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석진 Feb 02. 2024

덕수궁에는 어떤 나무가 있을까?

숲해설 초보의 나무 공부 기록

숲해설가 동기들과 주기적인 나무 공부를 하고 있다. 매주 목요일에 모임을 가진다. 시간이 되는 사람들이 모인다. 모임 리더가 사전에 답사하는 수고로 나무뿐 아니라 맛집도 찾아가는 배움과 식도락의 시간이다. 나도 항상 참석하려고 하는 데, 이런저런 일들로 빠지는 경우가 많아 아쉽다.


이번 모임은 작정하고 참석했다. 덕수궁의 나무를 만나고 더하여 장욱진 화백의 회고전을 보기로 했기 때문이다. 덕수궁을 찾아야 하는 이유가 더 있다. 새롭게 돈덕전이 복원되었다. 덕수궁을 지나갈 때 꽤 긴 기간 동안 건축을 하고 있었는 데 마침내 완공이 된 것이다.

돈덕전

이어지는 한파에 아주 든든하게 옷을 입고 나갔다. 10시에 시청역에서 만났다. 오늘은 다섯 명이 모였다. 리더가 작은 핫팩을 나눠준다. 전에 본 적이 있지만 직접 사용해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별 게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깜짝 놀랐다. 엄청 뜨거웠다. 언 손을 곧바로 녹여줄 정도로 효율이 뛰어났다. 주머니에 넣을 때는 데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오전이라 그런지 덕수궁은 한가했다.


잎이 진 나무들은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겨울에는 주로 수피를 보고 동정을 해야 해서 간단하지가 않다. 다 비슷비슷하게 보인다. 그래서 세심한 관찰이 필요하다.


나무를 온전히 알려면 어린 묘목부터 시작해서 성장한 나무까지 봐야 한다. 수형처럼 전체를 볼 필요도 있고 잎 같은 개별적인 특성도 관찰해야 한다. 꽃과 열매뿐 아니라 씨앗도 중요하다. 계절별로도 모습이 달라진다. 잎이 진후에는 수피가 포인트다. 물론 꽃눈이나 잎눈도 포인트가 된다. 무엇을 제대로 안다는 것은 이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다.


석어당 앞의 살구나무에 섰다. 표찰이 있어서 살구나무지 외양만 봐서는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살구나무로써는 굉장한 거목이다. 자태가 당당하고 늠름하다. 꽃 피는 봄이 오면 피면 장관일 것 같다. 꽃이 필 때는 벚꽃과 아주 유사하다. 살구꽃은 벚꽃과 다르게 꽃받침이 뒤집어지고 꽃자루가 거의 없어 가지에 붙어서 핀다. 조상들이 꽃과 열매를 즐겼던 전통 정원수로 고궁에 많이 심었다. 중국에서는 공자가 살구나무 아래서 제자들을 가르쳤다고 전해진다. 빛 좋은 개살구는 시베리아 개살구가 열매는 예쁘지만 떫고 맛이 없어서 생겨난 말이다. 지금은 다채로운 과일들 속에서 살구가 존재감이 없지만 예전에는 많은 사랑을 받은 과일이었다.

석어당 살구나무

평소에 접하기 힘든 주엽나무도 자라고 있다. 주엽나무는 콩과 식물이다. 그래서 잎이 아까시나무와 회화나무와 비슷하다. 이 나무는 30년이 자라야 결실한다. 그때까지 자신을 지키기 위해 가시로 무장을 한다. 열매는 콩꼬투리가 달리는 데, 길이가 30 cm로 배배 꼬였다. 안에 든 콩은 아주 작다. 여기에는 사포닌이 들어있고 비누로도 쓰였다. 꼬투리열매는 조협이라는 생약명으로 불린다. 의서에서는 구규(우리 몸의 아홉 개의 구멍)에 좋다고 한다. 꼬투리 내피에는 달콤한 잼 같은 물질이 들어있어 사람들이 즐겨 먹었다. 실제로 어떤 맛일까 궁금하다. 영하 30도에도 끄떡없는 아주 튼튼한 나무다.

주엽나무 꼬투리(네이버 백과사전)

대한제국의 황궁인 덕수궁에는 황실의 문양이 여러 곳에 새겨있는데 그 문양의 주인공은 오얏 꽃이다. 우리가 아는 자두나무가 바로 오얏나무다. 오얏나무는 조선왕조 이씨의 나무로 알려졌다. 자두는 노자와도 연관이 있다. 노자의 본명은 이이로 오얏 이씨다. 노자의 모친이 오얏나무 아래서 노자를 낳았고 태어나자마자 이 나무를 자신의 성으로 하겠다고 노자가 말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자두는 꽃과 잎이 동시에 핀다. 생각보다 오랜 역사를 지녔고 그만큼 사랑받는 나무였다.

오얏꽃 문양 (사진출처 네이버)

수피가 아름다운 말채나무를 찾았다. 나무마다 지닌 개성이 있고 보이는 아름다움도 다르다. 나무는 주로 꽃으로 아름다움을 구분한다. 하지만 사람도 얼굴만 가지고 아름다움을 판단하지 않듯이 나무도 마찬가지다. 수형이 아름다운 나무가 있고, 피부 미인처럼 수피가 아름다운 나무가 있다. '말채나무라는 이름은 이 나무가 말의 채찍에 아주 적합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봄에 한창 물이 오를 때 가느다랗고 낭창낭창한 가지는 말채찍을 만드는 데 아주 적합하다. 말채찍으로 사용할 정도면 탄력도 있어야 하겠지만 아주 단단해야 한다.' 물오른 말채나무 가지로 말 궁둥이를 한 번 때리고 싶다.

말채나무 수피(사진출처 네이버)

덕수궁에는 우리나라에 처음 들여온 나무가 있다. 가시 칠엽수다. 1912년 고종 환갑을 맞아 네덜란드 공사가 선물로 들여온 것이다. 흔히 마로니에로 불리는 나무다. 이와 유사한 나무가 일본 칠엽수다. 두 나무의 가장 큰 차이는 열매껍질에 가시의 유무다. 마로니에는 가시가 있고 일본칠엽수에는 흔적만 남아 있다. 열매는 밤과 아주 유사한 데 더 반질거리고 아주 귀엽다. 보기와 달리 독성이 있어서 식용이 불가하다. 일본에서는 독을 우려내서 떡을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 꽃이 아름다워 유럽에서는 가로수로 많이 심고 밀원 식물로도 인기가 높다. 크리스마스트리모양으로 꽃이 피는 데 정말 아름답다.

칠엽수 꽃

그 외에도 아름드리 자란 측백과 개암나무와 향나무를 돌아보았다.

측백나무

나무마다 역사가 있고 이야기가 있다. 숲해설은 나무 이름만 알리는 일이 아니다. 보석을 찾아내듯 세심하게 관찰하고 탐구해서 나무가 품은 이야기를 찾아야 한다. 나무의 고유한 특성은 물론 나무와 연관된 역사와 문화를 함께 알아 갈 때 흥미를 유발하게 되고 이는 관심으로 이어진다. 관심은 사랑하게 되는 첫걸음이다. 자연의 소중함과 가치를 인식하게 돕는 일이 숲해설이 지향해야 할 길이다. 가야 할 길이 멀다.


#에세이 #숲해설 #덕수궁 #주엽나무 #살구나무 #말채나무 #자두나무 #마로니에





매거진의 이전글 자귀나무를 소개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