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가문비 짙은 녹음이 드리운 숲이다. 독일에서 흑림을 구성하는 나무라 음영이 짙다. 사위가 온통 짙푸르러도 햇살에 반짝이는 언저리는 싱그러운 초록이 빛난다. 여름의 막바지를 아는 듯 매미소리와 풀벌레 소리가 지천이다.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모든 소리는 소음이지만 자연이 빚는 음향은 귀에 거슬리지 않는다. 자연의 넘치는 소리에도 마음은 편안하다.
숲 한가운데 놓인 나무벤치에 누워 살랑이는 바람을 맞는다. 벤치 앞에 가녀린 줄기를 곧추세우고 어린티가 묻어나는 아까시나무 묘목은 여린 바람 줄기에도 몸을 살랑인다. 아주 작은 바람의 몸짓도 놓치지 않는 것이다. 앉아있는 나는 바람을 느끼지 못해도 눈은 바람을 맛본다.
독일가문비 무리 곁으로 메타세쿼이아가 이웃하고 자란다. 근엄함을 지닌 가문비와 달리 메타 숲은 경쾌하다. 밝은 녹색이 빚어내는 싱그러움이 어린아이의 천진함 같다.유난히 곧은 나무 기둥이 수직하여 하늘로 치솟은 모습에 마음도 가지런해진다.
우거진 숲에서 지독하게 달라붙던 모기들은 자취를 감췄다. 나무들이 내뿜는 피톤치드가 숲을 정화한 덕이다. 광합성이 가장 활발한 시간에 우람한 나무들이 생성하는 신선한 산소가흘러넘친다. 풍요로운 이 숲에서 머무는 이 시간이 참으로 여유롭다.
미동도 없는 나뭇가지 사이로 청량한 바람이 지나간다.
바람이 분다고 모든 가지가 흔들리는 것은 아니다. 걸림이 있고 거침이 있어도 바람은 제 길을 찾아 마음대로 넘나들며 어린 가지들을 흔든다.바람은 자유로운 방랑자다.
처서를 지나 가을을 품은 바람이 다정하다.후덥지근함을 한풀 벗고 서늘함이 깃들었다. 꿈같은 밀월의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간다. 짧은 봄과 더 짧은 가을은 그렇게 우리 곁을 찾아오고 있다.
이 시간은 서대문에 있는 안산에서 누리는 호사다.
도심에 이런 좋은 숲이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다. 이곳에는 맨발로 걷는 황톳길이 세심하게 관리되어 최상의 수준이다. 안산 자락에는 무장애 길뿐 아니라 반려견과 걸을 수 있는 숲길도 조성되어 있다. 그곳에서 강아지와 함께 산책을 하다 쉬는 시간에 누린 여유다. 여름날 좋은 추억 하나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