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을 오르며
산을 오르는 이들에게 산을 왜 오르느냐 물으면 "산이 그곳에 있기에 오른다"라는 대답을 했다고 한다.
같은 이유로 나도 산을 오른다. 산을 오를 때마다 드는 감회는 항상 같을 수 없다. 이번 산행은 산마루에 올라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산을 오르는 이유 한 가지를 더 찾은 셈이다.
산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서울은 아주 고마운 도시다. 도심 주변에 명산들이 포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멋진 산을 만날 수 있다. 도봉산을 위시하여 북한산, 불암산, 수락산 그리고 인왕산, 안산, 남산까지... 자주 올랐다 해도 북한산과 도봉산 같은 경우는 산도 넓고 코스가 많아서 산을 잘 안다고 하기 힘들다. 코스에 따라 산은 상이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도봉산과 북한산은 다양한 숨은 매력을 지녔다.
오늘은 북한산을 올랐다. 우이령 공원에서 영봉을 거쳐 백련사로 내려오는 코스로 약 10킬로 거리다. 내게는 처음 오르는 길이다. 평일인 까닭도 있지만 등산객이 많지 않았다. 그만큼 찾는 이들이 많지 않은 호젓한 코스였다.
등산로에 들어서니 인적이 뜸한 길이라 그런지 숲이 울창했다. 국수나무가 한창 꽃을 피우는 시절이라 입구부터 만개한 국수나무 꽃의 환영을 받았다. 국수나무는 금빛 꽃망울을 선보이다 휜 꽃으로 개화한다. 아주 작은 꽃송이라 자세히 봐야 알 수 있는 꽃이다. 작은 꽃들은 확대해 보면 귀엽고 예쁘다.
한 송이는 초라할 수 있어도 무리를 이루면 다르다. 산길이 온통 꽃밭이 되었다.
서울 근교의 산은 식생이 다양하지 않다. 그래서 식물에 관심이 많지만 이번 등반에서는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북한산은 깊이를 지닌 산이다. 나의 교만을 깨우듯 귀한 야생화가 등장했다. 큰꽃으아리다. 줄기도 연약한데 꽃이 아주 탐스럽다. 활짝 핀 꽃과 막 피어난 꽃송이가 우리를 반긴다. 덜꿩나무에도 꽃이 피었다. 팥배나무 꽃이 떠난 자리를 메우듯 흰꽃이 소담스럽다. 노린재나무에는 솜털 같은 꽃이 한창이다. 앙증맞은 양지꽃은 돌틈 사이에서 해사하게 웃고 있다. 하산 길에서 근사한 쪽동백이 고운 자태를 선보였다. 생각지 못한 반가운 야생화를 만났다.
신록이 짙게 물들어가는 산길을 걸으며 마음이 편안했다.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즐겁게 산을 오르다, 영봉을 앞두고 웅장한 바위 봉우리가 보였다. 장엄한 인수봉이 바로 코 앞에 나타났다. 자주 보는 친근한 봉우리인데 가까이서 보니 그 위세가 대단하다. 바위 하나로 이루어진 산의 자태가 압도적인 느낌이다. 인수봉이 뿜어내는 아우라에 경건한 마음조차 인다. 선 자리를 금방 떠날 수 없이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잘 자란 소나무에 꽃이 만발했다. 그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다. 그러다 고양이 한 마리가 깜짝 등장했다. 높은 산에 살아서 수양이 잘 되었는지 천하태평으로 여유롭다. 그 모습에 빙그레 미소가 지어진다. 마음에 울림이 커서 시조를 한 수 지었다.
인수봉을 바라보며 / 정석진
국수나무 꽃 헤치며
산마루에 올라서니
장엄한 인수봉 앞
소나무 꽃 등 밝혔다.
지친 몸 풀어놓는 데
송홧가루 날리네
#북한산 #인수봉 #등산 #장관 #시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