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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석진 Dec 29. 2023

기대는 잠을 설치게 한다

합창단 정기공연을 맞이하며

올해 내내 합창단에서 노래를 불렀다. 연습 시간은 매주 목요일 오후 7시부터 9시까지다.  간혹 빠지기는 했지만 거의 참석했다. 단원으로서 당연한 일이기도 했지만 총무라는 책임으로 더 열심을 냈다.

그동안의 노력이 결실을 맺는 날이 다가왔다. 오늘이 바로 합창단 정기 공연일이다. 막바지 준비가 한창이었고 별 탈없이 흘러갔다. 하지만 불상사는 예기치 않은 곳에서 일어났다. 게스트로 오기로 한 소프라노가 독감에 걸려 목소리를 전혀 낼 수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지휘자님 이야기로는 있을 수 있는 일이라지만 사고는 분명했다. 사전에 리허설도 같이 하며 호흡을 맞추었는데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지휘자님이 대타를 구했다. 새로 오신 분도 프로여서 공연은 차질이 없겠지만 아쉬움은 어쩔 수 없다. 왜냐하면 못 오는 연주자는 귀국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성악계에 떠오르는 별이었기 때문이다.


소품준비도 난항이었다. 2부 행사에 입을 조끼가 제대로 구비가 되지 않은 것이다. 단원들 숫자보다 여유롭게 반짝이 조끼를 신청했는데 유통회사에서 부족한 수량을 보냈다. 중국에서 수입한 물품이 제대로 조달이 안되었다는 이유란다. 담당하신 단원이 애타게 연락하며 준비 중인데, 아직까지 소식이 없는 것을 보니 걱정이다.


공연일자도 평일 밤이어서 관람객이 생각보다 저조할 듯하다. 대부분 공연이 주말이었는 데, 대관 측 사정이 있어서 하는 수 없이 목요일로 일자를 정했다. 그렇게 되다 보니 내 경우에도 작년에 왔던 분들이 평일인 관계로 올 수 없는 분들이 대다수였다. 안타깝게 겨우 가족들만 오게 생겼다.


그런데 설상가상이다. 어젯밤에 아들이 날짜를 제대로 알지 못해 여자친구와 약속을 했다고 오기 힘들다는 거다. 아내말에 따르면 일차적으로는 내 책임이란다. 가족 톡방에 제대로 공지를  안 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부인할  수 없었다. 28일에 공연이 있다는 것을 말로 했는 데 , 귀 기울여 듣지 않은 것도 실수라는 생각에 억울하기도 했다.


 가족들마저 제대로 참관을 못한다니 기분이 상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툴툴거리게 되었다. 아들도 덩달아서 씩씩댔다. 날짜를 정확히 몰라서 약속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더구나 여자 친구가 호주로 여행 가기 하루 전이라 꼭 만나야 한단다. 속상한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아들에게는 여자 친구가 더 중요한 것을 어쩌랴!


포기하고 마음대로 하라고 했더니 아들은 늦게라도 참석하겠다고 양보를 했다. 다행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풀어졌다. 나 자신도 참 단순하다. 언제 그랬냐는 듯 아무렇지 않게 금방 풀어지니 말이다.


여러모로 아들은 심성이 착하다. 말로는 씩씩대는 경우가 많지만 금방 생각을 바꾼다. 그런 면에서 아들은 좋은 인성을 가졌다. 직장에서도 두루두루 잘 지내면 좋겠는데 의외로 복병들을 만난다.  나처럼 아들도 호불호가 분명한 점이 걸린다. 좋고 싫은 것이 쉽게 얼굴에 표정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내심 걱정은 되지만 인간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 것이 반드시 나쁜 일만은 아니다. 경험과 배움은 저절로 얻어지지 않는다. 환난을 통해서 강력하게 배울 수 있다. 잘 이겨내리라 믿는다.


이런 여러 가지 상황이 있어서인지 밤 잠을 설쳤다. 자다가 몇 번을 깼다. 마치 어릴 때 소풍 가기 전날 밤처럼. 깨다 자다 반복하게 되면 엄청 피곤한 게 정상인데, 다행히 그렇게 컨디션이 나쁘지는 않다. 딱히 카페인을 섭취한 것도 아니고 늦게 잠자리에 든 것도 아닌데 깊은 잠을 자지 못했다. 아마도 오늘 공연으로 신경이 쓰인 게다.


내가 준비해야 할 물품도 있었다. 마지막 피날레에 터뜨릴 폭죽과 와인을 나르는 데 필요한 장식을 준비해야 했다. 여유 있게 폭죽을 사려고 했는데 8개밖에 없었고 와인 관련 비품은 마음에 차는 것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런 미진한 점도 신경이 쓰였나 보다.


하지만 합창은 노래가 가장 중요하다. 그간 충분히 준비를 마쳤다. 레퍼토리도 다양하다. 예년에 비해 가장 큰 차이는 단원이 많이 늘었다는 점이다. 32명이 참여하여 소리가 달라졌고 노래에 조예가 있는 분들이 많아져 완성도도 높다. 기대가 되는 면면이다. 연습하는 것을 밖에서 들어보면 멋지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남성합창이 제대로 화음이 맞춰지면 남다른 매력이 있다. 준비는 충분하다. 많은 관람객들이 와서 즐겨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아마도 이번 합창공연이 올해의 하이라이트로 아로새겨질 것이다. 노래로 우리가 행복하고 노래로 다른 이들을 행복하게 하는 동대문아버지합창단의 바람이 잘 전해지기를 기도한다. 오늘도 파이팅이다!


#에세이 #합창 #준비 #기대 #남성합창단 #정기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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