 레온에게 편집자는 암환자임을 알리고 그에게 자신 밖에 모르는 멍청이라고 욕을 하며 떠난다.


고장 난 자동차를 견인하러 간 펠릭스커플은 안타깝게도 불길에 휩싸여 함께 죽음을 당한다. 두 구의 시체는 마치 폼페이 연인의 화석처럼 완전히 붙어서 분리가 불가능하다. 그들은 숨이 막혀 죽은 것이 아니라 불에 타서 함께 껴안고 죽음을 맞은 것이다. 시신을 본 나디아는 비통함에 젖지만 레온은 무심하기만 하다. 그녀는 그런 레온을 보며 냉정한 눈길로 그를 완전히 떠난다.


레온은 뒤늦게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지만 버스는 이미 떠나 버렸다. 그는 새로운 작품을 쓰게 되고 이전 작품과 다르게 투병 중인 편집자에게 호평을 받는다. 작품은 죽은 펠릭스에게 헌정된다.

그러다 우연히 그곳에서 휠체어를 끌고 나와 타고 있는 나디아를 보게 된다. 아는 체할까 말까 주저하다 나서서 그녀와 눈을 마주친다. 그들은 서로를 보며 미소를 짓는다. 이로써 영화는 끝이 난다.


영화 중에 하이네의 시 "아스라"가 나디아를 통해 두 번 낭독이 된다. 시의 내용은 술탄 공주를 사랑하는 노예가 공주의 물음에 자신의 이름은 모하메드이며 자신은 사랑을 하게 되면 죽을 운명을 가진 부족이라며 공주를 사랑했기에 나날이 여위어 간다는 내용이다. 미루어 짐작하건대 이 영화가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바로 이 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에서 사랑은 여러 모양으로 표현된다. 레온의 외골수 짝사랑, 나디아의 자유분방한 사랑, 펠릭스의 단순하고 자연스러운 사랑, 그리고 숨겨있지만 편집자의 이성적인 사랑까지.... 감독이 말하는 바는 죽음도 불사하는 지고한 사랑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처음과 다르게 영화의 결말은 펠릭스는 죽음까지 함께한 지순한 사랑의 모습을 보여준다. 나디아는 보기와 다르게 다른 이들에게 진실하고 따스한 모습이다. 결과적으로 후회가 남지 않게 지금 충분히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하는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다른 한편으로 이 영화는 레온이라는 작가의 시선을 통해 작가라는 직업이 예민한 데다 자신의 작품에만 몰입되어 다른 이들은 전혀 관심이 없고 오로지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적이고 편협한 삶은 즐거움이 없는 불만이 가득 찬 삶임을 보여준다. 그런 그가 종국에는 나디아를 통해 깨달아가며 성장하는 모습이 영화의 한 축이고 또 다른 축은 삶을 긍정적인 시야로 후회 없이 서로 사랑하며 현재를 즐기며 자유로이 사는 삶이 가치 있는 삶임을 펠릭스와 나디아를 통해 설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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