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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순간

직장의 마지막 순간을 호캉스로 보내며

by 정석진

어쩌다 누리는 호사다. 롯데월드호텔에서 1박 하는 호캉스를 가졌다. 재직했던 은행의 마지막 선물을 받아 누린 것이다. 흔치 않은 경험이기에 기대라는 군불을 솔솔 지피며 간다.


금년 3월을 끝으로 은행 문을 나선다. 명퇴를 한 이후에도 재취업의 기회로 3년을 근무했다. 여러모로 평생 직장이었던 신한은행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마지막 은행 복지시설 이용으로 최고의 호텔 시그니엘을 가고 싶었지만 치열한 경쟁으로 롯데월드호텔로 만족해야 했다.


차를 가지고 가야 했었는데 그러지 못하고 지하철을 이용하여 연결통로로 호텔에 들어섰다. 호텔 위명에 걸맞게 격조 높은 미술작품들이 벽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귀여운 캐릭터도 도열해 있어 신선했다. 친절한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체크인을 했다. 석촌호수가 보이는 방향으로 객실을 선택했다. 한 번의 호사를 제대로 누려보자는 마음으로 기쁘게 추가 비용을 지출한 것이다. 룸은 28층으로 아라베스크 풍으로 장식된 엘리베이터를 통해 순식간에 올라갔다. 룸 입구에 비즈니스 룸과 회의실이 있어서 글을 쓰면 딱 좋을 공간으로 보였다.


객실에 들어가려고 문을 열려다 키를 어찌해야 하는지 몰라 한참을 헤맸다. 분명 터치를 통해 여닫는 시스템인데 바로 찾지 못하고 이곳저곳 대보다가 겨우 문을 열었다. 촌놈이 서울에 처음 상경해서 어리바리하며 당황한 것 같아 피식 웃음이 삐져나왔다.

객실 내부

잘 정돈된 깔끔한 룸이었다. 고층이다 보니 무엇보다 전망이 압권이었다. 101층고의 시그니엘이 눈앞에 포진하고 있었고 테두리를 벚꽃이 감싸고 있는 석촌호수가 한눈에 들어왔다. 언뜻 보기에도 벚꽃이 한창 피어나 꽃구경할 요량으로 기대가 되었다. 멀리 아스라한 도심이 미세먼지로 인한 운무로 덮여 신비로운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탁 트인 전망으로 우쭐한 기분마저 들었다. 장엄한 풍경에 이끌려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꽤 느낌이 있는 사진을 건질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아졌다.

호텔에서 바라본 전망

아내가 근무로 인해 나중에 합류하기로 하여 여유가 넘쳐 침대에 널브러져 티브이를 켰다. 핸드폰과 미러링 기능이 있다 해서 호기심이 발동했다. 원래 기계조작이 서툴러서 한참을 버벅대다 핸드폰 화면이 TV에 연결되었다. 동영상을 재생해 보았더니 화질이 다소 떨어져도 볼 만했다. 혼자서 무엇인가를 해냈다는 뿌듯함으로 혼자 미소를 지어본다.


뒤늦게 아내가 합류했다. 아내가 룸을 못 찾아 헤매다 바로 문 앞에서 전화를 했다. 이유인즉슨 룸은 안 보이고 사무실만 보인다는 이유였다. 문을 바로 열어주며 눈뜬 장님을 보는 것 같아 웃음이 나왔다. 숙소의 세련된 시설과 멋진 전망에 아내도 아주 맘에 들어했다.


감사하게도 잠실에 거주하는 지인 부부가 저녁을 초대하여 서둘러 나갔다. 직장의 마무리를 나름 축하해 주시겠다는 배려였다. 식당은 꽤 이름난 돈가스 집으로 이른 시간이었음에도 기다려야 했다. 옛 경양식 풍의 식사가 독특하고 입맛에도 맞았다. 즐거운 저녁 식사 후 석촌호수 야경을 보러 갔다. 벚꽃을 즐기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조명에 비친 다양한 색조의 벚꽃이 환상이었고 시그니엘 위용과 어우러져 매력적인 풍광을 만날 수 있었다. 간단하게 공원을 돌고서 호텔을 구경하고 싶다는 그분들과 후식으로 아이스크림을 사가지고 호텔로 돌아왔다.

석촌호수 야경

그분들도 전망도 좋고 숙소도 좋다며 자고 가고 싶다고 농담을 건넸다. 검소와 절약으로 낭비를 모르는 부군과 후덕함으로 넉넉한 아내가 연주하는 삶의 교향곡을 듣는 시간이 너무나 즐거웠다. 오랜 기간 신앙 안에서 함께 지내온 시간들이 있었기에 흉허물을 자연스럽게 나누는 열린 시간이었다. 용납과 수용과 공감이 깔린 무대여서 대화가 물 흐르듯 이어졌고 이야기들마다 즐거운 웃음이 샘솟았다. 살아가며 삶의 토대를 단단히 하는 중요한 요소가 다른 이들과 유대감이다. 나이가 들수록 인간관계가 좁아지고 만나는 이들도 줄어든다.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벗이 있다는 것이 감사한 날이었다.


호텔의 편의 시설을 다 이용해 보려고 수영복을 준비해왔는데 그러질 못했다. 목이 많이 아파서 싸우나 이용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호캉스의 피날레로 호텔 조식을 선택했다. 레스토랑에서 세련된 직원들이 자리를 에스코트해 줘서 산뜻했다. 격이 다른 음식들이 다채롭게 준비되어 조금씩 천천히 음미하며 만찬을 즐겼다.


마지막으로 체크아웃을 하고 석촌호수를 향했다. 거의 만발한 벚꽃이 우리를 반겼다. 꽃놀이에 조금 이른 때여서인지 상춘객이 몰려들지 않아 여유롭게 돌아볼 수 있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나름 뜻깊은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좋았다. 무엇보다 좋은 이들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 마음의 곳간에 즐거움으로 남는다. 평범한 일상이 단조롭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가끔은 반짝이는 순간도 필요한 법이다. 특별한 일이 아닐지라도 익숙한 환경을 떠나 새로운 경험을 맞이할 때 우리 삶은 그만큼 풍성해진다. 벚꽃도 만개할 때는 영원해 보이지만 너무도 급하게 우리 시야를 떠난다.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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