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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석진 Feb 06. 2024

나 어때?

호천재에서 선물로 받은 프로필 사진

서울에 살면서 가보지 못한 곳이 많다. 좋은 것은 곁에 있는 데 먼 데 가서 찾는 격이다. 그래도 나 같은 경우는 좀 나은 편이다. 돌아다니기 좋아하고 호기심도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못 가본 곳이 꽤 있을 것이다.


인왕산이 그렇다. 도심에 위치해서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갈 수 있다. 40여 년을 서울에 살면작년에서야 나도 처음 가보았다.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의 대표작인 인왕제색도의 무대가 바로 이곳이다. 기존 아파트 철거로 예전의 모습을 많이 찾았다고 한다. 작은 돌다리인 기린교가 그 흔적이다.  입구에  정선의 그림이 게시되어 실경과 비교해 보는 즐거움이 있다.

봄에 찍은 인왕산 사진

높지 않은 이 산에 호랑이가 살았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예전에는 그만큼 깊은 산이었으리라. 산은 암석과 소나무가 어우러져 아취가 있다. 아담하고 푸근하다. 그래서 그런지 찾는 이들에게 아늑함을 안긴다.


산자락에는 고풍스러운 한옥들이 많다. 서촌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유서가 깊은 동네다. 최근에 역사에 통달하고 서촌에 살았던 분의 안내로 서촌 역사 탐방을 했었다. 왕족부터  터를  잡고 사대부, 중인들로 이어지는 문화의 새로운 기운이 이곳을 통해 힘차게 일어났다는 역사를 듣고 그 자취 밟으며 돌아보았다.


고풍스럽기만 했던 풍경이 그 속에 깃들어 있는 역사를 듣고 나니 보는 시야가 달라져 보인다. 무엇인가가 뭉클한 느낌이다. 그렇게 돌아보면서 들렀던 곳이 호천재다.


호천재는 한옥마을에 있다. 산마루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한옥을 헐고 새로 지은 슬라브 건물로 건물주인이 직접 운영하는 카페다.


모던하고 깔끔한 카페에 들어서면 눈에 띄는 것이 있다. 커다란 흑백사진이 기저기 걸려있다. 사진은 문외한에게도 여느 사진과 달라 보인다. 서울 야경과 골목을 찍은 사진이다. 아내분이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데 부군이 사진작가다. 확실히 작가가 찍은 아우라가 풍긴다.

호천재

CD도 빼곡히 진열되어 클래식을 비롯한 다양한 음악도 들을  수 있다. 대형 프로젝트도 구비되어 미리 예약하면 영화도 감상할 수 있게 해 준다. 소규모 모임을 하기에 아주 적당한 곳이다. 실제로 숲해설 동기들과 모임을 하며 비밀의 화원을 함께 보았는데 아주 뜻깊은 시간이었다.


낮에 찾아가도 좋은 곳이지만 저녁에는 특별한 경치를 즐길  수 있다. 서울 도심 야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루프탑처럼 꾸며진 옥상에 올라가면 서울 도심을 조망할 수 있다. 커피를 즐기며 여유롭게 보석처럼 반짝이는 서울 야경을 감상할 수 있다.

서울 야경

주말에 사진작가님이 카페에 머무는 날에는 이곳만의 아주 특별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작가님이 직접 흑백 프로필 사진을 찍어준다.


친한 분들과 평일 밤에 호천재를 찾았다. 시내에서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시려다 문득, 호천재가 떠올랐다. 마침 일행이 옥인동에 거주하고 있어서 배웅도 해줄 겸, 야경도 볼 겸 가게 되었다. 오후 8시가 다 되어 차를 함께 타고 다. 언덕이 이어진 좁은 길이어서 운전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소형차여서 수월하게 도착했다. 주택가라 한적한 분위기였다.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었다.  한참 이야기 중에 사진 이야기가 등장했고 마침 작가님이 우리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는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해서 아주 기쁜 마음으로 한 사람씩 돌아가며 프로필 사진을 찍었다. 평일에는 하지 않는 이벤트인데 오늘은 특별하게 해 준 것이었다. 갑작스러운 행운에 기뻐하며 각기 가장 멋진 포즈로 카메라 앞에 앉았다.

나의 프로필 사진

사람마다 여러 컷을 찍었고 가장 괜찮은 것을 골라 즉석에서 파일로 전달받았다. 흑백 사진이었는데 정말로 근사했다. 네 사람 모두 하나같이 멋스러웠고 품격이 느껴지는 사진으로 마치 작품 같았다. 탄성을 지를 수밖에 없었고 뜻밖의 선물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한결같이 프로필 사진을 바로 바꿔야겠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로 바뀐 사진에 하나같이 멋지다는 찬사를 들었다. 사진 하나로 우쭐해졌고 대단한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동행한 이들의 사진과 사진 찍은 자리

사진 한 장이 큰 기쁨이 되었다. 이 사진으로 하루가 반짝반짝 빛이 났다. 여운도 길게 남을 것이다. 나를 아는 이들에게 좋은 인상을 줄 테니 말이다. 한 분야에 전문가가 되고 그 재능을 이웃에게 베풀기는 쉽지 않다. 흔쾌히 귀한 선물을 거저 베풀어 준 사장님께 감사를 드린다. 나와 같은 행운을 누리려면 주말 저녁에 호천재를 찾아가면 된다. 놀라운 선물이 기다린다.


#에세이 #호천재 #사진 #프로필 #인왕산 #서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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