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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석진 Sep 03. 2024

흐린 날은 흐린 대로 좋다

흐린 날의 감상

흐린 날은 흐린 대로 좋다. 사실 나는 화창한 날을 사랑한다. 특히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아무 이유도 없이 좋다. 공연히 마음이 벅차오르고 기대와 설렘이 인다. 그래서 가끔 지중해의 명징한 하늘이 그립다. 푸르다 못해 물이 새어 나올 것 같은 그 맑음을 말이다. 스페인의 하늘이 크로아티아의 하늘이 그리고 오스트리아의 하늘이 눈에 아른거린다.


감사하게도 우리나라의 가을 하늘 지중해보다 뒤지지 않는다. 구월이 들어선 요즘 가을이 하늘에 담겨있다. 며칠 전 만난 하늘의 맑은 얼굴은 지난해 여름에 만났던 스페인 알함브라의 하늘과 꼭 닮았다.

화창한 하늘

내가 좋아한다고 매일이 화창하기를 바랄 수는 없다. 모든 날이 맑다면 아마도 흐린 날을 그리워하게 될지도 모른다.


오늘은 골프 라운딩 하는 날이다. 운동 주관하는 이는 날씨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비가 많이 오면 운동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라운딩 날짜가 정해지면 일기가 초미의 관심사다. 오늘도 비예보가 있는 날이라 추이를 봐야 한다고 했다. 실제로 아침 하늘이 잔뜩 흐리다. 해가 자취를 감춘 하늘은 마치 어스름 저녁이나 이른 아침의 모습처럼 우중충하다. 비의 양이 많지 않아 운동은 진행하기로 했다.


한 대의 차로 함께 가야 하기에 넓은 차를 가진 친구가 나를 데리러 왔다. 출발하는 차창에 빗방울이 떨어진다. 우산을 쓰는 이들 눈에 띄어 조금은 걱정스럽다. 마음 한 편으로 여름날이라 어느 정도 비가 도 비를 맞으며 운동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빗방울이 어도 오후에는 아주 작은 양의 비가 온다고 해서 마음이 가볍다.


충주로 가는 도로가 상당히 정체다. 월요일이라 그런지 오전 10시인데도 차량통행이 많다. 온통 산으로 둘러 쌓인 한적한 길에 유독 큰 트럭들이 보인다. 물류 수송차량이 대부분이다. 분주 차량 틈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간다. 교통체증으로 일정이 빡빡해져도 마음은 그다지 무겁지 않다.


골프장에 도착해서 급하게 점심을 먹고 라운딩에 나섰다. 날은 여전히 흐리지만 다행히 비는 안 온다. 야외에서 하는 운동이라 햇살이 없는 것이 오히려 좋다. 해가 보이지는 않아도 자외선 차단을 위해 선크림을 듬뿍 바른다.


오늘은 드라이버가 완전 엉망이다. 골프 한 지 오래되었지만 꾸준히 운동을 하지 않으니 여전히 초보 수준이다. 무엇이든 확실하게 하지 않으면 저절로 좋아지는 일은 없다. 다행히 동행들이 너그러운 이들이라 마음 편하게 라운딩 할 수 있었다.

억새/ 협죽도/왕고들빼기/사데풀

푸른 잔디가 펼쳐진 골프장을 보면  언제나 마음 편다. 잘 다듬어진 나무들과 곳곳에 배치된 연못 그리고 부드러운 능선이 눈을 시원하게 한다. 고도가 높은 이곳에 가을이 벌써 자리를 잡았다. 억새가 피고 수크령이 피고 미국쑥부쟁이를 비롯한 야생화가 피었다. 식물에 관심이 크다 보니 라운딩에 집중하지 못하고 꽃을 관찰하고 사진 찍느라 바쁘다. 동행들이 눈치를 주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도 들지만 마음이 끌리는 것을 어찌하랴! 만나기 힘든 들꽃을 감상하는 즐거움을 포기할 수 없다.


햇살은 없어도 후덥지근한 더위는 그대로다. 몸에 땀이 배어 나와 옷이 젖어 후줄근하다. 다행히 카트를 타고 움직이면 시원한 바람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더위를 날려 준다. 사는 동안 어려움이 닥치지만 언제나 피할 길이 있는 법이다.

쑥부쟁이/서양벌노랑이

골프는 여전히 엉망이지만 자연과 벗하며 자연을 만끽하는 즐거움이 크다. 코스마다 자의  풍경이 달라진다. 햇살의 따가움이 없는 칙칙한 하늘이라도 오늘은 미욱하지 않고 고마운 마음이 든다. 흐린 날이라도 흐린 대로 좋다.


#날씨 #흐린날 #하늘 #자연 #골프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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