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 이야기
필리핀세부로 여행을 떠난 아들이 귀국했다. 아들이 떠나고 전해진 세부 지진 뉴스로 우리 가족은 노심초사를 해야 했다. 당장 아들이 걱정되어 전화를 했지만 불통이었다. 친구들과 함께 간 여행이라 그 친구들의 전화번호를 알기 위해 이곳저곳 수소문을 해야 했지만 당장 알 수가 없었다. 심지어 영사관에도 전화를 걸어 안부를 확인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미국에 가 있는 딸애도 뉴스를 접하고는 톡이 불이 났다. 연락이 안 된다고 하니 밤잠을 설치며 동생이 보내준 사진만으로 아들이 묵고 있을 만한 호텔을. 찾아내서 연락을 해보라고 했다.
그렇게 애간장을 태우고 있는데 천만다행으로 아들과 연락이 되었다. 교육을 받느라 핸드폰을 꺼놓은 것이다. 수영을 좋아하는 아들은 스킨스쿠버 자격증과 프리다이빙 자격증을 취득하러 세부에 갔었다. 아들은 이상 없이 잘 지내고 있는데 왜 이리 난리냐고 세상 속 편한 소리를 해댔다.
우리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마음 같아서는 아들이 당장 귀국했으면 했지만 지내는 곳은 지반이 잠깐 흔들리기만 했을 뿐 이상이 없다고 하니 교육을 잘 마치고 순적하게 귀국하기만을 빌어야 했다. 그 후로 매일 같이 톡이 왔고 자격증도 취득했다고 알려왔다. 그러면서 귀국하면 집에 와 있는 강아지 포미를 볼 수 있는지 궁금해했다. 우리 보다 포미를 더 보고 싶어 한 것이다.
아들은 무사히 귀국을 했고 검게 그을린 건강한 모습으로 환하게 웃으며 집에 들어섰다. 아들을 가장 반긴 것은 포미였다. 포미는 잘 아는 사이인 양 난리도 아니었다. 쁨이는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수줍게 꼬리만 살랑댔다. 포미가 설쳐대는 바람에 쁨이는 존재감을 잃고 주변으로 밀려났다. 아들도 포미를 보고 연신 쓰다듬으며 예뻐했다. 아내는 너무 기뻐서 아들을 꼭 껴안고 한동안 놓아주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포미는 적극적인 애정공세를 계속 펼쳤다.
아내가 아무것도 사 오지 말라고 했는데도 정이 많은 아들은 짐을 풀며 주저리주저리 물건을 내놓는다. 말린 망고에 과자에 헤어 오일까지 한가득이다. 그리고는 자리에 앉자마자 포미를 사진에 담느라 바쁘다. 자기 여자 친구도 포미를 보고 싶어 한다고 우리더러 언제 집을 비워줄 거냐고 묻는다. 이렇게 우리마저도 포미에게 밀려난 신세가 되었다. 포미는 우리 가족에게 가장 확실한 인싸가 되었던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니 오늘도 포미가 보이지 않는다. 쁨이는 안방 방석에 자리 잡고 곤하게 잠자는 중이다. 거실로 나와 앉아있으니 포미가 등장했다. 이 녀석이 또 침대 밑에서 잔 것 같다. 기지개를 켜며 소파에 앉은 내게 직진이다. 포미는 쁨이보다 조금 작은데도 혼자 소파에 올라오지 못한다. 그래서 두 발을 쭉 뻗으며 "나를 올려주세요" 라며 내게 애처로운 눈빛을 발사한다. 이러니 이 아이를 예뻐하지 않을 수 없다. 조금 있다 쁨이도 졸린 눈으로 비실거리며 나타난다. 꼬리를 살랑대지만 먼발치에 서 있을 뿐이다. 어서 오라고 손짓을 한 후에야 겨우 다가와 머리를 내민다. 쁨이는 사랑을 나눠주기도 쉽지 않다.
포미는 새벽부터 총기가 넘치지만 쁨이는 나무늘보처럼 느릿느릿 늘어져 보인다. 포미는 초롱초롱한 눈매로 시선을 똑바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반면 쁨이는 눈을 제대로 맞추기가 힘들다. 몇 번을 시도해야 겨우 눈 맞춤을 할 수 있다. 그래서 포미를 예쁘고 기특하다고 연신 칭찬을 했더니 아내가 눈을 흘긴다. 쁨이는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거라며 자꾸 그러면 다시는 포미를 안 보겠다고 으름장이다. 포미에게 곁눈질을 하고 있어도 쁨이는 한결같이 내 곁을 찾아 자리를 잡는다. 그것이 아내에게는 신기한 모양이다. 평소에 쁨이를 엄청 예뻐하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늘 따르는 것 같으니 말이다.
내가 거실에 있다 서재로 들어오면 쁨이는 조용히 따라와 내 곁에 자리를 잡고 쉰다. 쁨이는 정이 많고 속이 깊은 녀석이다.
아침에 놀라운 풍경이 펼쳐졌다. 언제 보았다고 포미가 아들 방문 앞을 서성거린다. 겨우 하루 알고 지낸 사이인데 자고 있는 아들이 궁금한 모양이다. 그래서 문을 열어주었더니 방으로 쏙 들어간다. 자는 아들을 깨웠더니 아들도 자신을 찾아온 포미를 잠결에 쓰다듬어 준다. 기특하다고 내심 기뻐했는데 그 사이 사고를 친다. 아들을 문안하고 나온 포미가 배변 패드에 쉬를 하고 나서는 곧바로 깔개에 쉬를 또 하고 있다. 안된다고 소리를 지르니 잽싸게 쉬를 하고는 베란다로 냅다 줄행랑이다.
사고를 치고 나서 언제 그랬냐는 표정으로 포미는 앉아서 고양이 마냥 털을 고른다. 아내가 포미더러 행동과 생김새가 꼭 고양이 같다고 하니 고양이라는 소리에 곁에 앉아있던 쁨이가 으르렁 거리며 벌떡 일어선다. 평소에 쁨이는 고양이라는 단어를 듣게 되면 즉각 으르렁 거리는 재미있는 습관이 있다.
포미 간식을 쁨이에게 나눠주다 보니 포미 간식이 벌써 떨어졌다. 다행히 포미는 사료를 잘 먹었다. 포미 사료를 쁨이도 자꾸 탐낸다. 아침에도 사이좋게 둘 다 사료를 잘 먹었다. 아내가 포미에게 일일이 손으로 먹여줬던 것이다.
이제 포미와의 동거는 하루 밖에 남지 않았다. 정이 들대로 들어 앞으로가 걱정이 된다.
#강아지 #간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