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을 벗어나니 촘촘하던 인간관계가 느슨해지고 걸러진 느낌이다. 사람들과 유대관계는 행복한 삶에 큰 영향을 끼친다. 좋은 친구들이 많다는 것은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친구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진정한 의미의 사귐은 이해관계를 초월해야 한다. 직장에서 알게 된 이들은 일과 연관되어 맺어진 관계다. 가장 중요한 연결고리가 풀어지면 자연스럽게 친밀도도 낮아진다. 은퇴하고 나이가 들면 새로운 사람들을 사귀기는 쉽지 않다. 친구를 사귀는 것이 어려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은퇴 후에는 시간의 여유가 많아지면서 활동의 자유가 주어진다. 평소 할 수 없게 했던 활동의 제약이 사라지는 것이다.그동안 제쳐두었던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나선다. 취미활동이다.
하지만 사람들에게는 관성의 법칙이 있어서 평소 몸에 익은 생활 습성을 그대로 이어가는 버릇이 있다. 취미활동도 그 범주를 벗어나기 힘들다. 환경이 변하고 사람들이 떠나면 예전 습관대로 살아가기 힘들다. 견디기 힘든 고립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이 시기가 나비가 고치를 벗고 세상을 향해 날개를 펼치는 때라고 볼 수 있다. 변화를 꾀할 수 있고 새로운 도전을 통해 진정한 나를 만날 수 있는 기회다.
사람들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하고 자신을 숨기며 살아간다. 사회의 요구에 나를 맞춰 사는 것이다. 더구나 우리 사회는 튀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모나지 않게 적당히 살아가도록 끊임없는 압력이 가해진다. 사람들이 하는 것은 나도 해야 하고 남들이 하지 않은 일은 나도 해서는 안된다. 모두다 비슷비슷하게 살아간다. 물론 이런 삶에는 큰 위험이 따르지 않는다. 직장이 요구하고 사회가 압력을 가하고 가족들의 필요로 인해 나를 잊고 요구에 맞춰 살았다.
은퇴는 이런 요구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이 때는 모험정신이 필요하다. 도전하는 의지를 발휘할 때다. 진심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했던 것들에서 자유가 주어졌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서 행동해야 할 이유가 없다. 유감스럽게도 지나온 삶이 고착된 삶의 패턴이라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렇다고 예전의 삶을 그대로답습한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노예들에게 자유가 주어져도 즉시 자유롭게 행동하기 어렵다. 굴레를 벗는 훈련이 필요하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로 익숙해진 것들을 벗어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낯선 것에 관심을 가지고 시도를 해보아야 한다. 흥미는 저절로 생기기도 하지만 시도하면서 얻어지는 경우도 많다. 일단 해보는 거다. 정주영 회장의 격언처럼 "해 봤어?"가 삶의 지표가 되어야 한다. 이런 노력들이 모아지면 나도 몰랐던 나를 찾게 된다. 호기심은 모든 것의 시작이다. 호기심을 키워야 한다. 호기심은 세심한 관찰에서 시작된다. 목적을 가지고 보는 것과 비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보는 것을 매개로 생각을 이어가야 한다. 적절한 질문도 필요하다. 질문을 통해 사고를 확장하는 것이다.
노래를 좋아해서 플래카드를 보고 합창단에 지원했다. 나는 음악에 대한 지식도 역량도 부족하다. 하지만 음악을 좋아하고 노래 부르기를 즐긴다. 이것저것 따지다 보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합창단을 해보면 어떨까?'라는 단순한 마음으로 과감하게 문을 두드렸다. 그렇게 몇 해가 흘렀다. 합창이라는 아름다운 음악을 빚는 기쁨이 있고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쉬땅나무 꽃
그 친구들과 자주 어울린다. 어제도 옥상 텃밭에서 간단한 모임을 가졌다. 진수성찬은 없지만 정성이 들어있는 음식과 정겨운 대화가 있는 유쾌한 시간이었다. 깊이 있는 대화의 시간도 가졌다. 각자의 삶에서 고민을 나누고 토론을 통해 여러 생각들을 주고받았다. 자전거도 같이 타고 가끔 캠핑도 함께 한다. 혼자라면 하기 힘든 다양한 활동들이 이루어진다. 이런 모임을 통해 사랑받고 있음을 느낀다. 살아가는 맛을 누리는 것이다.
소박한 일상이지만 단조롭지 않게 양념이 되는 작은 이벤트가 삶의 활력을 준다. 특별할 것 없는 나라는 존재를 기꺼이 인정해 주고 아껴주는 이들이 곁에 있어서 행복하다. 친구가 줄 수 있는 삶의 기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