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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석진 Feb 09. 2024

인왕산 일출 어때?

서울도심의 인왕산을 올라 일출을 만났다

새해가 되 산과 바다를 찾아 일출을 맞이하 가는 이들이 많다. '참 부지런한 사람들이다.'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굳이 가보고 싶다는 마음은 딱히 들지 않았다.


서울에도 많은 곳에서 새해맞이 일출 행사를 다. 집과 가까운 배봉산에서는 행사에 참여하는 이들에게 떡국까지 나눠준다. 너무 번거로운 일이고 새벽같이 집을 나서야 한다는 일이 마뜩지 않아 가보질 못했다.


아는 분이 단체 톡방에 인왕산 일출 사진을 올린 일이 있었다. 수시로 는 곳이라고 했다. 그것을 보고 나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지나가는 말로 친구들에게 가자고 했더니 실행력이 갑인 친구가 바로 날짜를 잡았다.

오늘이 일출을 보러 가기로 한 날이다. 전날 밤에 입고 갈 옷을 챙겨놓고 알람을 새벽 다섯 시에 맞추어 놓았다. 낮에 커피를 진하게 마신 탓인지 이른 새벽에 눈을 떴다. 시계를 보니 4시다. 잠자리에서 뒤척이다 그냥 일어나서 글을 쓰고 시간에 맞춰  집을 나섰다. 은  깜깜했고 바람이 차가웠다. 새벽 댓바람부터 따릉이를 타고 약속 장소로 갔다. 6시에 차 한 대로 셋이 출발했다. 인왕산 자락에 사시는 형님과 함께 산을 오를 계획이다.


북악스카이 웨이를 통해 가는 길은 캄캄했다.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서는 것이 굉장히 부지런한 사람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동행하는 이들이 마음도 잘 맞아서 흥도 났다.


새벽길을 쏜살같이 달려 수성동 계곡 입구에 차를 세우고 어둠에 묻힌 길을 올랐다. 가로등이 환하게 비추고 있어 걷는 데 특별한 어려움없었다. 어둠 속의 인왕산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길 곁에 잠들어 있는 소나무들의 자태가 왠지 숙연해 보였다. 계곡을 지나 인왕산 둘레길을 거쳐 한양 도성길로 정상을 향해 걸었다. 숲 사이로  내려다 보이는 도심은 야경의 불빛이 여전히 반짝인다. 어둠을 가르고 걷는 발걸음이 가볍다. 산의 품에 안겨 그런지 영하의 기온이지만 바람이 없어서 춥지 않았다. 어두운 하늘에는 완전히 이지러진 달의 자취가 가녀린 반원의 테만 남겼다. 눈으로는 선명하게 보이는 데 아쉽게도 사진으로 담을 수가 없다.

오전 7시 반이 오늘 일출 시각이다. 도성길을 오르는 데 어둠이 조금씩 거두어지는 게 육안으로 보인다. 희미하게 동이 트고 있는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희끄무레한 하늘에 붉은 자국이 물든다. 해가 장막 뒤에서 떠오르는 중이다. 미세먼지가 두텁게 드리워 해를 제대로 볼 수 있을지 염려가 .

인왕산 정상까지 오르는 길은 계단으로 되어 다리 운동이 저절로 되었다. 평소 운동을 꾸준히 해서 그다지 힘이 들 지 않았다. 오를수록 도심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하늘에는 붉은빛이 점점 영역을 넓히고 있다. 사람들 세상에는 네온사인의 불빛은 힘을 잃어가고 아침이 열리며 건물들이 제모습을 드러낸다.


능선을 따라 쉬지 않고 오르고 또 오른다. 마침내 정상이다. 사방팔방으로 트인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서쪽은 이미 환한 아침이다. 정상에는 젊은 커플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산마루에 바람이 불어 저절로 몸이 움츠러든다. 형님이 준비해 온 꿀차를 나누어 마신다. 달콤한 뜨거운 기운이 몸을 따스하게 감싼다. 한 잔의 차에 몸과 마음이 든든하다. 젊은 커플들에게도 온기를 나누어 주었다. 소소한 나눔이 미소로 피어난다.

점점 밝아오는 하늘에는 붉은빛만 감돌뿐, 해는 보이지 않는다. 한참을 기다려도 변화가 없어 조바심이 난다. 일출 시각이 지나고 지쳐 갈 즈음, 마침내 빨간 작은 얼굴이 손톱처럼 솟아났다. 애타게 기다렸던 해가 얼굴을 쏙 내밀었다. 해는 빠른 속도로 제 모양을 갖춰간다.  드디어 완전히 동그란 붉은 해가 떠올랐다. 일행들이 동시에  "일출이다!" 탄성을 지른다. 마음이 벅차다. 일출을 보는 느낌을 맛보는 순간이다.

장엄한 풍경을 사진에 담느라 마음이 바빴다. 생각보다 사진에 잘 담기지 않았다. 저토록 감동적인 장면을 눈으로만 보려니 애가 탔다. 내일모레가 설이다. 음력으로 다시 새해를 맞는다. 달력으로는 2024년이 꽤 지나갔지만, 또다시 새해를 맞는 마음으로 바람과 기원을 다짐해야 할 것 같은 데 겨를이 없다. 다음 일정이 바쁜 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뒤쳐져 내려가며 일출 풍경을 사진에 담았다. 소나무 사이로 헤 뜨는 풍경이 좋다.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서 부지런을 떨어보는 일이 생각보다 괜찮다.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것이 확실히 삶에 자극을 주고 생기를 불러일으킨다. 몸은 귀찮을지 몰라도 정신이 깨어난다. 해보지 않은 일을 해냈다는 작은 성취감도 맛본다. 내려와 아침을 함께 먹으며 나누는 이야기에 활력이 넘친다. 일출이 주는 기운이고 선물이다. 의미 있는 작은 일들이 모여 삶을 기름지게 하고 풍요롭게 만든다. 좋은 이들과 소소한 일들을 자주 벌여야겠다.

#일출 #인왕산 #해맞이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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