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중 맨발 걷기, 왠지 특별할 것 같지 않은가? 오늘은 서울을 벗어나 교외로 나가 맨발로 걸었다. 비가 왔지만 개의치 않았다. 처음 시도한 일인데 기대 이상이었다.
맨발 걷기가 주는 감흥은 여러 가지다. 맨 땅을 밟는 시원한 촉감이 첫째다. 자연의 모습으로 자연과 일체 되는 시간이기도 하다.감각이 살아나고 거기에 집중하면 잡념도 사라진다.평범한 날에 걷는 것도 좋지만 비오는 날 맨발 걷기는 특별한 경험이다.사실 나는발바닥이 예민해서 잘 걷지 못하지만 아내가 좋아해서 따라다닌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맨발 걷기는 운동효과도 탁월하다고 한다.
“맨발 운동은 발을 자극하는 발반사 요법 효과가 있다. 신체 하중이 발바닥에 분포한 신경반사구, 림프체계, 신경말단을 자극하며 반사구 영역과 연결된 부위의 혈액순환이 증가하면서 운동 효과가 더 커진 것으로 본다”(경북대 사범대학 체육교육과에서 발표한 논문) 정서적으로 좋고 운동 효과가 있다고 하니 금상첨화인 셈이다.
비뿌리는 날에 홍유릉에 갔다. 홍유릉은 경기도 남양주에 있다. 고종과 명성황후의 무덤인 홍릉과 순종과 두 황후의 무덤인 유릉이 있는 곳이다. 걸었던 곳은 왕릉이 아닌 홍유릉 둘레길이다. 이곳은 맨발 걷기 성지로 꼽힌다. 유감스럽게 왕릉 내에서는 불경스럽다고 맨발로 걸을 수 없다. 봉분이나 입구는 이해가 가지만 걷기에 좋은 주변 모두를 금지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잘 되지 않는다. 국민의 건강이 우선이지 왕조시대도 아닌 지금, 그때처럼 예를 갖춰야 한다는 게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사실 이런 관점도 의아하다. 경건한 곳에서는 오히려 신을 벗고 들어가는 것이 더 예의를갖추는 태도가 아닐까? 사고만 바꾸면 아무 문제도 될 것이 없는데 어느 지엄하신 분의 분부인지 거둬드리기를 바란다.
요즘은 지자체에서 맨발로 걸을 수 있는 황톳길을 많이 조성하고 있다.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조금은 거칠어도 인공이 아닌 자연의 숲길을 자연의 품 속에서 걷는 것은 황톳길 이상으로 좋다.
비 오는 날은 걷기에 불편할 수 있다. 우산을 쓰고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점만 제외하면 아주 좋다. 무엇보다 부드러운 흙을 발바닥으로 온전히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오늘 걸어보니 몽글몽글한 흙의 느낌이 좋았고 부슬부슬하고 촉촉한 땅에 발자국을 남기며 걷는 것도 재미가 있었다.
다행히 세차게 쏟아지지 않는 빗소리도 감미로웠다. 물안개가 피어오른 몽환적인 숲 속에서 뻐꾸기 소리가 동화처럼 들려서 신비로웠다. 숲길도 호젓하고 한적했다. 우산이 없어도 나쁘지 않은 상황이었고 아예 비를 맞으며 걸어도 좋을 것 같았다. 길가의 묵힌 밭에는 개망초가 만발했다. 심지도 가꾸지도 않은 꽃밭이 눈부시다.
개망초
자연이 살아 숨 쉬는 청정의 숲이라 그런지 놀랍게도 두꺼비를 만났다. 그것도 한 두 마리가 아니다. 산으로 난 길섶에서 색깔도 다양한 두꺼비들이 느릿느릿 걸어간다. 어떤 녀석은 낙엽 색깔과 너무도 비슷해서 얼른 봐서는 구분이 안 간다. 붉은빛을 띤 녀석도 보이고 알록달록한 아이도 있다. 두꺼비가 보이니 뱀도 나타날까 무섭다.
두꺼비
땅에 집중하며 걷지만 숲의 풍경도 눈에 들어온다. 비 오는 날은 흐려서 분위기가 우중충할 것 같지만 나무들은 싱싱하고 생기가 넘쳐서 오히려 환한 느낌이다. 나뭇잎들이 초록빛을 뿜어내는 마법을 부리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숲이 빛난다.
반가운 꽃도 만났다. 연꽃이 꽃봉우리부터 활짝 핀 자태로 우리를 반긴다. 우리 마음에 등 하나를 켠다.
마음도 따라서 밝아진다.
이곳이 좋은 점 하나는 발을 씻을 수 있고 족욕을 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는 것이다. 비를 피하며 앉아 피곤한 발을 시원한 물에 담그고 비 오는 숲을 바라볼 수 있다. 조용한 시간이면 더 좋겠지만 아주머니들의 수다도 괜찮다. 맨발 걷기를 오래 했는데 병이 낫지는 않았지만 아프지는 않단다. 그런 저런 이야기들이 수런수런 비와 함께 어우러진다. 족욕탕에는 매끈한 돌멩이들이 깔려있어 밟고 걸으면 지압이 되어 아주 시원하다. 책을 꺼내 읽어보려 하려는데 돋보기가 없으니 눈이 아파 포기를 하고 멍을 때린다. 그렇게 두 시간 가까이 비 오는 숲에서 알토란 같은 시간을 보냈다.
돌아오는 길에 면목동에 있는 동원시장에 들러 보리밥을 먹었다. 시장이 반찬이 되고 맛집이라 맛은 말할 필요가 없으니 꿀맛이 바로 이런 거겠지. 그 시장에는 메밀 전이 아주 맛이 있어서 배추 전, 매운 전, 전병을 고루샀다. 십 수년 동안전을 부쳤다는 주인이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은 데 계속하게된다는 넋두리를 들으며 삶의 애환이 오롯이 담긴 음식에 더 정이 간다.몸과 마음이 풍성해진 넉넉한 주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