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준 사진전을 관람했다. 전시회 제목 'ONE STEP AWAY'는 그의 작품 세계를 한 마디로 요약한 느낌이다. 주인공이 아닌 관조자로서 시선이 작품에 가득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의 사진들은 창의적이거나 모호하거나 특별하지 않다. 낯익은 도심의 일상이 담긴 평범한 사진들이다. 그런데 들여다보면 평범한 사진들이 특별하게 다가온다. 그 이유는 누구나 담을 수 있는 익숙한 풍경에서 아름다움을 길어내는 작가의 독특한 심미안 때문이 아닐까?
1. PAUSED MOMENT
하루 해가 저무는 시간은 햇살이 귀해진다. 그러다 남은 햇살이 건물 벽면 유리창에 반사되면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고층빌딩 한편이 마치 불이 붙어 타오르듯 찬란하게 빛난다. 그런 태양의 광휘를 누구나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잠깐 시선을 주고는 지나치기 쉬운 장면을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세심하게 담아냈다. 생명이 없는 잿빛 건물이 빛을 받아 생기가 돌고 따스함이 감돈다. 아울러 번쩍이는 태양의 빛뿐 아니라 색감의 조화와 조형미를 함께 보여줌으로써 작품으로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빛을 가장 중시했던 인상파 미술가들의 시선이 그의 작품에도 똑같이 담겨있다. 특히 저물어가는 황혼의 붉은빛은 눈이 시리도록 매혹적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연작도 눈길을 끈다. 휘황한 도심의 야경에서 시작하여 점차 빛을 잃어가는 연작의 사진은 달 뜨는 풍경에서 마침내 불꽃놀이의 피날레로 끝난다. 치열한 하루를 살아내고 안식으로 향하는 삶에 잘살아냈다 응원을 담았다는 느낌이다.
2. MIND REWIND
기하학적인 문양으로 가득한 사진들이 선을 보인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도심건물의 외벽이다. 층과 창이 반복되고 중첩되어 규칙적인 패턴을 만들어 낸다. 그가 잡아낸 패턴은 도심의 아라베스크 문양이다. 건물들은 저마다 개성을 지니고 독특함을 가졌다. "그가 바라보는 도시는 선과 면, 그리고 점으로 구성된다.' 점처럼 보이는 작은 창들이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이라는 것이 신비롭게 다가온다.
그는 단순히 건물 자체에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을 놓치지 않고 따스한 시선을 담았다. 비어있는 건물은 사물일 따름이다. 건물은 사람들이 살아갈 때 생명을 얻는다. 그래서 마치 사막 한가운데 푸른 오아시스가 존재함으로 사막이 아름답듯이 거대한 건물 속에 자리 잡은 살아있는 사람들을 보여줌으로써 풍경에서 온기가 느껴지고 아름다움이 부여된다.
3. REST STOP
공원은 바쁜 도시인들의 휴식처이자 쉼터다. 메가시티인 뉴욕에서 공원은 더욱 그럴 것이다. 자유의 나라답게 호방한 그들의 일상이 너무나 편안하게 다가온다. 거대한 빌딩을 배경으로 울창한 나무들이 옹위하고 있는 너른 녹색의 잔디가 깔린 광장에서 아무렇지 않게 상의를 탈의한 건장한 젊은이들과 각자 자리를 펴고 여가를 즐기는 목가적이고 평화로운 풍경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자유의 나라답게 나무도 거칠 것 없이 마음껏 자라고 사람들의 행태도 아무런 제약이 없다. 다른 이들의 시선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개성의 자유가 넘친다.
저물어 가는 잔디밭에서 한때를 보내는 사람들의 일상이 푸른 여백에 담겨있다. 연인과 가족 그리고 개인이 각자의 방식으로 행복한 한 때를 구가하고 있다. 타인의 행복을 바라보면 시샘이 인다. 하지만 거창하지 않은 단순한 공원의 휴식은 그런 질투심을 유발하지 않는다. 나도 충분히 그런 여유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삶은 거창한 방식의 행복으로 채워지는 것이 결코 아님을 이 아름다운 사진들이 웅변하고 있다.
거리의 풍경은 선이 빚어내는 그림이다. 교차로의 선들과 그위를 거니는 사람들의 다양한 풍경 또한 작가의 눈을 통해 새로운 시선과 미적인 감각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눈이 내리는 뉴욕의 풍경은 문인화같이 여백과 담백함이 묻어난다. 예술은 세심한 관찰과 호기심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사진에서 발견한다.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을 오마쥬 하듯 흰 눈을 배경으로 붉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크리스마스의 정겨운 풍경을 불러낸다.
4. PLAY BACK
그의 작품들을 콜라쥬한 대형 사진들이 벽면을 빼곡하게 채웠다. 기획자는 영리하게 그 풍경 안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ONE STEP AWAY 시선으로 우리 자신을 보게 만든다. 사진 중간에 작은 유리를 설치해 놓았다. 스스로 풍경으로 걸어 들어가 나도 풍경의 일원이 된다.
흥미로운 퍼포먼스가 있다. 자신의 걱정을 글로 담아 파쇄하는 이벤트다. 사람들의 근심이나 고민이 갈려진 종이 잔해로 가득 쌓였다. 나도 마음의 근심을 담아 갈아냈다. 작가가 의도한 대로 '사진은 자신의 고민을 덜고 앞으로 나아가는 길이다.'라는 명제를 실행에 옮긴 것이다. 조금은 가벼워졌을까? 계속 살아보면서 생각해 볼 일이다.
앞으로 도심을 따뜻한 시선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작가가 작품으로 보여줬기 때문이다. 여유도 느긋하게 누릴 수 있을 것 같다. 잔디밭의 평화로운 사진들이 선명하게 각인이 된 탓이다.
글 말미에 전시장에서 본 그의 인터뷰 영상을 간단히 정리를 했다
그는 2018년부터 뉴욕에 머물러 물리치료사와 프리랜서 사진가로 활동 중이다.
그의 사진의 주제는 도시 모습과 사람들의 어울림을 프레임에 담아내는 일이다. 마음을 움직이는 사진을 찍고 싶고 그가 힘들 때 사진은 숨 쉴 수 있는 도피처다. 사진 알바를 통해 버드 아이뷰(새가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에서 그린 풍경)로 높은 곳에서 탁 트인 전체의 풍경이 평면으로 보이는 것을 보고 깨달음과 삶의 지혜를 얻게 되었다. 그의 작품 터인 뉴욬은 멜팅 팟(용광로)과 같이 다양성과 다채로움이 넘쳐나 항상 다른 곳을 여행하는 느낌을 받는다. 그가 추구하는 작품세계는 빛과 색감의 조화나 선과 면이 맞아떨어지는 어떤 미묘한 부분이나 피사체의 크기나 그들의 개성, 움직임, 프레임 안에서 발생하는 우연한 순간들을 작품에 담기를 즐겨한다. 도시패턴은 사람들의 규칙이고 이는 유기적 관계로 자신에게 미적으로 다가온다. 그는 홀로 에너지를 얻는 타입으로 공원산책을 즐기며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답답한 도심이라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름다운 순간을 만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즐거움과 위로받을 수 있다. 자신에게 사진은 자신의 고민을 덜고 앞으로 나가는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