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의 가야산행

가야산과 해인사를 다녀왔다

by 정석진

비 뿌리는 가야산을 올랐다. 한여름이 꺾인 시기지만 습도가 높은 산길은 오르기가 쉽지 않았다.

가야산 운해

가야산국립공원은 경상남도 합천군·거창군 그리고 경상북도 성주군에 걸쳐 있는 국립공원으로, 1972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해발 1,432.6m의 상왕봉을 주봉으로, 칠불봉, 동성봉 등 1,000m 이상의 연봉들이 해인사를 병풍처럼 둘러앉아 고운 산세를 자랑한다.


서울에서 등산로 입구까지 버스로 세 시간 반이나

걸렸다. 가야산에는 잘 알려진 대로 팔만대장경이 보관되어 있는 해인사가 있다. 가야산도 처음이지만 해인사도 가본 적이 없어 들르고 싶은 마음이 컸다. 당일치기 산행이라 정상을 다녀오는 것만 해도 빠듯한 시간이다. 그래서 마음이 바빴다.


해인사 입구에서 주봉인 상왕봉까지는 4킬로미터로 왕복 4시간이 소요된다. 해인사를 돌아보려면 서둘러야 했다. 이왕지사 이곳까지

힘들게 왔는데 그냥 갈 수는 없었다.

홍류동 계곡

버스에서 내리자 빗방울이 날려 판초를 입고 산행을 시작했다. 운무로 시야가 흐렸다. 물이 불은 계곡에는 물소리가 우렁찼다. 이곳 홍류동 계곡은 명승지로 손꼽히는 곳이다. 마음이 급했기에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이 서둘러 올라갔다. 평소에는 주변 경치를 보면서 사진도 찍으며 여유롭게 오르지만 오늘은 그저 땅만 보고 갔다. 빨리 다녀와서 해인사 경내를 들러야 했기 때문이다.


비로 인해 길이 미끄러웠다. 특히 빗물을 머금은 돌들을 조심해야 했다. 묵묵히 걷고 또 걸었다. 비는 오락가락했다. 우의대용으로 판초가 좋기는 한데 더워서 문제였다. 어느 정도 비가 그치자 판초를 벗어 버렸다. 거추장스럽지도 않고 너무나 시원했다. 땀으로 범벅이라 차라리 비를 맞고 가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쉬지 않고 걷다 보니 앞선 일행들을 하나 둘 따라잡았다. 무엇인가를 꾸준히 한다면 반드시 좋은 대가를 얻게 되어있다. 결국 선두가 되어 정상을 올랐다.


목표를 명확히 하면 행동도 달라진다. 두 시간을 쉬지 않고 오른 셈이다. 작정하고 걸으니 그다지 힘도 들지 않았다. 정상 부근에서 청초한 야생화들이 우리를 맞는다. 물기를 머금어서 한층 싱그럽다. 들국화, 구절초, 용담이 피어나 아름다운 자태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들국화
구절초
용담

거의 다 오른 줄 알았는데 아직도 정상까지는 0.6킬로 미터가 남았다. 금방 갈 수 있는 거리라고 생각했는데 끝이 보이지 않는다. 산행은 막바지가 늘 힘든 법이다. 정상을 올라도 비로 인해 아무것도 볼 수 없을 것 같아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암벽 봉우리를 만나 진짜 정상이라 생각했지만 아직도 0.1킬로미터가 남았단다. 힘이 다 빠졌지만 다시 마지막 스퍼트를 냈다.

드디어 정상이다. 다행히 시야가 확보되어 운해를 볼 수 있었다. 산을 휘감은 구름이 마치 물길처럼 보인다. 산들은 다도해의 섬처럼 구름 위에 떠 있다. 평소에는 볼 수 없는 특별한 풍경을 만났다.

비가 내려 힘든 길이었지만 오른 수고만큼 좋은 선물을 받은 기분이다. 갈한 목을 축이고 간단히 요기를 하고 곧바로 하산을 했다.

거침이 없이 빠르게 산길을 내려왔다. 오르며 보지 못했던 싱그러운 숲의 자태가 모습을 드러낸다. 나는 비에 젖어 녹초가 되었지만 숲은 생동감이 흘러넘친다. 빗소리도 귓전을 때린다. 나뭇잎을 때리는 소리가 수선스럽다. 새소리도 울려 퍼진다. 몰입하는 일은 참으로 놀랍다. 정상에 오를 때는 빨리 가야 한다는 일념으로 느끼지 못했는데 하산 길에는 모든 감각이 다 살아났다.

내려가는 길에 동행도 만났다. 젊은 친구인데 공무원이고 육아휴직 중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70곳의 명산을 올랐고 오늘도 두 곳의 산을 오를 예정이었다. 패기와 도전 정신이 놀라웠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내려오니 어느새 해인사 입구다. 그 친구와 함께 해인사를 찼았다.

해인사는 서기 802년(신라 애장왕 3년)에 승려 순응과 이정이 창건한 유서 깊은 절로 한국의 3대 삼보사찰 가운데 ‘법보사찰’로서 팔만대장경(고려대장경)의 봉안지로 유명하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장경판전과 세계기록유산인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다.

가람 입구에는 우람한 전나무가 늘어서있다. 수 백 년 되어 보이는 고사목이 오랜 연륜을 보여준다. 규모가 큰 대찰이라 전각이 많이들 어선 탓인지 좀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경사진 곳에 지어진 가람이라 계단이 매우 가팔랐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9세기 신라 헌강왕 시기 조성된 국내 최고(最古) 목조불상인 목조비로자나불좌상(국보 제333, 334호 등)으로 유물이라기보다는 모던하고 세련되고 우아한 예술품 같았다.

고려시대에 조성된 팔만대장경이 가장 궁금하고 보고 싶었다.

팔만대장경(대장경판, 국보 제32호)

세계적으로 가장 완전하고 방대한 고려시대 불교 목판 경전 모음이다. 장경판전(국보 제52호, 세계문화유산 등재)은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기 위해 조선 초기 목조건축 기술로 지어진 특수 전적고로 자연환경에 맞춘 환기·습도조절 구조로 유명하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장경판전은 15세기 조선 초기 전통 목조건축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정면 15칸, 측면 2칸의 큰 규모를 가진 두 건물이 남북으로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남쪽 건물을 수다라장, 북쪽 건물을 법보전이라 부른다.


장경판전은 자유로이 돌아볼 수 있었다. 중수를 거쳤다지만 바랜 기둥들이 오랜 연륜을 느끼게 했다. 전란에도 무사히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기적 같다. 보호를 위해 나무에 물이 튀지 않도록 우산을 접어야 했다. 보관된 경판이 오랜 세월 동안 좀도 슬지 않고 썩지도 않게 보전되었다는 사실이 참으로 놀랍다.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그만큼 뛰어났다는 방증이다. 그 안에 비치된 팔만대장경판은 아쉽게도 직접 볼 수가 없다. 유물보호를 위해 내부를 개방하지 않는다. 동료가 창틈으로 경판을 사진에 담았다.

비에 홀딱 젖으니 한기와 시장기가 한꺼번에 밀려온다. 식당에 들러 산채와 된장찌개로 배를 든든히 채우고 싸우나로 피곤을 씻어내니 부러울 게 없다. 편안하고 느긋한 마음으로 버스에 오른다.

#가야산 #해인사 #팔만대장경 #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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