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아침은 특별하다. 모든 세상의 아침이 그렇겠지만 제주도라는 환경이 선사하는 아침은 확연히 다르다.
섬이 지니고 있는 고유한 감성과 여행이라는 낯섦이 빚어내는 분위기가 한몫을 하는 것이다. 제주도에 머무는 동안 물 흐르듯 모든 것이 매끄러웠다면 이번에 느끼는 특별함이 덜했을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제주도의 아침을 처음 겪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간 제주도에 열 번을 훌쩍 넘게 오지 않았나 싶다.
이 번 가족 여행에는 누나들이 제주도 고산면에 마련해 놓은 숙소에서 묵었다. 집을 지을 수 있는 땅에 건축은 하지 못하고 이동식 주택을 가져다 놓은 곳으로 한 가족이 머물기 적당하다. 그런데 숙소에 에어컨이 고장이 났다. 폭염경보가 내려져 밤잠을 설칠 수밖에없었다.
숙소 주변
이곳은 들판에 섬처럼 홀로 자리 잡아 불을 끄면 완전히 칠흑의 밤이 찾아온다. 몸도 피곤하고 TV도 없어서 할 일이 없으니 자연스럽게 10시 이전에 모두 잠이 들었다. 평소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밤사이에 더위가 많이 누그러졌다. 선풍기도 나름 역할을 했다. 하지만 숙면하기에는 어려워 자다가 몇 번 깰 수밖에없었다. 일찍 자리에 들었어도 해가 뜬 후에 일어났다. 그렇게 아침을 맞았다.
동부
창문을 모두 열어놓고 잤다. 이곳은 대지 200평으로 100평씩 나누어 집을 지을 수 있게 기초공사가 되어있다. 두 공간 사이에는 맨땅이 있어 수풀이 무성하게 자란다. 일어나자마자 창밖을 보니 콩꼬투리를 달고 있는 덩굴 식물이 분홍빛 꽃을 피워 아예 꽃밭을 이뤘다. 야생콩인가 했더니 콩 꼬투리에 아주 작은 콩들이 들어있는 동부란다. 이 아이들도 나팔꽃처럼 아침에 꽃이 벙글어지고 낮에는 꽃봉오리가 닫힌다. 물기를 머금어 금방 세수를 하고 난 것처럼 싱그럽고 어린아이가 생글거리며 웃는 것 같이 앙증맞다. 생각지 못한 꽃밭에 마음이 환해진다. 콩꽃 너머 하늘에는 구름이 뒤덮인 사이로 푸른 하늘이 슬쩍슬쩍 내비친다.
달개비
제주도가 좋은 점 한 가지는 시야가 편안하다는 것이다. 어디를 둘러봐도 사방이 트여있다. 답답한 도심의 건물에 갇혀있는 삶에서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다. 이곳은 전원의 한가운데 자리 잡은 데다 이웃이 없으니 더욱 그렇다.
으아리 와 달개비
홀로 웃통을 벗은 채로 핸드폰을 들고 어슬렁어슬렁 산책을 나섰다. 인적이 드문 곳이라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전혀 생각할 필요가 없는 그야말로 자유로운 공간이다. 아침의 서늘한 기운이 피부에 닿는다. 첫눈에 달개비꽃이 눈에 들어온다. 신비롭고 매혹적인 남색 빛깔의 꽃이다. 들여다볼수록 매력이 있다. 이곳에 핀 꽃들은 꽃도 크고 색도 아주 진하다. 같은 식물이라도 섬에 자라는 것들은 뭍에 있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으아리도 보인다. 뭍에서는 보기 힘든 꽃이다. 제주도를 돌아다니다 보니 길가에 으아리꽃이 무리 지어 핀 모습이 많이 눈에 띈다. 순백의 귀여운 꽃들이 다발을 이루어 푸른 숲을 환하게 밝힌다. 꽃에 관심이 많다 보니 풀숲에 자꾸 눈이 간다. 찬찬히 들여다보니 계요등도 피었다. 붉은 점이 선명한 종모양의 꽃이 귀엽다. 돌담사이로는 나팔꽃이 피었다. 흔하지 않은 흰색 나팔꽃이다. 꽃구경을 하며 조금 더 걸어가니 배롱나무 꽃이 피었다. 돌담사이로 강아지풀이 그득하고 주위에 나무들이 자라나 한 폭의 그림을 선사한다. 꽃구경에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으아리
계요등
너무 늦게 일어나 게으른 아침이 아쉬웠다. 해가 뜰 때 일어났더라면 훨씬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내일 아침에는 이른 아침을 맞아보리라 다짐을 했다. 꽃의 향연에 초대를 받아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아내가 나를 부른다. 본격적인 제주도 여행이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