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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에 만나는 한탄강 주상절리

물 위로 걷는 한탄강 트레킹

by 정석진

지난여름에 다녀온 철원에 있는 한탄강 주상절리길을 겨울에 다시 찾았다. 이번에는 잔도가 아닌 강물 위를 걷는 트레킹 코스다.


당일 치기로 2호선 종합운동장 역에서 오전 8시에 버스를 타고 출발했다. 며칠 전 눈이 펑펑 내려 예정했던 한탄강 트레킹에 대한 기대가 컸다. 하지만 날씨가 풀려 곧바로 눈이 녹아버렸다. 바라던 눈 덮인 강 풍경은 결국 못 만나게 되었다.


버스를 타려고 종합운동장에 도착했다. 거리의 플라타너스에 방울이 잔뜩 매달려 있는 것이 눈길을 끈다. 한해 열심히 농사를 지어 결실을 풍성하게 맺은 것 같은 데, 씨앗을 날려 보내지 않고 꼭 붙잡고 있는 것이 좀 이상하다. 다 큰 자식을 품에 안고 놓지 못하는 걱정 많은 부모들의 마음 같아 애처롭다.

2시간을 달려 직탕 폭포 주차장에 도착했다. 푸른 하늘이 얼굴을 내밀고 햇살이 비쳐 풍경은 봄날처럼 따스하다. 하지만 강원도의 기온은 확실히 서울과 차이가 난다. 싸늘한 기운에 털모자와 장갑으로 중무장을 했다. 아이젠과 스틱도 준비했는데 그럴 필요는 없어 보였다.

예상대로 한탄강은 얼지 않았다. 잔설과 얼음이 간간이 보이지만 푸른 강물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밝은 햇살 아래 강안 풍경이 싱그럽다. 걸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급격히 덥다. 바로 내리쬐는 햇살의 기운이 몸을 감싸고 걷는 움직임이 맞물려 땀이 솟았다. 서둘러 털모자를 벗고 껴입은 옷도 한 꺼풀 벗었다. 찬기운에 놀라 지레 겁을 먹은 것 같아 쑥스럽다.


오늘 일정은 직탕 폭포에서 8킬로 미터 강물길을 걸어 고석정을 지나 순담계곡 입구까지 걷는 일정이다. 소요시간은 4시간이다.

강으로 가는 길에 폭포와 돌다리가 나란히 너른 강을 가로지른다. 높지 않은 폭포라도 힘차게 물보라를 일으켜 흰 포말이 선명하다. 폭포 바로 위에 충북 진천의 농다리 같은 돌다리가 인상적이다. 이 돌다리를 가벼운 흥분을 느끼며 건넌다. 본격적으로 강물 윗길로 여행 시작이다.

부교가 놓인 강물 위에 들어선다. 처음 지나는 까닭이라 조금 설렌다. 볼록한 정사각형이 서로 맞물려 길게 이어진 길이 물 위에 펼쳐졌다. 밟고 움직일 때마다 발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와 부교가 첨벙 대는 물소리가 경쾌하다. 볼록 솟은 부교가 마치 배를 밟는 기분을 들게 한다. 발을 뗄 때마다 출렁거려 취한 사람처럼 덩달아 흔들리며 걷는다. 부교를 걷는 재미가 있다. 보폭이 부교 크기와 달라 불편한 감은 있지만 소풍처럼 기분이 좋다.

강물 깊이에 따라 물빚이 다르다. 안쪽 깊은 곳에는 에메랄드 빛이 선명하다. 한겨울이라 차갑겠지만 투명한 물빛이 수정처럼 아주 맑다.


강안은 용암지대로 다채로운 암석이 분포한다 제주도에서만 볼 수 있는 구멍이 숭숭 뚫린 현무암이 있지만 여타 재질의 돌들도 많이 섞여있다. 제주도와는 다른 양상이다. 눈에 띄는 것은 규모가 큰 바위들이 매끄러운 얼굴을 하고 포진하고 있다. 숱한 세월에 깎이고 닳아져 부드러운 외양이 달관한 모습으로 느긋해 보인다. 바위들이 강물에 섬처럼 편안하다.

걷는 코스는 강물 위만이 아니다. 강변 모랫길도 지나간다. 부드러운 모래가 깔려있어 푹신하다. 부교를 걷는 것과는 다른 안정감이 있다. 갈대 사이로 커다란 검은 암석들이 비단 이끼를 두껍게 입고 있다. 진녹색의 색채로 푸릇한 생기가 전해진다. 바위 표면도 거칠다. 암석 재질이 물러서 표면이 부스러지는 것 같다. 그래서 이끼가 자라기에 좋은 여건이 된 듯하다. 줄지어 선 바위들의 모습이 긴 세월을 대변하고 있다.


너른 강물 양안이 모두 깎아지른 바위 절벽이다. 협곡이 굽이굽이 이어진다. 아주 오래전 마그마가 관통한 곳이 물길이 되었다. 그래서 바람과 비가 길고 오랜 세월 동안 암벽에 새긴 문양들이 다채롭다. 그 결정이 바로 주상절리다. 마그마가 냉각 응고함에 따라 부피가 수축하여 생기는, 다각형 기둥 모양의 금이 주상절리다.


이곳 한탄강에는 다양한 주상절리가 산재해 있다. 형태도 제각각이다. 부채처럼 펼쳐 있거나 커튼처럼 흘러내린다. 어떤 절벽은 키스의 화가 클림트 그림에 등장하는 금빛 문양도 연상이 된다. 잔도를 걸을 때 만나는 주상절리만큼은 많지 않다.


중간의 눈축제 마당은 좀 엉성하다. 눈이 녹은 탓인지 아니면 흉내만 낸 건지 잘 모르겠다. 건너편 산자락에는 물길처럼 흘러내리는 눈과 얼음이 산기슭을 전부 덮고 있다. 인공 눈을 쏘아 조성했지만 풍기는 겨울 분위기는 좋다.

절벽 위에는 소나무와 정자가 운치를 더한다. 기암과 다 자란 소나무는 잘 어울린다. 그런 조합이 여기저기 보인다. 절벽 위에는 주택들이 보이는 데 눈에 거슬린다. 자연은 자연스러울 때가 제 맛이다. 뛰어난 자연경관을 사람들에게서 지켜내는 방안이 강력하게 시행되기를 바란다.


갈대밭도 지난다. 씨앗을 날린 후 쭉정이들만 남았지만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은 여전히 아름답다. 음지에는 눈이 많이 남아 한겨울의 아취가 가득하다. 흰 눈과 검은 바위가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자갈길을 지나 고석정에 이르렀다. 한여름에 보았던 청량함은 없지만 수려한 자태는 여전하고 의연한 기상도 그대로다. 앞에서 보나 다른 면에서 보나 낙락장송과 기암이 멋진 조화를 이루었다. 협곡의 실루엣이 해안선을 이루는 듯 바위들과 산봉우리들이 강물을 두고 중첩되어 이어진다.

4시간 정도 걸었다. 오늘 코스는 무난한 길이어서 누구나 즐길 수 있다. 강물 위를 걸으며 다양한 풍광을 만나는 기쁨이 있다. 언 강물에 눈이 쌓인 풍경이면 더 좋았겠지만 오늘도 괜찮았다. 자연은 찾는 이들을 박대하지 않고 언제나 후덕하다. 빈 손으로 보내는 일이 없다. 겨울이라도 문밖으로 나서서 넉넉한 자연의 품에 안겨 보기를 권한다. 트레킹 코스에서 버들강아지를 만났다. 한겨울이지만 봄이 움트고 있는 것이다. 겨울이 아직 한참 남았는 데, 봄이 오고 있다는 생각이 가슴을 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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