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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에 만나는 서울 빛초롱 축제

광화문에서 빛의 향연을 즐기다

by 정석진

연말에 즐겨야 제격인 서울 빛초롱 축제를 끝물에 보러 갔다. 나중에 낭패를 겪게 되었지만 기온이 상온이어서 가벼운 옷차림으로 나갔다. 겨울에는 언제나 따뜻하게 입어야 한다는 사실을 몸으로 생생하게 배운다.


친구부부가 종로 3가에서 옛날 통닭을 먹고 축제 구경을 간다고 해서 우리 부부도 합류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찾는 1호 간식은 아마도 치킨일 것이다. 나는 치킨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평소에 잘 즐기지 않지만 아이들과 아내는 잘 먹어서 가끔 배달을 시킬 때에는 한 두 조각을 맛보는 편이다. 치킨도 양념보다는 옛날 방식으로 기름에 간단히 튀겨낸 닭이 내 입에는 맞다. 겸사겸사해서 오랜만에 치킨도 먹어보기로 했다.


두 부부가 함께 종로 3가에서 만나 통닭집을 갔다. 옛날 방식으로 조리한 닭튀김이 나왔다. 작은 닭이라 각 한 마리씩 시켰다. 노르스름하게 튀김옷을 입은 잘 튀겨진 닭이 구미를 돋운다. 요즘 유행하는 막사와 막걸리를 곁들인다. 나는 술을 전혀 못하지만 막걸리가 변비에 좋다고 하여 일부러 한 잔은 마신다.

손에 비닐장갑을 끼고 닭다리를 잡아든다. 쫄깃하고 고소한 맛이 입맛에 착 달라붙는다. 기름기를 쪽 뺀 닭이라 그런지 바삭하고 느끼함도 없다. 무절임을 함께 먹으며 즐거운 대화의 시간이 이어진다.


이른 시각에 만났는데도 함께 먹고 마시며 즐기다 보니 밖이 벌써 어둑해졌다. 청계천을 찾아 나섰다. 찬 바람이 도심 거리에 거세게 분다. 추위에 저절로 몸이 움츠러든다. 청계천으로 내려가니 다행히 바람이 잦아들었다. 멀리 빛초롱 축제 설치물이 보인다.

예전보다 단순한 디자인의 조형물이 청계천을 밝히고 있다. 밤에는 불빛이 선명해진다. 추운 겨울이 되면 불빛은 더 밝아진다. 한겨울에 불빛축제를 하는 이유는 춥고 어두운 시기를 환하게 밝히는 빛의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스한 불빛은 마음을 녹이고 정겨움을 전한다. 알록달록한 불빛은 꽃보다 아름답다.


청계천 위의 조형물과 빌딩의 불빛들이 차가운 도심을 따스하게 보듬고 있다. 귀여운 동물의 조형물이 멋진 포즈를 하고 당당하다. 어두운 밤을 배경으로 환하게 비추는 고운 빛이 청사초롱처럼 잔치하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한지를 발라놓은 듯한 질감이 더 다감하게 다가온다. 청계천 초입에는 공중에 빛에 반사되는 모빌과 전등을 달아 하늘이 온통 반짝거린다. 이 설치물은 쉼표 모양의 오브제로 작품명은 화이트 드래곤이다. 불빛이 수면에 반영되어 빛의 세상인 듯 화려하다. 많은 작품들이 설치되지 않았지만 축제를 알리는 정도로는 충분해 보인다.


새로 단장한 광화문 광장에서 본격적인 서울 빛초롱 축제가 펼쳐져 있다. 이순신 장군 동상 주위에 위용 있게 거북선이 자리를 잡고 살아 움직이는 듯한 청룡이 옹위하고 있다. 조명이 시시각각 달라져 생동감을 더한다. 인상적인 작품에 사진을 찍는 손길들이 분주하다.

광장을 따라 동화 속 주인공들이 색색이 단장을 하고 관람객들을 반긴다. 내가 좋아하는 어린 왕자와 여우가 보인다. 돈키호테도 주인공이다. 백설공주와 난쟁이들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는 마치 애니메이션을 통째로 옮겨 놓은 듯 많은 작품들이 등장한다. 농악 하는 이들의 역동적인 자태도 눈길을 끈다. 저마다 개성이 넘치고 특색 있게 조성된 조형물들이 가득하다. 상상과 애니메이션 세계가 구현된 환상의 마당에 어른 아이들 모두 동심에 젖어든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너무 춥다는 점이다. 오리털외투로 단단히 껴입고 추위를 대비해야 했는데 콧물이 흐르고 한기가 찾아든다. 춥지만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주제들의 전시품으로 눈을 뗄 수가 없다. 어린 자녀들에게 보여주면 너무 좋을 것 같다. 실제로 어린 자녀들을 대동하고 관람하는 가족들이 많다.


동화 속 세상을 지나면 미디어 작품들이 반긴다. 비디오아트가 화면에 가득하다. 추위에 몸이 떨리지만 현란하고 선명한 영상들에 매혹된다. 설치 조형물도 독특하다. 몽유도원도를 빛으로 구현해 낸 작품도 신비롭고 새롭다.


7시에 빛이 선사하는 공연이 시작되었다. 광화문을 화폭으로 삼아 총천연색의 빛의 향연이 이어진다. 음악과 더불어 시시각각 변주되는 화면이 압권이다. 많은 젊은이들이 모여 영상을 즐긴다. 핸드폰을 들고 동영상을 찍는 데 손이 얼어 견디기 힘들다. 지독한 냉기에 따뜻한 곳이 간절해진다. 원래 송현광장까지 가려고 했는데 몸이 얼어서 카페로 발걸음을 돌렸다. 아쉬웠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아 어쩔 수 없었다.

겨울에는 실내에 머물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과감하게 문밖을 나서면 새로운 경험과 체험의 기회가 많이 생긴다. 몸은 힘들 수 있지만 달라진 환경은 우리에게 자극을 주고 생기를 가져다준다. 겨울날 머무름도 좋지만 추위를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의연한 삶의 태도도 필요하다. 오늘 나들이에 추위로 떨었지만 아름다운 조명이 주는 환한 빛이 밤하늘 샛별처럼 가슴 한편에 반짝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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