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석진 Aug 28. 2024

여름이 가는 길목

홍유릉을 걸으며 맞는 가을

여름이 간다. 아침나절 바람이 신선하다. 극악스럽던 무더위도 꽁지를 내리고 있다. 한낮의 온도는 여전히 30도를 오르내려도 바람에 서늘한 기운이 서려 더위가 인 눈치다. 계절의 흐름은 무엇도 막을 수 없다.


홍유릉 둘레길을 찾았다. 맨발로 걷기에 아주 좋은 환경이라 자주 오고 싶어도 거리가 떨어져 쉽지 않다. 아내가 쉬는 날을 맞아 도시락을 싸서 간다.  숲길 걷기 가장 좋은 시각에 맞추려고 마음을 먹었지만 여의치 않다. 오전 11시 다 되어 숲에 도착했다.


도로는  그렇게 막히는지 마치 명절 연휴 귀경길 같이 차가 길 위에 섰다. 한참을 기다리다 지나고 보니 도로 한쪽이 공사 중인 까닭이다. 별 것 아닌 일이라도 때로는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을 보면 작은 일이라는 것이 따로 없는 것 같다.

좀작살나무 열매

차를 세우는 주차장에 보랏빛 고운 열매가 탐스럽다. 좀작살나무에 알알이 열매가 익어간다. 그라데이션처럼 초록빛에서 보랏빛으로 물들어가는 자태가 곱다.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다. 입구에 주엽나무 꼬투리 주렁주렁  렸다. 나무도 계절에 맞춰 내실을 다지는 중이다. 숲에는 쑥뿌쟁이같은 국화꽃이 하게 웃다.

주엽나무/쑥뿌쟁이

 아내는 초입부 맨발이다. 나는 아직 맨땅에 익숙하지 않아 그냥 걷는다. 울창한 숲길로 그늘이 드리워 덥지 않다.. 숲에 들어서면 제나 기분이 쾌하다.  숲이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시각이라 더 싱럽다.


가을의 문턱에 연꽃이 만개했다. 개화기간이 상당히 길다. 달포 전에 올 때 꽃이 피었었는데 지금도 여전히 꽃망울을 터뜨리는 중이다. 가는 여름을 보내는 아쉬움을 화려한 꽃송이를 보며 달랜다. 꽃은 언제나 아름답다.


시조를 한 수 읊었다.


연꽃 연가 / 정석진

무더위 숨죽인 날
실한 햇살 결실 맺네

깊이를 잴 수없이
푸른 하늘 청명한데

붉은 연 정열로 피어
가는 여름 달래네.


하늘빛도 맑고 높다. 순도 높은 푸른빛이 보이는 하늘이다.  탁 트인 하늘도 곱지만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하늘이 더 매혹적이다. 가을 하늘이 우리 곁으로 왔다.


여름이 은 숲에 풀벌레 소리가 빼곡하다. 간간이 새소리도 들리지만 귀뚜라를 비롯한 가을벌레들의 주연인 무대 한창이다. 나뭇가지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의 맛은 참으로 달콤하다.


산길을 걸어 오르니 땀이 솟는다. 한여름에 흘리는 땀과 다른 느낌이다. 기분 좋은 뿌듯함이다. 서늘한 바람에 몸이 가볍다. 산에 들어서며 나도 맨발로 걸었다.  의외로 견딜만해서 성큼성큼 아내를 뒤따른다. 서늘한 맨땅의 촉감이 좋다.  강아지도 동행하는 길이 한결 정겹다.


산을 내려와 싸 온 도시락을 먹었다. 아내와 둘이서 차린 단란한 식탁이다.  소찬이라도 야외에서 먹는 밥맛은 특별하다. 식사 후에 족탕에 발을 담근다. 차갑지는 않지만 시원해서 좋다. 책을 꺼내 여유를 부린다. 시원한 물에 발을 담근 채 책을 읽는 즐거움을 누린다.


여유롭고 행복한 기분에 빈자의 행복을 누린다고 친구들에게 소식을 전했더니 누군가가 찻값을 보냈다. 마음이 넉넉한 친구들이 있어 좋다. 가을이 오는 길목의 하루가  찬란하다.


#가을 #여름 #홍유릉 #숲길 #가을하늘





매거진의 이전글 여름 숲에서 누리는 한나절의 맛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