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날 버스를 탔다.
아내가 쉬는 날이라 아내와 함께 경동시장에 장을 보러 갔다 오는 길이다.
비가 오지 않으면 운동 삼아 따릉이를 타고 갈 요량이었지만 문밖을 나서니 아쉽게도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졌다. 가는 길에 문구점에도 들러야 했기에 우산을 쓰고 걷기로 했다.
비는 오락가락했다. 중간에 비가 그치자 잘되었다 싶어 따릉이를 타고 가는데 야속하게 비가 내렸다. 다시 따릉이를 반납하고 문구점까지 걸어가서 늘봄 수업에 필요한 수수깡을 샀다.
쿠팡에서 수수깡 10개가 무려 7천 원이어서 문방구를 찾아 나선 것이다. 겨우 1,200원 밖에 안 하는 것을 하마터면 바가지를 쓸 뻔했다. 작은 수수깡 하나가 600원이 넘는다고 생각하니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시장까지는 결국 버스를 타야 했다.
추석대목을 앞둔 청과물 시장에는 과일과 채소들이 넘쳐났다. 장보기 전에 간단히 점심을 먹으러 지인이 알려준 칼국수 식당을 찾아갔다. 바지락이 주는 시원한 국물 맛을 좋아하는 터라 기대를 잔뜩 하고 갔는데 멸치 육수 맛만 나고 바지락은 꿔다 놓은 보릿자루 같이 존재감이 없었다. 아쉽지만 배를 채우는 것으로 하고 필요한 찬거리를 사러 갔다.
비가 많이 오는데도 장 보는 이들이 많았다. 우리도 감자를 사고, 당근과 양파를 샀다, 부추와 오늘의 주인공인 고구마 줄기도 샀다. 아내가 내가 좋아하는 고구마순 김치를 담기 위해서다. 봉지가 늘어나니 손이 점점 무거워졌다. 아내가 고관절이 좋지 않아서 드는 것은 죄다 내 차지였다.
그 와중에 비가 심하게 내렸다. 그치기를 기다렸지만 여전히 세차게 쏟아졌다. 무거운 짐을 바리바리 들고 우산도 쓰고 걷다 보니 고역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버스정류장도 꽤나 붐볐다. 경동시장은 연로하신 분들이 많이 찾는 시장이다 보니 나이 든 분들이 많았다.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이들 중에 유독 할아버지 한 분이 눈에 들어왔다. 아주 작은 체구에 허리도 굽어서 더 조그맣게 보였다. 그런데도 꽤 무게가 나가 보이는 검은 비닐 봉지를 두 개나 들고 계셨다.
우리가 버스에 오르자 그분도 탔다. 붐비는 버스 안에서 할아버지가 누군가와 통화를 했다. 짐이 무거우니 정류장에 마중 나오라는 것이었는데 주위 모든 사람들이 다 들을 수 있을 만큼 큰 소리였다.
버스가 한참을 달리다 할아버지가 내릴 정류장에 도착했다.
창밖을 보니 할아버지와 체구도 비슷하고 허리도 똑같이 굽은 자그만 할머니 한 분이 한 손에는 우산을 받치고 다른 한 손으로 끌게를 끌고 오셨다. 불편한 몸인데도 할아버지와 눈을 마주치고는 아주 반가워하시며 활짝 웃으셨다. 할머니를 알아본 할아버지 얼굴에도 미소가 한가득 피어올랐다.
흐린 하늘에 언뜻 파란 하늘이 비치는 것 같았다.
그 순간 내 가슴에도 따스한 기운이 감돌았다.
해로하는 아름다운 부부의 모습이 영화의 피날레처럼 선명하게 각인되었다.
#경동시장 #해로 #노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