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송의 주산지를 찾았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주산지를 찾아갔다. 찾아가는 길은 순탄치가 않다.
숙소에서 보았을 때는 날이 흐린 줄만 알았는데 콘도를 나서자마자 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 정도는 맞아도 된다고 가볍게 여겼는데
차를 타고 가는 동안 빗방울은 점점 더 굵어졌다.
생각지 못한 상황이었지만 비로 인해 저수지의 운치가 더할 것 같은 기대감이 일었다.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수변 풍경처럼 매혹적인 경관은 드물기 때문이다.
주산지는 경북 청송군 주왕산면에 있는 인공 저수지로 조선 경종 1721년에 완공되었다. 300년 가까이 심한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는 놀라운 곳이다. 물안개를 배경으로 물 가운데 왕버들 고목들이 빚는 환상적인 풍경이 유명하다.
주산지 입구 정류장에는 주차된 차가 별로 보이지 않았다. 좋지 않은 날씨 탓이다. 우산이 없어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작은 가게에서 우의를 살 수 있었다.
가을비 내리는 산길을 걸었다. 미처 물들지 못한 낙엽들이 깔린 호젓한 길이다. 산봉우리에는 운무가 길게 드리웠다. 계곡의 물소리, 빗소리 그리고 우의 위에 빗방울 떨구는 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자연의 소리를 원 없이 들려준다. 귀 기울여 걷노라니 저절로 마음이 정돈이 된다.
산봉우리를 옹위하고 자리 잡은 호수는 아담하다. 내리는 비로 시야도 뿌옇다. 아쉽게도 물안개는 보이지 않고 산마루에만 구름이 걸쳐있다.
둘레길을 따라 저수지를 돈다. 물속에 잠긴 왕버들이 예전보다는 많이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물가에 자라난 나무들이 앞을 가려 우아한 왕버들의 자태를 제대로 감상하기 힘들다.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런대로 시야가 확보된 곳을 찾아 사진에 담아보지만 마음에는 차지 않는다.
호수에는 물이 가득하고 왕버들은 물가운데 고요히 서 있다. 홀로 물끄러미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있다. 빗방울이 수면 위를 어지럽게 하지만 고목은 흔들리지 않는다. 수 백 년을 그 자리를 한결같이 지켜왔다는 사실에 경외감마저 인다.
더 좋은 전망을 찾았지만 둘레길은 끝이 막혀있다. 고목들이 고사한 탓인지 새로 식재한 버드나무들이 보인다. 자리를 잡아 저수지를 꿋꿋이 지켜줬으면 좋겠다. 비는 그치지 않고 계속 내린다.
수면 위로 팔뚝보다 더 큰 잉어들이 사람들의 발소리를 듣고 모여든다. 준비해 간 라면을 부셔주니 큰 입들을 빠끔거리고 서로 삼키느라 난리다.
인적이 드물어 고적하고 비는 이어져 쓸쓸하기까지 하다. 기대했던 멋진 장면은 많이 만나지는 못했지만 왕버들의 의연한 자태는 마음에 남는다.
볼거리가 참 많은 청송이다.
#청송 #주산지 #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