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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 가을 속에 빠져들다

오대산 트레킹으로 가을 단풍을 만나다

by 정석진

가을이 깊어가는 오대산으로 트레킹을 나섰다. 은행 퇴직 동우회 40여분이 함께했다. 기온이 뚝 떨어졌다고 해서 두꺼운 옷을 준비했는데 막상 산 초입에 내리니 화창한 날씨로 쾌적하다. 좋은 날씨로 오늘의 일정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서울에서 7시에 버스를 타고 홍천군 명개리에 있는 오대산 내면분소에 10시에 도착했다. 트레킹은 이곳에서 출발하여 두로령을 지나 상원사로 내려오는 코스로 12.5킬로미터를 걷는 여정이다.

트레킹 초입

오전 10시의 산행은 언제나 최상의 선택이다. 이 시간은 아침이 여전히 진행 중이라 새 아침의 신선함이 남아 있다. 또한 숲에서 우리 몸에 유익한 피톤치드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더욱 좋은 점은 걷는 길 옆으로 계곡이 있어 힘찬 물소리까지 들린다는 것이다. 산이 깊어서인지 수량이 풍부해 보기에도 시원하다. 계류를 끼고 걸으면 물이 굽이굽이 흐르며 음이온이 발생하는데 이는 또한 건강에 매우 유익하다.


오늘 걷는 길은 이 모든 조건을 구비했다. 기분 좋은 시작이다.

걷기의 출발점이 임도라 길이 넓어서 걷기가 편하다. 길가에는 벌써 잎들을 떨군 나무들이 많이 보인다. 일행들과 같이 가는 길이지만 자연의 친구들이 동행하며 함께 걷는다. 계곡의 시원한 물소리가 하나고 발걸음마다 바스락 거리는 낙엽 소리가 나머지 주인공이다.

맑은 기운을 한껏 들여 마신다. 낙엽 마르는 냄새가 느껴져 정겹다. 예서 산다면 어떤 질병이 있다 해도 다 치유될 것 같다. 사람들이 행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그곳에서는 언제나 긴장과 스트레스를 벗어나기 어렵다. 어느 정도 이루었다 해도 더 잘난 이들이 있어 여전히 목마르고 늘 배가 고프다. 자연의 품에 안기니 그런 시상이 떠올라 시조 한 수를 읊는다.


오대산

바람에 낯을 씻고
옥수에 맘을 닦네

잘살겠다 버둥대도
느는 것은 흰머리뿐

행복이 머무는 곳이
가을 숲에 있구나


오르는 길 내내 계곡이 이어져 있다. 나무들이 우거져 숨은 계류가 시야가 확보되는 곳에서는 감추어둔 비경을 꺼내 보여준다. 물든 단풍이 어우러진 물길은 잘 그려놓은 풍경화 한 폭이다. 물 웅덩이에 아침햇살이 쏟아져 윤슬이 반짝대 가슴도 덩달아 뛴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그 자리에 머물러 오래도록 풍경과 물소리에 푹 젖고 싶다.

임도는 계속 이어지지만 아쉽게도 방향을 틀어 산비탈길로 들어선다. 정든 계곡과도 이별이다. 앞서 올라가서 차분하게 경치를 즐기고 사진도 담으려 선배님 한 분과 먼저 출발했다.


테크로 조성된 길은 상당히 가파르다. 숲의 나무들은 대다수 참나무 종류로 신갈나무와 갈참나무인데 잎들이 대부분 주황빛으로 물들었다. 빨간 단풍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아쉽게도 올가을 단풍의 절정이 지난 듯 보인다.

테크가 끝나고 흙길이 이어진다. 계속되는 경사로 얼마 가지 않아 숨이 차오른다. 허벅지에도 힘이 들어간다. 오늘 하체운동은 확실하게 할 것 같다. 선배님은 하나도 힘들지 않게 평지를 걷듯 경쾌한 걸음걸이다. 헉헉거리며 뒤따르지만 간격이 점점 벌어진다. 나도 등산에는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힘들게 뒤쫓다 보니 자신감 상실로 이어진다. 세상에는 숨은 고수들이 차고 넘친다. 늘 겸손해야 함을 배운다.

이제는 다 왔으려나 하고 가보면 여전히 산길이 이어진다. 속으로 제발 쉬었으면 하는 말이 입에 맹돌지만 남자의 자존심이 허락지 않는다. 그래 끝까지 가보자는 심정으로 스틱에 힘을 준다. 마침내 숨 넘 어가기 직전에 다시 임도를 만났다. 그곳에서 여장을 풀고 한숨을 돌린다. 쉬면서 참나무 겨우살이를 발견했다. 높은 산꼭대기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고 자라니 건강에 좋은 약초라는 것이 분명할 거라는 확신이 든다.

겨우살이

물과 간식을 나누며 덕담을 나눈다. 그 선배는 땀도 별로 안나는 듯했다. 나보다 연배가 많음에도 산을 오르는 능력이 참으로 놀라웠다. 쉼 없는 등산으로 다져진 강철체력의 결실이었다.


휴식을 마치고 두로령에 섰다. 두로령은 해발 1,310미터 높이다. 해발 800미터부터 산을 올랐으니 꽤 높이 오른 셈이다. 앞서 어렵게 오른 산길이 오늘의 가장 힘든 길로 이제는 수월하게 내려가는 길만 남았다.

임도를 걸으니 길가의 수목들로 탁 트인 산의 자취를 사진에 담기가 어렵다. 산 정상을 올랐다면 사방으로 뻗은 오대산 전경을 감상할 수 있었을 터인데 그럴 수 없음이 작은 아쉬움이다.

도중에 나옹대로 빠져 만족스러운 조망은 아니지만 막힘없는 전망을 보며 조금은 필요를 채울 수 있었다. 오대산이 여타 산과 다른 점은 전나무가 자생한다는 점이다. 참나무가 주황빛 단풍으로 물들 때 그 사이로 늘 푸른 전나무가 섞여 색의 대비를 이룬다. 거기에 더하여 자작나무도 자리를 잡고 새하얀 수피로 특별한 경치를 만든다.

자작나무
나옹대

전나무는 원추형의 균형 잡힌 수형을 가졌다. 타고난 미모를 장착한 것이다. 잎도 사철 내내 짙푸르니 천생 피부 미인이다. 크기도 장대하니 부족한 것 하나 없는 다 갖춘 팔방미인이 분명하다. 멀리서도 도드라진 자태를 가졌지만 가까이에서 다른 나무들과 섞여 있으니 군계일학으로 수려하다. 오대산 빈객을 만나는 즐거움도 트레킹의 기쁨이다.

상원사

상원사 가까이 내려가는 길에서 붉은 단풍을 만난다. 높은 곳의 단풍은 지고 고도가 낮은 곳은 한창인 것이다. 제대로 된 단풍에 들뜸과 반가움이 교차된다.

산길에서는 우리 일행 밖에 없었는데 상원사 입구에 행락객들이 아주 많이 보인다. 지금이 단풍 관광의 정점인 것이다.


서둘러 하산을 해서 대관령 불고기로 시장기를 잠재웠다. 이제 번다한 세상으로 돌아갈 일만 남았다.

자연은 언제 찾아와도 한결같이 넉넉한 품을 내어준다. 누구라도 그 품에 안기면 참된 쉼을 누릴 수 있다. 또한 자연은 우리의 선생님이다. 밖으로 내달리던 시선을 안으로 들여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그리하여 욕심을 내려놓고 물처럼 바람처럼 자유롭게 살 수 있다고 우리를 다독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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