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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석진 Mar 31. 2023

벚꽃을 만나는 아침

벚꽃이 주는 아침의 감성 시와 에세이

봄날 아침 길을 나서다

아침 빛에 휘황한 벚꽃을 본다

샘내는 추위로 움츠리다

눈을 크게 뜨고 가슴을 편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

눈 돌려 만나는

줄지어선  벚꽃의 해맑은 인사

공연히 가슴도 콩닥인다


빛 부신 순백의 정화

절정으로 치닫는 순수에

불현듯 생각을 깨우며

숭고함이 뭉클 솟아난다


가던 길을 멈춰 서서

잊고 살았던 삶의 이유와

놓아 버렸던 나를 만난다


지금 여기에

찬란히 피어나는 생의 환희,

제 힘껏 제 꽃을 피워내면 된다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소를

다정하게 건넨다


등뒤

햇살이 따스하다.


3월의 끄트머리에서 공식적인 마지막 출근에 나섰다. 시작이라는 단어가 우리에게 울림을 주지만 마지막이라는 용어가 주는 느낌도 묵직하다. 그런데 좀 더 깊이 사고를 해보면 시작과 끝은 무 자르듯 할 수 없고 뫼비우스의 띠처럼 하나로 연결이 되어있다. 생이 끝나지 않는 한 마지막은 또 다른 시작이기 때문이다.


5년 전 은행에서 명퇴를 하고 1년을 쉬었다가 재취업을 했다. 기존 퇴직자에 대한 배려의 취지다. 그렇게 한 해를 다시 은행에서 새로운 포지션을 가지고 근무를 했다가 계약 만료로 쉬었다. 그렇게 또 1년 여를 놀다가 재취업의 기회를 얻어 2년을 더 근무했던 것이다. 올해 만 60세가 되는 해로 더 이상은 기회가 없어서 완전히 퇴사를 하게 되었다.


누군가가 느낌을 물어본다. 그만두게 된 소회가 어떡한가를... 글쎄, 세 번째 퇴사를 하다 보니 맨 처음 느끼는 묘한 감정은 없지만 섭섭하기보다는 시원한 마음이다. 한 직장에서 몇 십 년을 근무를 했으니 일의 내용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지겨운 점이 없다고는 볼 수 없겠다.

 

어제저녁 아들이 사 온 케이크로 간단하게 가족들과 퇴직 파티를 가졌다. 식구들이 한마음으로 축하해 주었다. 그간 수고 많았고 이제는 실컷 글을 쓰란다. 나름 흐뭇한 시간이었다. 늦은 밤이었기에  야심한 시각에 잠이 들었다. 느낌은 그렇지 않았는데 싱숭생숭했는지 잠자리를 뒤척이며 꿈을 꾸다 깨다 반복하며 밤을 새웠다.


간단히 아침 식사를 마치고 출근하는 길 아내는 안아주며 잘 다녀오시라는 인사를 한다. 마음에 작은 파동이 인다. 그렇게 나서는 길, 아침 바람이 조금은 차가웠다. 해가 이미 뜬 시각이어서 아파트 단지에 핀 벚꽃이 햇빚을 받아 눈부시게  빛났다. 미세먼지가 있다고 하지만 바라다본 하늘을 푸르렀다. 찡한 감동이 밀려왔다. 쨍하고 맑은 날은 별일이 없더라도 기분이 좋아진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날씨다.

그렇게 아파트를 나서서 따릉이를 타고 중랑천에 들어섰다. 따스한 햇살이 출근길을 축복하듯 환하게 비춘다.  조금 더 달려가다 장안동 벚꽃길이 눈에 들어온다. 완벽한 순백의 꽃송이들이 검은빛 나뭇가지 사이로 순결한 아우라를 뿜어낸다. 자전거를 멈춰 서서 벚꽃이 이끄는 매력에 나도 몰래 빠져든다. 순수한 결정체 앞에 숭고한 마음이 일어 손을 모으고 생각에 잠긴다. 괜스레 부끄럽다. 어둠이 밝은 빛에 물러서는 느낌이다.


정신을 차리고 길을 가려는데 꽃들이 환한 미소로 마음을 보듬어 준다. 괜찮다고 자신의 모습대로 자신의 꽃을  피우면 될 거라고....  마지막 하루의 문이 그렇게 열렸다.


#에세이 #시 #벚꽃 #아침 #글로성장연구소 #별별챌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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