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묘한 매력을 지녔다. 마치 자석처럼 사람들을 끌어당긴다. 뭍에 사는 이들에게 바다는 동경의 대상이다. 그들은 바다를 마음에 품고 살아가다 불현듯 바다를 그리워한다. 그러다 연어의 회귀처럼 바다를 찾아간다. 바다는 늘 그 자리에서 넓은 품으로 우리를 반긴다. 그곳에서는 부끄럼도 수치도 기꺼이 내려놓을 수 있다.거칠 것 하나 없는 망망한 수평선을 지닌 광활한 바다는 좁은 사고의 틀에 갇힌 우리를 자유롭게 풀어놓는다.
바다 곁에 사는 이들에게도 매한가지다. 바다는 어머니의 품과 같다. 모든 것을 내어주고 모든 것을 받아준다. 우리는 바다를 떠나도 바다는 우리를 떠나지 않는다. 바다는 우리의 가슴과 마음에 언제나 머문다. 혹시 바다를떠나게 되어도 언젠가는 다시 바다를 찾게 된다.
바다 중에도 제주의 바다는 특별하다. 무엇이든 손이 닿지 않은 것일수록 마음은 더 간절해진다. 뭍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마음대로 갈 수 없기에 더 그런 것이 아닐까? 화산이라는 독특한 환경도 한몫을 한다. 도처에 널린 검은 현무암은 이곳이 화산의 영역임을 선포한다. 바다에도 화산의 자취가 어려있다. 바닷가에 자리한 검은 현무암들은 바다를 더욱 푸르게 만든다. 낯설고 경이로운 풍광은 사람들을 매혹시킨다.
제주의 바다는 물빛도 특별하다.세상의 모든 푸른색을 만날 수 있다. 연한 하늘빛에서부터 검푸른 코발트블루를 온통 물에 풀어놓았다. 푸른빛이 넘실대는 제주의 바다에는 하늘과 바다의 경계도 모호하다. 경계가 허물어진 하늘과 바다는 하나가 된다. 수평선에 걸린 한 점의 순백의 구름은 바다에 꿈처럼 떠 있다. 풍력 터빈이 거인처럼 우뚝 서 있는 바다는 현실이 아닌 동화의 나라요 꿈속 세상을 보여준다. 쉬지 않고 철썩거리는 파도가 빚어내는 포말은 찬란한 햇살아래 한여름에 쏟아져 내리는 눈처럼 강렬하게 사람의 시선을 붙잡는다.
밤이 내리는 제주의 바다는 감동의 시간이다. 노을은 밤에 피어나는 하늘의 꽃이다. 도둑처럼 살그머니 찾아와 순식간에 온 세상을 붉게 물들인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밤은 검은 실루엣을 길게 늘어뜨린다. 점차 짙어진 하늘에는 불이 타오른다. 하늘에 별이 태어나 빛을 발하듯 바다에도 작은 불빛들이 깨어나 반짝인다. 장엄하게 물든 하늘 앞에서 사람들은 저절로 마음을 여미게 된다. 말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생각이 피어난다. 물감 한 방울이 물에 번지듯이 사람의 마음에도 평화로운 밤의 안식이 밀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