푹푹 찌는 한여름이다. 올해는 열대야가 연일 지속될 만큼 무덥다. 이런 지독한 무더위를 뚫고 트레킹을 나섰다. 이번에 계곡 트레킹을 처음 맛보고 경험했다. 숲길을 걷는 것도 좋지만 계곡 물길을 걷는 묘미도 남달랐다.
계곡 물길을 걷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 맛은 아주 시원하고 상큼했다. 이끼 낀 바위가 미끄러워 두 번이나 넘어졌지만 약간 스치는 정도로 경미한 일일뿐 물길을 걷는 즐거운 감흥을 떨어뜨리지 못했다. 사전에 물길을 걷기 위한 준비를 하고 왔기에 아무런 제약 없이 물로 뛰어들었다. 거칠 것이 없는 자유다. 일탈이란 사람을 흥분하게 만든다. 개구쟁이가 장화를 신고 물을 마구 텀벙거리며 걷듯 사방팔방으로 물을 튀겨 본다. 완전히 동심으로 돌아간 기분이다. 털썩 물에 주저앉았다. 배낭이 신경이 쓰이지만 젖어도 별 탈이 없기에 상관없다. 물에 몸을 담그고 바라보는 풍경이 아주 그만이다. 울창한 숲과 푸른 하늘에 흰구름이 목가적이다. 턱밑까지 수심이 깊은 곳에서는 온몸으로 시원함이 밀려든다.
원래 깊은 계곡은 여름에도 물이 차가워 손발이 시릴정도라 오래 참기 어렵다. 그런데 아침가리 계곡물은 달랐다. 차가움을 느낄 수 없었고 시원해서 부담이없었다. 비가 내린 지 오래되어 수량이 많지 않아 깊이가얕았고 그 위로 뜨거운 햇살에 수온이 올라간 이유다.
아침가리는 강원도 인제에 위치한 방태산 자락에 있다. 방태산은 1,435미터 높이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자연림이라고 일컬을 정도로 나무가 울창하다. 이곳은 사계절 물이 마르지 않으며 희귀 식물과 어종이 다양하다. 야생화의 천국인 곰배령도 이곳에 있다. 이곳은 전쟁이 발발해도 느끼지 못할 만큼 오지로 아침가리는 아침에 밭을 갈 정도의 해만 비치고 금방 져버릴 만큼 첩첩산중이라는 의미와 밭뙈기가 아주 적어 아침나절에 다 갈 수 있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라고 한다.
이번 트레킹은 신한은행퇴직동우회 행사다. 방동약수삼거리에서 출발하여 가파른 방동리 고갯길 3킬로를 오르고 3킬로미터 비포장 내리막길을 지나 조경동교에 이른다. 이곳에서부터는 6킬로미터 계곡 물길을 걷는 총 12.5킬로미터 거리로 약 다섯 시간여정이다.
동우회행사는 당일치기로 새벽에 집을 나서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최소 새벽 다섯 시 반에는 일어나야 출발시간을 맞출 수 있다. 그래서 출발은 항상 부담스럽다. 이렇게 요란을 떨며 가야 할까? 하는 부정적인 마음이 일지만 막상 출발해서 가보면 참 잘 왔다는 결론을 매번 얻는다.
버스를 타고 가는 길에 횡성휴게소에서 해바라기를 보았다. 여름의 정열을 담은 태양의 꽃답게 활짝 피어났다. 여름철에 피는 꽃은 정열의 꽃이다. 무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당당히 피어나기 때문이다. 휴게소 뒤편 산자취가 아름다워 사진에 담았다. 박주가리꽃도 풍경에 장식을 더한다.
해바라기/박주가리
트레킹 초입길에 방동리 약수터가 있다. 이름난 약수를 지나칠 수 없다. 철분 함량이 높아 약간 비린내가 난다. 탄산을 함유하여 쏘는 맛도 있지만 비위가 약한 사람은 마시기가 쉽지 않다. 몸에 좋은 약수라고 하니 한 사발을 떠서 호쾌하게 들이켰다. 조금 비렸지만 톡 쏘는 청량감이 이를 상쇄했다.
방동약수
방동리 고갯길은 가파른 길이다. 우리 일행은 모두 걸어가는 데, 차를 타고 가는 이들이 많아서 차량 통행이 이어진다. 깊은 산골의 맑은 공기를 찾아왔는데, 차량 배기가스를 마시며 걷는 것이 마뜩잖았다. 편리함도 좋지만 산을 찾아와 굳이 차를 타고 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심리를 모르겠다. 숲길에는 차량 통행을 제한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울창한 숲이 해를 가려줘서 무더운 날이지만 걸을만했다. 야생화가 여기저기 피어있다. 물기를 머금은 산이라 물봉선이 유난히 많다. 대부분 봉숭아처럼 분홍빛인데 희귀한 하얀 물봉선도 보인다. 길 초입에 벌개미취도 보랏빛 꽃을 터뜨려 가을 분위기를 풍긴다. 푸른 숲에 간간이 얼굴을 내미는 꽃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산비장이도 노란 꽃대를 여기저기 세우고 우리를 반긴다.
벌개미취/ 물봉선
아침햇살이 녹음에 비쳐 눈부신 풍경이 눈길을 끈다. 한여름에 만나는 여름 풍경이 좋다. 산마루에 자작나무 군락이 있다. 흰 수피가 도드라져 보인다. 자작나무가 풍기는 우아한 자태가 언제 봐도 매력적이다.
마침내 오늘의 하이라이트 계곡이다. 좁지 않은 폭의 너른 계곡물이 보기만 해도 시원하다. 배낭을 벗고 주저하지 않고 물에 몸을 담근다. 열기에 데워진 몸이라 상쾌함이 밀려온다.
더위를 식히고 간단한 간식 뒤에 본격적인 물길로나선다. 상당히 비장한 분위기다. 물속에 있는 바위가 상당히 미끄러워 주의해야하고 꼭 스틱을써야 한다. 조심한다고 했지만 미끄러운 바위를 밟아 뒤로 넘어졌다. 다친 곳이 없으니 해프닝이다. 유난히 푸른 하늘에 흰구름이 한여름의 절정을 알린다.
작은 폭포도 만난다. 물소리가 우렁차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하다. 그렇게 마음껏 물길을 신나게 걸었다. 앞으로 넘어져 물을 먹을 뻔 한 뒤로 물길을 벗어나 산길로 걸었다. 가는 길에 아름다운 나비 한 마리를 만났다. 산제비나비다. 신비한 푸른빛 큰 날개를 가졌다.나비를 바라보며 마음의 여유를 즐긴다.
산제비나비
물길을 걷는 즐거움이 컸지만 힘도 많이 들었다. 물을 벗어난 산길도 험했다. 뾰족하고 거친 돌길이다. 꽤 긴 거리를 그렇게 걷자니 쉽지 않았다. 아침가리 계곡 트레킹은 상당히 힘든 일정이다. 감당할 체력이 있어서 감사했다.
간식을 중간에 먹었지만 체력 소진이 되어 매우 시장했다. 세 시가 훌쩍지나 원대리 막국수 집에서 감자전, 도토리묵, 곰취수육, 막국수를 먹었다. 맛을 이야기해서 뭐 하랴! 엄지 척이다.
한여름이 가는 길목에서 짙푸른 숲에 숨겨진 비경 속을 걸었다. 물길을 걷는 짜릿함을 맛보았다. 더위를 물리치는 계곡물의 시원한 맛을 실컷 누렸다. 여름이 가고 추운 겨울이 오면 그리워질 추억 하나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