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황장산에 오르다

비 온 뒤 산행의 즐거움

by 정석진

염불보다 잿밥에 더 관심이 많은 황장산행이다.

등산보다 버섯 구경을 더 열심히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배낭에 책만 잔뜩 넣었다. 원서 1권에 대하소설과 괴테의 파우스트도 담았다. 2시간 이상을 버스를 타고 가야 하니 가는 동안 책을 읽을 요량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차 속에서 책을 읽으면 어지럽고 힘들다는데, 나는 책을 읽어도 아무 지장이 없다. 단지 책을 보다 터널을 통과할 때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는 점이 불편할 뿐이다.


그래서 내려가는 동안 해리포터를 읽었고 파우스트도 반 권이나 보았다. 고전 읽기 책인 최명희의 혼불도 오늘 읽어야 할 양만큼 다 읽었다. 알찬 시간을 보낸 것 같아 나름 뿌듯하다.

황장산

황장산(黃腸山)은 경상북도 문경시와 충청북도 제천시 경계에 걸쳐 있는 산으로, 해발 약 1,078m의 높이이고 산림청이 지정한 100대 명산 중 하나로 월악산국립공원에 속해 있다.


황장산 이름의 유래는 조선시대에 궁궐 목재나 임금의 관을 만드는 데 쓰던 ‘황장목(黃腸木)’이 많이 자라고 있는 데서 기인했다. 황장목은 가지가 곧고 속이 누런 최고급 소나무를 이르는 말로 금강송이라고도 한다.

버스에서 내려 산에 접어들자 하늘이 잔뜩 흐려서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상황이지만 다행히 비가 내리지는 않았다. 숲은 내린 비로 아주 촉촉이 젖어 있다. 길가 계곡에는 불어난 물로 물소리가 우렁차다. 물기를 잔뜩 머금은 풀숲에는 투구꽃이 만발했다. 비가 계속 내린 탓인지 꽃빛깔은 선명한 남색이 아니다. 오히려 흰빛과 연분홍빛깔로 다양하다.

투구꽃

요즘 내게 산을 오르는 일은 그렇게 힘들지 않다. 달리기로 체력이 다져진 덕인지 가뿐하기까지 하다. 등산로를 따라가다가 최근 야생버섯을 공부한 것이 생각나 숲을 주의 깊게 관찰을 하며 갔다. 티브이에서 눈여겨본 버섯들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했는데 버섯이 생각보다 많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싸리버섯을 만났다. 귀한 버섯이라 참 반가웠다. 요즘 흔하게 난다는 밀버섯을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그 버섯은 보이지 않았다.

참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풀도 우거져 능이버섯이 있을 것 같은 곳이 더러 보였다. 혹시나 하고 숲을 헤치고 다녔지만 아쉽게도 능이는 만날 수 없었다.


그렇게 산은 오르다 보니 온몸이 땀에 젖었고. 흰 모자는 누더기처럼 더러워졌다. 등에 맨 배낭도 마찬가지였다. 정신없이 산을 오르다 보니 어느새 정상이다.

산마루는 운무로 인해서 시야가 제한되었다. 그 와중에도 안갯속에 살포시 드러난 풍경은 멋진 볼거리였다. 특히 소나무들의 자태가 신비로웠다. 황장산도 높다. 버스를 타고 많이 올랐기 때문에 비교적 수월하게 정상에 오른 것이지 처음부터 산을 올랐다면 꽤 힘든 산행이었을 것이다.


정상에서 한숨을 돌린 뒤 하산길은 돌도 많고 미끄러워 위험하다는 이야기가 있어 일부 사람들은 오던 길로 되돌아갔지만 나는 가보지 않은 길을 택했다. 그 이유는 등산화였다. 독일 함바그 등산화 밑창이 떨어져 국내에서 개발된 밑창으로 새로 수리를 했다. 사장님 말씀하시기를 이젠 전혀 미끄럽지 않을 거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자신 있게 힘든 길을 택한 것이다. 실제로 한 번도 미끄러지지 않고 잘 내려왔다.

하산 길에는 골짜기마다 물이 흘러내렸다. 골마다 흐르는 물은 하나로 합쳐져 기운차게 흐른다. 굉음을 내며 흐르는 계류를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저절로 기운이 불끈 샘솟는 것 같다.

물기를 잔뜩 머금은 숲의 모습은 막 세수를 하고 나온 어린아이 얼굴처럼 뽀송뽀송하고 싱그럽다.

길바닥에는 빨간 열매들이 꽃송이처럼 떨어져 있다. 나래 회화나무 열매다. 도열한 나무 가지마다 붉은 열매들이 주렁주렁 달렸다. 이 열매가 비바람에 떨어진 것이다. 황장산에는 신기하게 도토리도 옷을 벗었다. 땅에 토실토실한 붉은 열매가 떨어져 있어 무엇일까 하고 주워보니 도토리 알맹이었다. 마치 처녀의 속살처럼 발그레한 것이 참 예뻐 보인다.

나래회화나무 열매
도토리 알맹이

아직 본격적인 단풍이 들지 않았음에도 길에는 낙엽이 많이 떨어졌다. 간간이 물든 단풍도 보여서 가을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넌지시 알려준다. 붉나무는 단풍이 완연하다.

산을 다 내려와서 마을 어귀에 오미자 밭이 넓게 펼쳐졌다. 아직 달린 열매가 있어 맛을 보니 시큼하고 달고 쓰고 매웠다. 떫은맛도 느껴졌다. 문경은 오미자가 유명해서 와인도 빚는다고 한다. 시음을 해보았는데 포도주보다 맛이 더 자극적이다. 마을 사과밭에는 큼직한 사과들이 탐스럽게 달렸고 대추도 풍성했다. 재피나무 열매도 붉게 익었다. 확실히 결실의 계절이다.

오미자 열매
부추꽃
재피나무 열매

일행 중 한 분이 길을 잘못 들어서 점심이 늦어졌다. 다행히 별다른 사고는 없었고 모두가 배고픈 바람에 점심을 허겁지겁 먹었다. 온천에 들러 피로를 푸는 시간은 즐거웠다.


추억 속에 산 하나를 담았다. 올라가는 길이 노곤하다.


#산행 #명산 #등산 #버섯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