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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석진 Sep 10. 2024

자전거는 낭만을 싣고 달린다

왕숙천 길 따라 광릉 수목원까지

친구가 있 삶은 행복하다. 혼자서 보고 느끼고 누리는 것은 잘하지만 계획하는 것은 젬병이다. 실생활에서 가장 어려운 때는 무엇인가 고장이 날 때다. 전자제품에 대해  흥미도 별로 없지만 무지가  너무 심하다. 런 면에서 친구는 내게 꼭 필요한 존재다.


가끔 라이딩다. 예전과 달리 요사이 자전거 탈 때 걱정이 짝처럼 따라온다. 트라우마가 생겨서다. 라이딩 중에 갑자기 펑크가 나거나 유압브레이크가 들지 않은 일이 두 번이나 있었다. 만약 홀로 타다 그런 일이 생겼다면 아무 조치도 하지 못한 채 망연자실했을 것이다. 다행히 자전거를 함께 타는 친구가 손재주가 좋아 위기 때마다 해결사 노릇을 톡톡히 해었다.

수련

이번 라이딩도 그랬다. 가볍게 창포원으로 자전거 타는 것으로 알고 별 준비 없이 편하게 집을 나섰는데 계획은 그게 아니었다. 구리에 위치한 왕숙천 따라  광릉 수목원까지 가는 꽤 먼 여정이었다. 톡으로 공지를 했다데 나는 전혀 몰랐다. 그전에 라이딩 내용을 기억하고 그러려니 지레 짐작했던 것이다. 그래서 타이어 공기도 체크를 하지 않아 공기를 주입해야 했다. 게다가 타이어가 구식이어서 일반 펌프로는 불가능했다. 이번에도 해결사 친구가 나서서 도와주었다.  필요한 기구가 있어서 바람도 넣고 헐렁거리는 사이드 거울도 고정할 수 있었다. 손이 많이 가는 친구라고 불평하면서도 깔끔하게 수리를 해주었다.



오전 8시부터 라이딩에 나섰다. 하늘은 아침나절 구름이 잔뜩 깔려 우중충한 분위기다. 햇살이 힘을 잃은 흐린 날이 오히려 자전거 타기에 다. 바람도 제법 선선해서 달리는 기분이 경쾌다. 처음부터 속도를 내며 날듯이 린다. 세 사람이 함께 보조를 맞추며 간다. 길가에 한여름을 아쉬워하는 듯 풀들이 무성하다. 무성한  사이로 앙증맞은 꽃들이 피었다. 남보라색 나팔꽃이 여기저기 생글거린다. 중간중간에 키다리처럼 삐죽 솟은 대궁이에 노란 꽃들이 달린 달맞이도 씩하게 피었다.

경춘선 옛길

중랑천에서 화랑대 가는 길로 달렸다. 호젓한 길이라 거침이 없다. 아름드리 플라타너스 길은 유럽의 도심을 떠올리게 한다. 고풍스러운 길이다. 경춘선 옛길에는 녹슨 철도길이 있다. 낭만이 서리서리 얽힌 철도길이 펭행선으로 뻗었다. 누구라도 걸어 본 적이 있는 길, 을 소환다. "기찻길옆 오막살이 아기 아기 잘도 잔다." 의외로 예전에는 도심에 철도가 많이 지나다녀 철도가 생활 속에 깊이 들어와 있었다. 눈으로만 보고 지나치려니 아쉽다. 멈춰서 사진으로 남겨야 했는데 우리 삶처럼 지나고 나면 후회가 인다.


왕숙천 자전거 길은 시원했다. 인적이 드물고 가로수가 도열한 정겨운 길이었다.  너른 강물과 우거진 가로수가 이어지는 숲길 속으로 자전거는 힘차게 달린다. 흐린 하늘도 제법 푸른 얼굴을 내다. 그늘길은 바람과 조화를 빚으며 상쾌함과 즐거움을 선사한다. 햇빛 쏟아지는 길이 드문드문 나타나지만 더위의 힘은 미약하다. 가을이 제법 물든 바람이 땀을 식혀주기 때문이다. 한적하고 호젓하고 고요한 길을 말없이 달린다. 혼자라면 절대 올 수 없는 숨겨진  길을 간다.

꾸준한 속도로 페달을 힘차게 밟으니 허벅지에 긴장감 팽팽하다. 하체운동도 덩달아하게 되어 뿌듯하다.


왕숙천

가는 길에 맨드라미가 불탄다. 그 붉은빛을 무엇에 비기랴! 가을의 이미지로 제격인 맨드라미의 강렬한  잔영이 지나친 후에도 계속 맴돈다. 돌아오는 길에 꼭 사진에 담아보리라 각오를 다진다.  중간에  평화로운 풍경을 사진에 담느라 길이 지체 된다. 느긋한 친구들은 불평 없이 기다려준다. 참 고마운 친구들이다.

맨드라미

중간 습지공원에서 잠시 쉬었다. 관리가 제대로 안된 탓에 잡풀이 무성하다. 왕고들빼기 꽃이 많이 피었고  여뀌도 한창이다. 고마리는 이제 시작인지 잎만 무성하고 한 두 송이만 보인다.

왕고들빼기/ 고마리
여뀌

광릉수목원길에 접어들었다. 공기의 질도 다르다. 도심서 먼 곳이지만 특별한 곳이라 걷는 이들이 꽤 보인다. 느긋하게 달리며 이제는 종착지다. 아침도 제대로 먹지 않고 격렬한 운동 후라 몹시 시장하다. 장칼국수와 파전에 막걸리 한 잔을 나누며 행복을 먹는다. 식후에는 봉선사라는 큰 가람을 돌아보며 수련도 고 연꽃도 만나고 옥잠화도 다. 꽃을 보는 마음은 늘 행복하다. 기와지붕에는 와송도 빼곡히 자란다. 불상도 모던하다.

연꽃/옥잠화/와송


낭만을 가득 실은 자전거 여행이다. 큰 값을 치르지 않아도 한적하고 고요한 숲길 찾아 달리는 라이딩은 기쁨이다.  아름다운 하루를 마음에 새긴다. 좋은 친구들이 동행이 되어주어 참 고맙다.


#라이딩 #친구 #자전거 #왕숙천 #광릉수목원 #맨드라미 #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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