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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석진 Mar 22. 2023

봄을 붙잡으러 산을 오른다

용마산에 올라 맞이하는 봄

이주일 만에 용마산을 다시 올랐다. 오늘은 날이 너무나 더워 한여름이나 진배없었다. 외투를 벗고 올랐는데도 땀이 범벅이 되었다. 이제는 봄이 오기 전에 여름이 먼저 찾아오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될 정도다. 적응이 빠른 사람들은 반바지 차림인데도 하나도 어색하지 않은 분위기다. 일교차가 그만큼 심하게 벌어진다는 이야기다. 아침에는 분명 외투를 입어야 했는데 낮이 가까우니 온도가 치솟아 완전 여름으로 하나도 어울리지 않는 어색한 차림이 되어 버렸다. 젊은 친구가 손에 오리털외투를 들고 다니는 것이 이상하게 보이는 그런 날이다.

아닌 게 아니라 서울 시내를 오가면서 주의를 가지고 돌아보니 구석구석마다 본격적인 봄이 한창이었다. 생각 없이 쳐다보면 여전히 변화가 없는 것 같지만 여기저기 꽃들은 스파이처럼 눈에 띄지 않게 은밀히 제 영토를 넓혀가고 있었다. 매화는 이미 절정이고 목련도 성장을 하고 우아한 맵시를 한껏 드러내며 전성기를 열고 있다. 이에 질세라 홍조를 머금은 살구꽃도 저마다 경쟁하듯 몸을 푼다. 빌딩 앞 작은 잔디밭도 봄이 점령 중이다. 제비꽃과 민들레가 그 주인공이다. 햇빛을 받은 민들레의 황금빛 꽃차례는 얼마나 번쩍이는지 작은 꽃이라는 느낌을 가질 수 없을 만큼 당당해서 보는 이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는다. 주위에 무리 지어 피어난 남색 제비꽃의 꽃무리들은 깜찍해서 너무 귀엽고 누구나 추억이 깃든 꽃이어서 더욱 친근하다.

민들레 제비꽃 살구꽃
목련

미세먼지도 잦아드는 완연한 봄날이라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다시 오르는 산길이다. 지난번처럼 같은 길을 그대로 따라나섰다고 생각했는데 웬걸?  정말로 나는 못 말리는 길치다. 옆길로 새서 그랬는지 따릉이가 오를 수 없는 고바위 길이 나타났다. 하는 수 없이 자전거를 내려서 끌고 가면서 한숨이 절로 나온다. 에구 이 길치야!


산길에 들어섰을 때 처음 분위기는 지난번과 큰 변화가 없는 듯 보였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앙상한 국수나무 가지에 여린 새싹들이 전깃줄에 줄지어 앉아 노래하는 참새들처럼 깜찍하고 귀엽게 싹을 틔웠다. 삭막한 산에 새로운 생명들이 태어나고 있었다. 물론 발치에는 여전히 갈잎들이 융단처럼 깔려있어서 밟으면 버석버석 소리가 따라온다. 주로 신갈나무의 마른 잎들이지만 솔잎도 함께 섞여있다.

국수나무

얼마 가지 않아 노란 꽃망울이 가득 피어난 생강나무의 환한 자태를 만난다. 꽃이 피는 외양이 산수유나무와 거의 유사하지만 꽃송이가 훨씬 더 탐스럽다. 노란 색감도 더 진하다. 자세히 보면 몽실몽실 털뭉치처럼 귀엽기까지 하다. 우리 집 강아지 비숑프리제의 잘 다듬은 머리모양이다. 생강나무 꽃은 차로 즐길 수 있는 꽃이고 우려내면 색깔도 곱고 꽃모양도 예쁘게 살아나서 차를 즐기는 이들에게는 아주 반가운 꽃이다. 비비면 생강 냄새가 난다고 하여 이름이 생강나무라고 하던데 막상 해보니 잘 느낄 수 없었다. 꽃이 지고 잎이 자라나면 잎모양이 독특해서 보기에도 좋다. 여러모로 예쁜 나무라고 할 수 있다.

생강나무

전에 왔을 때는 소나무 숲을 빼고는 거의 갈색 일색이었는데 산빛이 은근히 달라졌다. 산이 벌써 봄빛으로 옷을 갈아입고 있었던 것이다. 제일 큰 변화는 전에 왔을 때 미동도 없던 진달래다. 활짝 핀 진분홍 진달래 꽃송이가 특별히 눈에 띈다. 꽃 중에도 별나게 튄 녀석들이 있는 것이다. 이처럼 산자락에 자라는 진달래는 꽃이 피어난 모습도 제각각이다. 해가 들지 않은 응달이지만 키 큰 나무들은 많은 꽃송이를 달고 꽃다발처럼 소담스럽게 피었다. 키 작은 관목 같은 나무는 손톱 끝에 봉숭아 물이 남아있는 것처럼 작은 꽃망울만 아직도 수줍게 벙글고 있다. 푸른 소나무를 배경으로 피어난 꽃들은 금수저처럼 더 빛이 난다. 하지만 아직도 깜깜한 한 겨울인 아이들도 많이 보인다. 군데군데 생기 있는 진달래 꽃을 만나며 산을 오르니 경사가 심한 힘든 길이라도 쉬 올라가지는 기분이다.

진달래

산마루 가까이 올라서니 옷이 땀에 절은 것 같아 웃통을 아예 벗고 맨 몸이 되었다. 땀에 축축해진 젖은 옷을 말릴 겸 두 손에 옷을 들고 휘휘 저으며 걸었다. 다행히 아무도 없는 호젓한 산길이어서 거리낄 게 없었다. 마치 자연인이 된 기분이었고 시원하고 상쾌하기까지 했다. 삼림욕에 풍욕을 하는 것이니 이보다 더 큰 호사가 없다.


지난번 가보지 못했던 산정에 올랐다. 사방팔방이 확 트인 시야가 눈에 들어온다. 도심은 자욱한 안갯속에 안겨있다. 정상에 올랐다는 뿌듯함이 가슴을 더 시원하게 한다. 시간이 빠듯해 바로 하산을 서둘렀다. 멀리 도심의 소음이 세찬 바람소리처럼 들려온다. 산마루에는 자연의 소리가 있다. 몸집 큰 까마귀가 제집인양 크게 소리를 지른다. 아름다운 새소리는 아니지만 봄을 맞는 기쁨이 담겨있는 듯하다.

봄이 산 곳곳에 스며들어 계절이 바뀌었음을 직접 발로 걸어 만나는 즐거움을 누렸다. 힘은 들었지만 산에 오른 보람을 충분히 맛보았다. 부지런하게 몸을 움직이면 이처럼 남들이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는 것들을 보고 느낄 수 있다. 행복은 크기가 아닌 빈도에 있다고 한다. 쉬 가버리는 아까운 봄을 아쉽지 않게 부지런히 찾아다니며 누려야겠다. 그것이 이 봄에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손쉽고 지혜로운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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