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피는 계절이 주로 봄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꽃은 혹독한 겨울을 빼고 대부분의 계절에 피고 진다. 그만큼 식물의 생명력과 후대를 남기려는 삶의 의지가 강렬한 까닭이다. 한여름이 물러가는 지금도 산과 숲과 들에는 꽃이 핀다. 나무와 꽃을 보러 가는 좋은 길에 얼룩이 졌다.
수까치깨 꽃
숲해설가동기들과 매주 방문하는 도심 숲 탐방으로 청계산에서 만나기로 했다. 집에서 전철로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 먼 곳으로 일찍 나서야 했는데 , 어영부영하다 결국 많이 늦어 버렸다. 전철을 세 번이나 갈아타야 했고 종착역인 인덕원역에서버스를 타야 했다.혹시 차를 가지고 가면 나을까 싶어 시간을 검색했더니 배나 많이 걸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허둥지둥 전철 종착역에 내렸다. 생각보다 많이 늦은 바람에 동기들이 기다리지 않고 버스를 타고 떠나 버렸다. 버스가 그만큼 자주 다니지 않는 곳이었다. 나 자신이 길치인지라 혼자 길 찾기가 젬병인데 걱정이 앞섰다. 더구나 타야할 버스가 게시판에 보이지 않았다. 시간마다 다니는 것은 아닌지 겁이 났다. 지나치게 늦을 바에야 차라리 집으로 돌아갈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 중에 기다리던 버스가 왔다. 가슴을 진정하며 버스에올랐다.
청계산 입구
몸에 밴 못된 습관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늦는 일이 다반사다. 언제나 늦지 말아야지 매번 다짐하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늦는 이유가 과연 뭘까를 자문해 보았다.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시간감각이다. 항상 시간이 충분하다는 느긋함이 있다. 약속이 있을 때 면 시간에 맞춰 가려고 미리 시계를 보고 가늠을 하곤 한다. 시간 계산이라는 것을 나도 하고 있다. 대충 대중을 하고는충분하다 여기는마음이 문제다. 그런데 수학에 담을 쌓아서 인지 시간계산에 늘 허점이 있다. 머리로 잰 시간이 현실에서는 턱도 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것저것 하다 보면 남아야 할 시간이 흔적도 없이 사랴져 버렸다. 평소에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던 일들인데도 신기하게도 그때가 되면다르다. 촉박해진 그때부터는 마음도 급하다. 깜짝 놀라서 정신없이 서두르게 된다. 마음이 바쁘다 보니 핸드폰도 어디에 두었는지 보이지 않고 지갑도 눈에 띄지 않는다. 총체적 난국이다.
아내는 그런 나를 보며 항상 어이없어한다. 내가 워낙 잔소리 듣기를 싫어하니 이제는 아예 내버려 둔다. 늦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라는 심사다. 가끔 그런 아내가 얄밉기도 하다.
또 다른 한 가지는 내가 생각해도 희한한데 미리 가서 기다리는 것이 어쩐지 손해를 보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남들이 기다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냥 딱 맞춰서 가고 싶다. 그런데 매 번 늦어지니 그것이 문제다.
지각이 내게도 절대 쉬운 상황은 아니다. 다른 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크다. 늦게 가면서 편안한 마음으로 나 몰라라 하지 않는다. 나를 매섭게 때리며 간다. 다음에는 절대 늦지 말아야지 다짐도 함께 하면서... 그런데 문제는 그때뿐이다.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고 똑같이 행동하는 나를 만난다.
웃기는 일은 여유롭게 갈 때도 늦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는 것이다. 한눈을 팔다정차역을 지나치거나 길을 찾지 못하는 경우다. 전철에서 책을 읽으며 가는 경우가 많은데 몰입하다 보면 깜박 정차역을 지나쳐 버린다. 하필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도 미스터리다. 평소에도 방향감각이 없어 가야 할 곳을잘 못 찾는 편이다. 두리뭉실한 장소 정보는 내게 쥐약이다. 그래서 세세한 정보가 꼭 필요하다. 초행길에는 전철역에서 똑똑한 사람을 만나 함께 가는 것이 내게는 꼭 필요하다.
대부분 10 분 안팎으로 늦는데 오늘은 무려 30 분 가까이 늦어버렸다. 제대로 사고를 친 것이다. 동료들이 나를 버리고 가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아마도 혼을 내려고 미리 출발한 것 같다. 벌을 서는 마음으로 아주 무겁게 버스를 탔다.
일행을 만나 청계산을 둘러보았다. 햇살은 여전히 따갑지만 바람의 맛은 확실히 달라졌다. 바야흐로 가을이 온 것을 온몸으로 느낀다. 선선한 바람이 몸을 어루만진다. 가을이 참 좋은 계절이라는 것을 뜨거운 여름이 생생하게 알려준다.
수까치깨 / 가시여뀌
사위질빵 / 칡
야생화로 수까치치깨와 가시여뀌를 처음 만났다. 사위질빵과 칡꽃도 한창이다. 시작은 지각으로 불편했지만 자연의 품을 찾으니쉼과 위로가 있다. 자연은 언제나 정답고 편안하다. 전나무와 메타세쿼이아가 오늘도 바르게 살라고 시범을 보인다. 결실의 계절 가을이 우리 곁에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