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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석진 Jun 17. 2024

아닌 밤중에 욕을 먹었다.

강아지와 밤 산책을 나서는 길에

아닌 밤중에 호되게 욕을 먹었다. 아주 찰진 육두문자다. 사람이 화가 나면 보이는 것이 없다고 하지만 너무 심한 욕지거리를 들었다. 화가 나면 예의도 체면도 사라진다. 나이가 지긋하신 분이 입이 엄청 거칠다. 듣는 나는 당연히 불쾌하고 화가 났지만 잠자코 있을 수밖에 없었고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해야 했다. 잘못은 온전히 내 몫이었기 때문이다.


원인은 강아지였다. 처음에 나도 강아지를 키우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딸이 강아지를 너무 좋아해서 어쩔 수 없이 기르게 되었다. 강아지를 키우면 의무가 뒤따른다. 평범한 일이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그중 하나가 정기적으로 산책을 시키는 일이다. 배변을 밖에서 하는 강아지는 하루에 세 번은 기본이다. 우리는 다행히도 하루 한 번 정도 강아지를 데리고 나간다. 그렇게 밤 산책을 나서는 길에 일어난 일이다.

쁨이

어찌 된 영문인지 우리 강아지 쁨이는 경로사상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다. 이 녀석은 희한하게 나이 든 남자 노인을 보면 짖으며 달려드는 못된 습성이 있다. 여자들은 지나쳐 가도 무심하지만 나이 든 남자가 보이면 덤벼든다. 집안에서는 사람들을 보고도 잘 짖지 않는 편인데 이상하게 밖에만 나오면 달라진다.


길을 걷다가 갑자기 개가 덤벼들면 놀라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개가 크든 작든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애완견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 짓을 벌이는 것이 우리 개라는 게 문제다. 그래서 산책할 때마다 목줄을 짧게 잡고 다니며 조심을 한다. 하지만 한눈만 팔면 이런 사태가 벌어진다.

쁨이

그날도 산책시간이 늦은 밤이라 사람들이 보이지 않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어두운 길을 걷다가 잠깐 핸드폰을 쳐다본 사이에 노인 한 분이 나타나자 이 녀석이 달려들었다. 할아버지는 혼비백산을 했고 나는 더 놀랐다. 목줄을 휙 잡아당겨 닿지는 않았지만 곧바로 '죄송합니다' 하고 말씀을 드렸다. 하지만 그분은 사과에 아랑곳하지 않고 버럭 화를 내며 욕설을 뱉었다. 그분도 어지간히 놀란 모양이었다. 그래서 거듭 '정말 죄송합니다' 하고 반복했지만 그분의 목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화를 내다보니 더 화가 나는 모양이었다. 점점 욕이 심해졌다. 그러다 보니 나도 인내가 바닥이 났다. 그래서 강아지를 휙 끌고 가며 '죄송하다고요!' 하고 소리치며 그곳을 벗어났다.


우리 강아지는 비숑프리제로 입이 조막만 해서 과일도 조금만 크면 먹지 못한다. 그래서 작게 잘라줘야 한다. 집에서 이 녀석이 으르렁 대고 무는 시늉을 하지만 한 번도  적이 없다. 겁만 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 녀석이 밖에만 나오면 터프가이가 되니 아주 미칠 노릇이다. 그렇다고 쥐방울만 한 녀석에게 입마개를 씌울 수도 없고 난처한 상황이다. 어쨌든 원인제공을 기에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지만 화가 난다고 거친 욕설을 들어야 하는 것도 고역이다.


반려견이 있는 이들은  무엇보다 먼저 개를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이들이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매사에 그들의 입장에서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다툼을 피할 수 있다.


오늘 같은 상황을 두 번 다시 겪지 않고 싶다. 그러려면 강아지와 산책할 때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야겠다. 행인들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도록 한눈파는 일 없이 강아지에 집중하고 매사에 조심해야겠다.


사람들도 조금만 너그러웠으면 좋겠다. 말 못 하는 동물들이라 조심을 해도 생각지 못한 일이 일어난다. 조금씩 서로를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 우리의 일상에 여유가 없어서 그런 것 같아 안타깝다.


말이 나온 김에 강아지를 기르는 이들의 몰상식한 행태는 반성해야 한다. 강아지를 산책시킬 때 배변봉투를 반드시 지참하고 뒤처리를 해야 하는 데도 아직도 그대로 가버리는 이들이 많다. 산책길에 개똥이 보이면 화가 난다. 개를 키우는 입장에서도 이해가 가지 않는데 개를 싫어하는 이들은 얼마나 더할까? 경제적인 수준은 선진국에 도달했지만 정신 문화면은 아직도 개발도상국 수준에 머무르는 측면이 많다. 이런 작은 일들 하나하나를 바로 잡고 고쳐 나갈 때 서로를 배려하는 성숙한 사회가 될 것이다.


#반려견 #강아지 #산책 #에티켓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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