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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산과 용추계곡 트래킹

운무로 뒤덮인 산길을 걸었다.

by 정석진

안개 낀 장충단 공원의 진한 분위기를 온몸으로 체감한 하루다. 등반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무가 자욱한 산길을 지겹도록 걸었다. 하루 종일 안개 감옥에 갇힌 형국이다. 오늘 걸은 길이는 무려 16킬로미터나 다. 늘 일정 트레킹이지만 내용 극기훈련만큼이나 힘이 었다.

함박꽃
연인산 정상

연인산은 해발 1,068미터의 꽤 높은 산이다. 봉우리가 상당한 높이를 지녔는데도 이름이 없는 산이어서 가평군이 연인산으로 명명했다고 한다. 상당히 낭만적인 일이다. 하지만 연인으로 삼기에는 리 호락호락하지 않은 당히 거친 산이다.

서울에서 출발할 때부터 잔뜩 울상이던 날씨가 산자락에 도착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비로 변해 보슬비가 내린다. 워낙 적은 강우량이라 비를 피하기도 그렇고 맞기도 어정쩡했다. 초입부터 주변은 온통 안개가 자욱하다.


사람들이 자주 다니지 않았는지 숲이 거졌다. 수풀이 라 거치적 거렸고 젖기까지 해서 걷기에 불편했다. 땅도 질척대서 미끄러웠다. 오늘 여정은 만만치 않은 것 같다. 몸은 벌써 축 처져 있는데 빗물에 온몸을 씻은 식물들은 하나같이 생발랄하다.

산속은 내리는 비보다 나뭇잎에서 떨어지는 빗방울과 풀잎에 맺힌 빗물 젖었다. 습도가 높은 탓으로 불쾌지수도 치솟았다. 방수 재킷은 아예 땀복이 되다. 걸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온몸이 물에 빠진 듯 땀으로 흥건했다.


운무로 뒤덮인 산길은 시야가 흐렸다. 흡사 적들에게 둘러싸여 갇힌 것처럼 답답한 기분이다. 보이는 나무들도 저마다 몸을 숨기고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은 누구나 앞이 잘 보이지 않으면 불안을 느낀다. 시야가 막힘이 없을 때 눈이 시원하고 편안한 마음을 준다는 것을 확실히 느낀다.


전날에도 북한산을 무려 10킬로미터나 등반을 해서인지 이어지는 오르막 길이 배나 힘겨웠다. 거기에 기운 빠지게 하는 일이 더해졌다. 여러모로 일진이 사나운 날이다.

철쭉
산철쭉

은행 동우회에서는 단체행사 참여를 인터넷으로 신청한다. 신청 시간이 9시여서 사이트에 접속해서 기다리며 걸었다. 선착순 모집이라 신경을 곤두세웠다. 늘 가고 싶었던 곰배령 트레킹이 기다리고 있어 마음은 어느 때보다 더 간절했다. 막상 신청 시간이 되니 인터넷 불통이다. 계속 시도했지만 화면은 묵묵부답이다. 산을 오르지 말고 기다려야 했는데 패착이었다. 결국 신청하지 못했다. 실망으로 걷는 게 더 힘들어졌다.


산길은 상당한 경사로 계속 오르막이다. 평소에 눈여겨 찾아보던 야생화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감정의 기복이 심하면 몸의 컨디션도 좋을 게 없다. 평소에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것이 흔들림 없는 삶의 바탕이다. 결국 땅만 바라보고 그저 걸었다.

단풍취 군락

연인산은 여느 산과 달리 산기슭에 다양한 식물들이 무성했다. 이는 산나물도 많다는 의미다. 평소 산나물에 관심이 많기에 자연히 호기심이 일었다. 이곳은 단풍취 군락지였다. 단풍취는 게발딱지라는 이름도 갖고 있는데 높은 곳에만 자라는 산나물로 꽤 귀한 나물이다. 나물은 초봄에 올라오는 새순이 가장 다. 지금은 좀 억세진 상황이지만 연해보이는 것도 있었다. 정상을 올라가는 내내 단풍취 밭이다. 산나물을 뜯으며 가니 힘이 난다.

앵초

야생화들도 눈에 들어왔다. 나물 사이에 앵초가 새초롬하게 피었다. 푸른 풀밭에 선명한 붉은빛이 또렷하게 다가온다. 산마루에는 철 지난 철쭉이 피어있다. 빗물을 머금어 연한 꽃빛이 더 매혹적이다. 특이하게도 산철쭉도 보인다. 확실히 철쭉보다 꽃이 붉어 더 강렬한 느낌을 준다. 산을 내려오는 길에는 진객을 만났다. 토종목련인 함박꽃이 꽃이름처럼 활짝 웃는 모습으로 고운 자태를 아낌없이 보여준다. 꽃모양도 우아하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붉은 꽃술이 마치 등을 켜놓은 것처럼 흰 꽃잎에 불그스레 비친다. 오늘의 수고를 보상받은 기분이다. 순백의 고광꽃도 오월의 신부처럼 순결하다. 싸리나무 잎에 맺힌 물방울이 수정처럼 영롱하다.

함박꽃
고광나무

산길에 적응을 해서인지 숲이 친근하게 느껴진다. 비 내리는 숲이 신비롭다. 싱그러운 초록잎과 검은 나무가 운무 속에 고요히 서 있는 모습이 경건하기까지 하다. 습도로 끈적이지만 해가 나지 않은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장거리로 힘든 길인데 덥기까지 했다면 훨씬 힘들었을 것이다.

산을 내려오는 길은 세찬 물소리가 울려 퍼지는 계곡을 끼고 걸었다. 용추계곡이라는 이름에 어울리게 굽이굽이 물길이 이어졌다. 비 온 뒤라 산줄기에 여기저기 폭포가 생겨나 물이 콸콸 쏟아진다. 계곡물은 명경지수라 할 만큼 맑고 깨끗하다. 깊은 산중에 왔음을 실감한다.


점차 비는 멎어서 날이 개어온다. 비로소 눈부신 오월의 신록이 보인다. 지루한 하산길이지만 풍광은 눈이 시리게 아름답다. 물안개가 피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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