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가을에 긷는 기쁨 하나-능이야 게 섰거라

남녘 시골을 찾아 능이버섯을 따다

by 정석진

어릴 적 촌에 사는 아이들이 엄청 부러웠다. 그렇다고 나도 도심 복판에 살았던 것은 아니지만 들판에 나가 소를 먹이고, 냇가에서 미역을 감고, 논 밭에서 곡식들이 자라는 푸른 전원생활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동경을 마음속에 늘 품고 있었기에 어른이 되어서 자연 속에서 수렵채집하는 일에 각별한 흥미를 갖게 된 것 같다.


남 보기에 스스로도 내게는 좀 별난 면이 있다. 무엇이든 채집하는 일에 끝없는 열정이 샘솟기 때문이다. 우연히 산골에서 두릅을 딴 것을 계기로 나물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앞서 말했듯이 시골살이를 해보지 않았기에 식물도감이나 책을 찾아보고 식용 나물을 하나둘씩 일일이 찾아가며 익혔다. 그렇게 관심을 갖게 된 결과니 이제는 시골 토박이들보다 나물을 더 많이 알게 되었고 여기에서 더 나아가 들꽃과 나무까지 관심이 확대되었다. 산나물이나 들나물은 대부분 꽃이 피었고 나무 중에도 어린순을 식용할 수 있는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봄철에는 연례행사로 진안으로 두릅을 따러 다닌다. 그러면서 그즈음에 나는 나물인 취나물, 달래, 고사리, 돌나물, 개망초, 파드득나물을 함께 맛본다. 아울러 쑥을 직접 캐서 떡을 만들어 1년 내내 먹는 것을 장만하는 일도 이즈음 연례행사로 하는 일이다. 그런데 봄이 지나면 나물은 더 이상 뜯지 못하니 채집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는 다음 해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 아쉬움 가운데 가을에는 버섯이 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관심은 지대했지만 버섯에 대한 지식과 정보가 없어 그저 마음뿐이었다. 그런데 전남 곡성에 사는 동서가 능이버섯을 나눠주셨다. 직접 산에 올라 따신 것이었다.


능이는 아주 귀한 버섯으로 참나무에 기생하며 높은 산에 자생을 하는 버섯이다. 육류와 궁합이 맞는데 특히 돼지고기와 함께 요리를 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그래서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능이버섯 따는 대열에 합류하기로 했다. 동서와 일자를 조율하고 아내와 함께 차를 가지고 시골로 출발했다. 서울에서 여유 있게 떠났지만 전남 석곡까지는 꽤 먼 길이라 밤 9시가 지나서야 도착했다. 늦은 저녁이라도 시골의 풍미가 가득한 초피를 넣은 열무김치에 밥을 허겁지겁 해치우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새벽 4시가 바로 지난 시각에 일어나야 했다. 산행을 서둘러 출발하기로 했던 것이다. 이른 아침을 대충 챙겨 먹은 뒤 도시락을 준비하고 긴팔과 장화를 신고 차를 타고 산으로 향했다. 한참 차를 타고 시골 들판을 달리다 산에 인접하여 마을을 뒤로하고 임도의 울창한 숲길에 들어섰다. 놀랍게도 이미 길가에는 주차한 차들이 보였다. 평일 이른 새벽임에도 버섯을 따러 온 이들이 이미 있었던 것이다. 우리도 서둘러 산을 올랐다.

길섶에 순백의 취나물 꽃이 만발했고 군데군데 무리 지어 물봉선이 수줍게 피어있었다. 산 초입 소나무와 잡목들이 숲을 이룬 울창한 숲이었다. 능이가 자라는 참나무 군락을 찾아 열심히 산을 올랐다. 상당한 높이의 산이었는데 경사도 가팔라 오르는 길이 만만치 않았다. 한참 올라 아름드리 참나무 군락이 눈에 들어왔다. 본격적으로 버섯을 찾아 나섰다.

취나물 / 물봉선

높고 깊은 산이었고 인적이 뜸한 이유였는지 독사로 보이는 뱀들을 만났다. 아내가 무서워할까 봐 혼자만 알고 지나갔다. 눈에 불을 켜고 두 시간을 보냈지만 능이는 감감무소식이었다. 싸리버섯 몇 개가 유일한 수확이었다.

힘겹게 산을 오르니 땀이 물 흐르듯 흐른다. 나 자신 스스로 꽤 체력을 자신하고 있는데도 힘이 많이 들었다. 그런데 70이 훌쩍 넘으신 동서는 거의 산을 나는 수준이다. 그간 산을 자주 오른 이력이 달인의 경지에 오르게 한 것 같았다. 아내는 더위 먹은 여름철 강아지처럼 헉헉거리며 연신 힘들어 죽겠다고 하며 우리를 놓치지 않으려 소리를 질렀다.


능이 구경은 물 건너갔나 보다 하며 포기할 무렵 동서가 능이를 발견했다. 그것도 겨우 한 송이! 너무 반가운 마음이었고 다행이다 싶었다. 왜냐하면 빈손으로 갈 전조가 보였기 때문이다. 동서가 수확하는 기쁨을 양보해서 떨리는 손으로 내 손으로 능이를 땄다. 흥분이 조금 되었고 기쁘기도 했다.

능이 버섯

그런 후에는 또 감감무소식이다. 원래 능이는 자라는 곳에 무리 지어 나는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질 않았다. 점심시간이 되어 시장기를 반찬 삼아 점심을 먹었다. 산에서 먹는 음식은 무엇을 먹어도 맛이 있다. 점심을 마치고 다시 힘을 내서 다른 봉우리를 향해 진군을 했다. 동서의 뒤를 힘겹게 따르며 오르내리기를 한동안 하다 보니 준비한 물도 다 먹어버렸다. 하는 수없이 흐르는 계곡물을 마셨는데 오히려 가져온 물맛보다 더 시원하고 맛이 있었다.


또 다른 봉우리를 넘어설 무렵 동서가 심봤다! 외친다. 없던 힘이 솟아올라 뛰어가 보니 능이버섯이 줄지어 있다. 참 속상한 것은 이상 기온으로 인해 능이가 크질 못했다는 점이다. 예전 같으면 한 무더기를 수확할 수 있었을 텐데 올해는 그러질 못했다. 그러는 와중에 나도 그 근처에서 능이를 발견했다. 동서가 발견한 것만 따다가 직접 찾아 따 보니 더 기쁜 마음이었다. 아내도 덩달아 찾고서 지친 몸과 마음이 조금 회복된 듯했다.

능이버싯

산을 내려오면서 능이 군락지를 만났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작황이 너무 좋질 않았다. 여기저기 난 것을 찾긴 했지만 자라질 못해 양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아쉬움이 가득했어도 고생만 하고 능이는 구경도 못할 것으로 생각되었지만 하산하기 전에 능이버섯을 만났다는 것이 아주 기뻤다.

몸은 빨래처럼 축 늘어져 흐물거렸다. 너무 더워서 계곡물에 옷을 입은 채 뛰어들었다. 시들은 채소가 찬물에 소생하는 기분이었다. 아내도 세수를 하며 더위를 식혔다. 올라온 길이 꽤 되었기에 내려가는 길도 한참이었다. 장화를 신어서 발이 불편했다. 임도를 맨발로 걷다가 자갈들이 많아 다시 장화를 신고 힘들게 걸었다. 걷는 도중에 야생화들이 우리를 반겼다. 고마리의 앙증맞은 꽃과 귀여운 산층층이, 우산같이 우아하게 핀 궁궁이, 취나물 꽃 그리고 물봉선이 반겨주는 길,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뿌듯한 귀갓길이다. 우리가 올랐던 봉우리가 까마득히 보인다. 아내가 기진맥진하여 앞으로 버섯이야기는 절대 꺼내지 말라는 타박을 들으며 차에 오른다. 시원하고 안락한 자리에 앉으니 살 것 같다. '또 와야지' 아내 모르게 다짐을 하면서...

궁궁이
고마리
산층층이

#감성에세이 #가을 #버섯 #능이버섯 #시골기행 #취미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