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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석진 Jun 25. 2024

성악가를 만나다

한양대 윤종민 외래교수의 인문학 강의

인문학 강의로 성악가의 삶을 만났다. 주인공은 한양대 음대 외래교수 윤종민이다. 보이는 것 뒤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훨씬 많고 이 점들이 사람들에게 더 큰 영향과 인상을 준다. 맨 처음 강렬했던 느낌은 그의 말이 빚는 음색이었다. 성악으로 단련된 중후한 저음이 바로 이목을 끌었다. 목소리의 아름다움과 힘이 선사하는 매혹이다. 무어라 해도 가장 좋았던 점은 눈앞에서 들려주는 깊고 풍부한 이시스트의 육성의 노래였고 그 노래는 홀했다.


한 사람이 오는 것은 한 사람의 역사가 온다는 것을 강연을 통해서 경험한다. 힘든 길을 꿋꿋이 지나 우뚝 선 한 사람 지나온 발자취를 라갔다. 내가 가보지 못한 다른 길을 경험하는 시간이다.



한양대 음대를 졸업한 그는 독일로 유학을 떠난다. 2008년부터 2013년까지 국립 만하임 음대에서 치열하게 5년을 공부하며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리고  2012~2020 독일 오페라무대에서 300여 편의 작품을 공연했다.


그가 당면한 가장 큰 어려움은 언어였다. 외국어의 스펙트럼도 넓다. 영어는 물론이고 이태리어, 독일어, 프랑스어, 라틴어 그리고 러시아어까지다. 음악은 언어를 모르고 하기는 어려운 예술이다. 더구나 오페라는 외워야 하는 가사가 어마어마하다. 그가 맨 먼저 과제로 받은 것이 러시아 오페라였다. 알파벳조차 생경한 한 번도 접하지 못한 외국어로 가사를 외워야 했다.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철자 하나하나 발음기호를 찾아 한글로 병기하고 노래를 들으며 반복해서 암기를 했다. 하루 만에 암송해 낸 그에게 교수는 그의 음악에 대한 진심과 열정을 보고 그를 인정하게 되었다. 그의 독기가 놀랍다. 사람들에게 위로와 나눔을 주고 싶은 성악가의 간절한 꿈이 있어 난관을 뚫고 전진한 것이다. 그는 무려 3시간이 넘는 대본을 외울 때, 걸으면서 외우면 잘 된다는 비결도 들려주었고 오페라가 힘들지만 여러 역할을 통해 다양한 직업을 경험하는 것도 자신이 누리는 큰 유익이라고 한다.


두 번째 어려움은 문화의 차이였다. 그 어려움을 다음과 같은 독일어로 요약된다.


DU VS SIE ( 너 와 당신)

JA ODER NEIN (예 와 아니오)

SCHNELL VS LANGSAM (빠름과 늦음)

NATUR HEILEN VS ANTI BIOTIKUM (자연치유와 항생제)

PROBE VS KRANK(공연과 질병)


독일에서는 나이와 상관없이 친밀도에 따라 호칭이 차이가 있다. 차서가 분명한 우리와는 너무 다른 문화다. 연장자나 우러러볼 교수에게 너라고 반말을 서슴없이 해야 한다는 뜻이다.

독일에서는 예와 아니오가 분명하다. 우리처럼 겸양이 없다. 마음이 원하는 바를 가감 없이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문화다. 우리처럼 예의를 차리는 허식이 없다. 배고픈데 아니요 괜찮다고 하면 아무것도 먹을 수 없다. 참 야박하다. 하지만 분명하고 정확하게 뜻을 전하는 의사소통이다. 확실히 실리를 추구하는 독일답다. 여느 유럽 답게 독일도 모든 절차가 느리고 시간 품이 많이 든다. 어떤 일이든 한 달이 기본이고 공무원을 만나려면 3 주전에 약속을 해두어야 한다. 빨리빨리에 물든 한국인은 견디기 어려운 환경이다. 특이한 점은 아파서 병원에 가면 약을 잘 주지 않는다. 자연치유가 우선이다. 감기에 걸리면 약을 먹고 빨리 치료를 해야 하는 상황에도 뜨거운 차나 비타민을 먹어라는 처방이지 항생제는 처방하지 않는다. 항생제를 먹는다고 하면 아주 많이 아프다는 사실로 인식된다. 아파도 할 수 있으면 공연에 우선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우리의 미덕이지만 독일에서는 이상한 일이 된다. 아프면 오지 않는 것이 문화다.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와는 많이 다르지만 부러운 점이 많은 문화가 아닐 수 없다.


오페라 돈조반니를 첫 곡으로 들려주었다. 한글 가사를 스크린으로 볼 수 있어서 감상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돈조반니의 여성편력을 고스란히 볼 수 있는 위트 있는 가사와 그의 탁월한 표정 연기와 더불어 아름다운 음색으로 부르는 노래는 우리를 황홀한 성악의 세계로 인도했다.


문화가 다르고 언어가 다름에도 그가 외국 용병으로 당당히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문화에 대한 이해가 있었고 근면 성실을 통한 그의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부단한 노력의 결과였다. 노래를 하면서 발음에 외국인의 느낌을 없애기 위해 끊임없이 반복해서 연습을 해야 했고 음악적 해석에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으며 노래 가사의 표현력을 높이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독일 청중들은 오페라를 사랑해서 같은 곡이라도 반복해서 관람한다고 한다. 공연 중 자신이 중점을 둔 섬세한 해석과 표현을 관객들이 알아차리고 격려를 해 줄 때 큰 감동을 맛보는 것은 이러한 그의 노력의 결실이었다.


음식도 그를 어렵게 했다. 독일 사람들은 치즈는 좋아하지만 마늘을 아주 싫어한다. 그래서 연주 전, 연주 후에 음식을 마음대로 먹는 것이 어려웠다. 그에게 마늘냄새가 난다는 차별적인 말도 많이 들어야 했다.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시간이 지나서는 '너는 치즈 냄새 나'라고 가볍게 응수하게 되었다. 지금도 습관이 되어 마늘이 들어간 음식은 피하게 된다고 한다. 술자리 후에 해장하는 방법이 햄버거 밖에 없다는 사실은 음식이 얼마나 힘들었을까를 웅변한다.


외국 생활을 하다 보니 그전에는 몰랐던 감성도 깨닫게 되었다. 김동진 곡 '가고파'의  절절한 감성을 이해하게 되었고 기교가 아닌 마음으로 부르는 노래가 되었다. 그가 즉석에서 들려준 가고파는 그리움 그 자체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예수님을 믿는 신앙이 그의 삶의 초석과 근간이 되었다고 자신의 신앙고백과 같은 '여정'이라는 곡을 잔잔히 들려주었다. 


"지금까지 나의 여정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라 지금까지 나의 모든 여정 인도하셨네

나의 남은 모든 여정을 하나님께 맡기리라 나의 모든 삶 마치는 날까지 붙드시리"


그가 생각하는 성공은 사람들과 서로 소통하고 나누는 사회 구성원으로 역할을 하고 싶은 마음이다.

성공을 위해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추구하지만 성공하기보다는 행복하기를 추구하는 삶이 지혜롭다고 전한다. 마지막으로 질의응답 시간에 오페라를 즐길 수 있는 팁을 알려주었다. 출연하는 인물들의 성격을 파악해야 하고 스토리도 어느 정도 알고 가는 것이다.


삶은 어느 것도 쉬운 게 없고 성취를 위해서는 각고의 노력과 열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만난다. 자신의 길을 찾아내고 그 길을 멈추지 않고 처절하고 우직하게 살아 아름다운 꽃을 피운 이야기를 들었다.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그 안에 샘물이 감춰져 있기 때문이고 삶이 아름다운 것은 내면에 인내와 눈물이 아로새겨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그런 아름다운 삶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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