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사기
은행 퇴직 동우회 사진부에서 남양주에 있는 물의 정원으로 출사를 나왔다. 이곳은 북한강변을 따라 너른 정원이 조성되어 많은 이들이 찾는 북한강 명소 중 하나로 멋진 수변 풍광을 즐길 수 있다
전에 차를 이용해서 몇 번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대중교통편을 이용했다. 멀고 불편할 것 같았지만 경의선 전철역인 운길산역에서 정원이 가까워 찾아가기가 수월했다. 언제든 쉽게 찾아갈 수 있는 장소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교외선이라 승객은 많지 않았다. 전철 안이 여유로워 소풍 가는 기분까지 들었다. 달리는 차창 밖에는 한가롭고 평화로운 전원풍경이 이어졌다. 책을 펼쳤지만 경치에 끌린 마음에는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하차역에서 올려다본 하늘은 구름이 끼어 잔뜩 흐린 날이다. 사진은 빛의 영향을 많이 받기에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강안 풍경은 시원하고 여유로워 충분히 좋았다.
물의 정원에는 싱그러운 자연빛이 가득했다. 넓은 잔디밭과 가로수의 나뭇잎은 여전히 푸르렀다. 시월도 코 앞이지만 아직은 건강한 여름이 머문다. 이곳에는 철 따라 꽃이 피는 곳인데 오늘은 풀빛만 넘실댄다. 광활한 황화코스모스 꽃밭이 조성되었지만 꽃소식은 한참이 지나야 될 것 같다.
푸른빛을 헤치며 산책로가 물길을 따라 부드럽게 이어져 있어 그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오솔길을 따라 강기슭으로 나아간다. 비가 내려 물이 불어난 북한강은 마치 호수 같다. 수면에는 고요와 평안이 묻어난다. 흐린 날의 분위기를 그대로 품은 수면은 하늘빛을 투영해 수묵화처럼 농담이 풀어져 있다. 이런 날은 사람을 들뜨게 만드는 화창한 날과 다르게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보게 만든다. 좋은 날이란 따로 존재하지 않는 법이다. 내 마음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달렸다.
강안에는 부들이 병사들처럼 도열해 있고 꽤 굵은 버드나무들이 가지를 강물에 드리운 모습이 수도승이 명상에 드는 것 같다.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해진다. 자연과 물이 어우러진 곳이 빚어내는 마법이다. 물에 잠긴 고목 그루터기조차도 마음을 숙연하게 한다.
바람이 살랑대며 물 위에 흔적을 남긴다. 잔 물결이 빚어낸 선들이 마치 추상화 같다.
조성된 곳에는 꽃이 없지만 사람 손이 닿지 않은 물가 숲에는 귀여운 야생화들이 피었다. 붉은 고마리꽃과 흰 고마리꽃이 어울려 꽃밭을 이뤘다. 갈대와 억새도 소박한 가을꽃을 피우는 중이다.
산책로에는 앉아 쉴 수 있는 벤치와 흔들 그네가 군데군데 놓여있다. 느긋이 앉아 물을 바라보며 멍을 때리기 딱 좋다. 비어있는 벤치가 누구라도 어서 와서 편히 쉬어가라고 손짓하는 듯하다.
한참 걷다 보면 수크령과 억새가 만발해 가을이 물씬 풍기는 산책로에 들어선다. 키 큰 풀 사이로 앙증맞은 꽃들이 얼굴을 내밀었다. 미국쑥부쟁이가 피었다. 이곳은 자연을 즐기며 산책하기에 그만인 곳이 틀림없다.
정원을 내내 걸었더니 시장기가 몰려온다. 주변 쌈밥집에서 향토색 짙은 풍성한 낮거리를 마치고 근처에 있는 수종사에 올랐다. 꽤 걸어야 하는 산길이지만 올라가서 내려다보는 경치는 수고를 넘치게 보상하고도 남았다. 더구나 산방에 앉아 무료로 즐기는 작설차는 호사가 분명했다. 좋은 친구가 있어 누리는 덕이다.
참으로 느긋하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언제든 마음먹으면 올 수 있는 좋은 장소를 만났다.
#사진 #물의정원 #수종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