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을 맞닥뜨리게 되면 충격으로 다가온다. 내 생애 처음 바다에서 살아있는 문어를 잡았다.
코난해변
가족과 함께 추석여행으로 제주도를 찾았다. 이번 여행은 철저하게 아들과 딸이 원하는 일정으로 짰다. 그런 일정으로 오늘은 아들이 가고 싶어 했던 카멜커피를 찾아왔다. 카페를 찾아가는 마을도 아름다웠다. 카페에서 아들이 흠모하던 인플루언서인 사장님을 만났다. 친절하고 인상 좋은 사장님은 함께 사진을 찍어주며 아들의 입이 찢어지게 행복하게 해 주었다. 커피도 물론 맛이 있었다. 그곳 인근에 코난해변이 있다. 검은 바위들과 에메랄드 물빛이 아름다운 해변이라 오후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그런데 그곳에 문어가 있었다.
카멜커피
시커먼 문어를 발견하고 맛본 것은 당혹스러움과 공포였다. 문어를 잡으려 처음 손을 내밀었을 때, 손에 느껴지는 끈적하고 물렁물렁한 촉감은 저절로 몸서리치게 만드는 전율 그 자체였다. 낯 모를 공포에 겁이 덜컥 났다. 그래서 다시 손을 내밀지 못하고 소리만 지른다. "문어다!!" 아들이 뛰어 와 용감하게 나섰다. 하지만 잡자마자 문어를 냅다 뿌리치며 괴성을 지른다. 문어가 손에 착 들러붙은 것이다. 처음 느끼는 기괴한 느낌으로 자신을 주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강한 흡인력을 지닌 빨판을 무기로 손을 휘감으니 누군들 놀랄 수밖에. "잡아!! 도망간다!! 다시 잡아!!" 나도 손댈 용기가 없으면서 아들에게는 눈을 부라리며 외친다. 아들은 잡고는 소리를 지르며 놔주고 또다시 잡는다. 눈물이 날 정도로 웃기는 상황이었다. 실랑이 끝에 마침내 문어를 잡았다. 이 문어는 재수 없게도 왕초보에게 걸려든 것이다.
첫 사냥 문어
코난해변
아들은 의기양양해서 손을 들어 올리며 승리의 포효를 외친다. "문어 잡았다!!!" 그리고 사진을 찍으라고 성화다. 문어는 손에서 쉴 새 없이 다리를 버둥거린다. 하지만 요 녀석의 가장 큰 약점은 머리를 잡으면 그만이었다. 머리를 꽉 쥐니 축 눌어진다. 그렇게 첫 문어를 잡았다. 잡은 것을 어찌할 바를 몰라하는데 누군가가 큰 플라스틱 커피잔을 건네줘서 거기에 담았다.
잡은 문어
코난해변
애당초 나는 수렵채집에 광적인 열심을 품고 있어서 바닷가에 오면 보말을 잡거나 작은 게 혹은 톳나물을 뜯는 정도였지 문어는 아니었다. TV를 통해 무인도에서 스노클링으로 문어를 잡는 것을 보기는 했다. 하지만 내가 직접 경험해보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아들이 문어를 잡은 후에 우리는 전부 문어 찾기에 혈안이 되었다. 우리뿐 아니라 해변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문어 사냥에 나섰다. 한참 바위틈을 탐색하고 있는데 젊은 커플이 문어를 발견했다. 곧바로 뛰어가 살펴보는데 잘 보이지 않는다. 문어는 보호색으로 변장이 뛰어나다. 바위와 비슷한 옷으로 위장을 해서인지 눈앞에 있어도 잘 보이지 않았다. 손을 대보니 문어가 확실했다. 이놈은 생각보다 아주 컸다. 이번에도 아들은 먼저 나섰지만 크기에 놀라 엄두를 내지 못하고 망설인다. 그 사이 문어가 줄행랑을 친다. 아들은 겁이 났는지 쫓아가기만 하고 손을 못 내민다. 다행히 문신을 온몸에 새긴 건장한 젊은이가 단박에 잡아 올렸다. 아쉬움과 부러움이 교차되는 순간 그 청년은 누구 거냐고 물었다. 냅다 나라고 외치고 문어를 건네받았다. 뻔뻔함과 물욕이 승리를 거두는 순간이다.
한 번 겪고 나니 살아있는 문어를 만지는 일이 생경하지 않았다. 여기저기 문어를 열심히 찾다가 어떤 아가씨가 " 엄마!!! 엄마!!!" 소리를 지른다. 문어 한 마리가 달아나는 것이 보였다. 아가씨는 그냥 소리만 질러댔다. 잡으려는 욕심만 앞섰지 잡으려는 엄두는 아예 내지 못한 것이다. 모녀는 둘 다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때 나는 두 여자 앞에서 서 있는 유일한 남자였다. 여자들 앞에서 남자들은 하나같이 허세가 등등해진다. 없던 용기가 백 배 솟구친 나는 거침없이 단 번에 문어를 낚아챘다. 나 스스로도 놀랬다. 남자를 움직이는 힘은 오로지 여자들에게서 나온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여기 있습니다" 거만스러운 전문가 포스를 풍기며 잡은 문어를 건넸다. 돌틈에 숨은 문어는 잡기 어렵다. 하지만 문어는 수영에 재주가 없다. 물속을 헤엄치는 문어는 손쉬운 사냥감이다.
그 후로 아내도 문어를 잡고 아들도 연달아 잡아 올려 무려 여섯 마리나 되었다. 날씨가 무더운 데다 숙소에서 멀리 나왔고 들어가려면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서 문어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궁리를 거듭하다 편의점에서 지퍼백과 얼음을 사서 보관하기로 결정했다.
문어 숙회 /문어라면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고등어 회를 먹고 싶다는 딸의 바람에 맞춰 신화월드 근처 횟집학 개론에서 회를 떠서 포장을 해서 숙소로 돌아왔다. 아내가 문어를 잘 손질해서 반은 숙회로 반은 문어라면을 끓여
떠온 회와 함께 먹었다. 풍성한 해산물 만찬이었고 특히 귀한 문어를 실컷 먹었다. 부드럽고 어찌나 달콤한지 연신 젓가락을 멈출 수 없었다. 직접 잡은 기쁨도 맛을 더했다. 여행의 가장 신나고 즐거운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