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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강산 Apr 20. 2018

김구용 <구용일기>

시인의 일기



  내 일기 속, 몇몇 기록들은 당장에 그림이라도 그릴 듯이 뚜렷한 반면에 특정 기억들은 한참 전에 꾸었던 꿈을 다시 떠올려보는 것처럼 흐릿하다. 나아가서 어느 순간부터는 그 흐릿한 일기의 내용들이 낯설게 느껴진다. 분명 내가 살아가며 지나왔던 일이고, 그 순간으로부터 머지않은 시간대에 내가 직접 기록한 일임에도 다시 읽어보면 낯설게 느껴진다. 남의 일인 것만 같고 내 감정이라는 게 믿기 힘들다. 낯선 기록이고, 낯선 기억이다. 그러면서도, 그 기록들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세상에 있을 법하다. 그야 당연히 세상에 있었던 일이니 당연한 일이다.


  이렇게 누구에게나 있을 법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나에게 낯설게 되어버린 일기와 기억의 주인은 이제 누구인가. 나인가? 오히려 나보다 이 기록들을 더 가깝게 체감하는 사람이 세상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그들이 내 기록들을 통해, 자기 기억 속을 되짚어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면 단순한 일기 이상의 의미가 있지 않을까.

  이상의 내용이 내 최근 창작방식의 경위를 요약한 것이다. 이제 나는 위 내용을 길잡이삼아 시작해볼까 한다. 김구용시인의 일기는 김구용 그 혼자만의 기록일까. 독자의 기억이 될 수는 없을까. 김구용의 기억들. 이 머나먼, 그리고 낯선 기억들을 체감하면서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을까. 다른 이의 기억 속에서 우리는 무얼 할 수 있을까, 조금이나마 우리 몸을 움직여 볼 수 있을까. 방대한 40년의 기억 속에서 그저 허우적거리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지만 그래도 시작해보자.       



  1. 작가 소개


  김구용은 1922년 음력 2월 5일 경상북도 상주군출생. 그의 본명은 영탁(永卓)이다. 불문에 귀의하여 해방 직전까지 동학사 등에서 각종 경전과 고전 등을 섭렵했다. 등단 당시 필명은 수경(水慶)이었는데, 나중에 공자의 이름에서 丘[언덕 구] 자를, 중용에서 庸[떳떳할 용, 쓸 용]자를 따와 스스로 구용(丘庸)이라는 필명을 짓는다. 그가 구용이라는 이름을 계속 사용한 것은 누구도 그 뜻을 짐작하기 힘든 점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생후 가족과 함께 출생지를 떠나 홀로 생활하던 그는 1925년 유모 삼마를 따라 철원군 월정 역 근처 마을로 보내져 그해 겨울을 난다. 몸이 약했던 구용을 집에서 멀리 떨어진 산속으로 보낸 것은, 부모 곁에 있으면 제 명대로 살지 못한다는 말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후에도 계속 김구용은 여러 사찰에 머물면서 지낸다. 이렇게 어린 시절부터 계속해서 마주한 불교사상은 그의 시를 관통하는 맥이 된다.

  이후 김구용은 20대 후반에 6.25라는 특수한 상황을 겪으며 정신적, 물질적 후원자이던 모친을 잃고 심한 고독감과 경제적 곤란 속에서 부산으로 피난한다. 그는 잡지사 기자, 임시 막사 대학 수업, 작품 활동이라는 삼중의 역할을 병행하느라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겹게 생활한다. 그러나 이러한 전쟁 체험을 바탕으로 비인간화된 문명 세태에 대한 통찰을 이끌어내 작품에 반영하기도 하였다.

  그가 작품 생활에 임한 기간, 즉 1950년대에서 80년대 후반까지의 기간은 한국 현대시사에서 여러 사조와 경향이 복잡하게 분출되었던 시기였다. 전통서정시, 모더니즘시, 현실참여시 등의 굵직한 갈래 뿐 아니라 그로부터 파생된 다양한 성격의 시들이 시단을 풍요롭게 했다. 김구용 역시 사십 여 년의 세월 동안 동양의 고전적 전통, 유불선이 융합된 종교적 직관, 독특한 시적 상상력과 개성적 형식이 함께 녹아 있는 작품을 활발히 발표하였다. 내용적 측면 뿐 아니라 형식적 측면에서도 산문시형에 대한 실험을 극단으로 밀고 간 중․장편 산문시들, 구문과 통사의 파격적 해체, 추상명사와 한자어를 사용한 이미지 실험 등 선구적인 시도를 일관되게 감행하였다. 이를 통해 김구용은 한국 현대 시사를 통틀어 어떤 시인과도 함께 분류하기 힘들 정도로 독창적인작품 세계를 이루었다.    


  2.구용일기


  어떤 문학작품을 한 인간 삶의 최종작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종착보다는 세상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모서리에 대한 기록이고, 과정 속의 산출이다. 성장과정, 교육, 시대 문화적 여건 등이 녹아 있는 ‘구용일기’속 기록은 시인 김구용의 정신세계와 그 세계의 형성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김구용의 시와 그의 일기를 통합적으로 살펴보고자 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산문적 기록과 시의 문학적 관계를 통해 김구용의 시를 작가의 생애 안에서 바라보는 게 가능해질 거라 생각한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예술적 기록을 독자의 삶으로 끌어와 또 하나의 삶으로 치환할 수 있다면 제법 생산적인 활동이 될 것이다.  

  전반에서 참고하고자 하는 ‘구용 일기’는 김구용이 19세가 되던 1940년부터 성균관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던 1980년대 초에 걸쳐 약 40년 동안 쓴 일기 가운데 시인이 자선한 글들을 묶은 책이다. 일기의 많은 부분은 문학을 공부하던 시절의 고독과 정진, 마치 저물 녘 산방의 독경소리와 같은 청아하고도 내말한 문학도의 육성의 기록이다.

  이 일기의 기록적 가치는 우리 정신문화의 뿌리를 찾아가는 귀중한 순례기이라는 점과 더불어 고난에 찬 역사의 굽이에서 시인이 만난 김구, 이시영, 김범부, 작가 김동리, 변영로, 박종화, 유치환, 박인환, 박용래, 김춘수, 박목월, 조치훈, 오정희 외에 화가 김환기, 남관, 박노수 등의 시인, 묵객, 교수들과의 일화들이 섬세하게 담겨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거대한 시대의 군상들에 집중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김구용 시인 한명이 펼쳐나가는 이야기와, 일기 속에서 그가 발산해내는 창작욕구와, 그 과정 속에서 그가 발견해내는 빛나는 발상들을 찾아 읽을 수가 있다.    

  우선 김구용시인이 자신의 일기를 어떻게 다루었는지를 살펴보자.    

  1940.5.12.

  일기는 허영이 아니다.

  1940.5.13.

  일기는 감사며 고통이며 책임이다.

  

  이 기록을 마치고 십년 후에(1951년도에) 김구용은 일기장 한 권을 잃어버려서 온 방을 다 뒤져보지만 찾지 못한다. 그 충격으로 김구용은 당분간 붓을 들지 못했다.’라고 기록한다.(당시에는 일기를 붓으로 쓴 듯하다.) 그만큼 김구용에게 일기가 가지는 의미는 각별했다. 김구용은 자신이 겪은 일을 기록하는 일기를 쓸 때에도, 여느 작품 창작 못지않게 신중하게 다가가고, 가벼운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을 경계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를 특히 잘 드러내는 일기가 있다.

 

  1952.6.15

  나의 작년도 일기장을 누가 가지고 갔을까. 악의로 훔치진 않았을 것이다. 내 사생활에 관해서 혹 무슨 비밀이라도 씌어 있지 않나 하고 누가 어떤 호기심에서 가지고 갔을 것이다. 그러기에 남의 일기장을 읽는 것은 실례로 되어 있다. 또 남에게 자기 일기책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나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나는 남이 읽어서는 안 될 내용은 애당초 일기책에 쓰지 않는다. 남이 들어서는 안 될 말을 한다는 것부터가 실례이기 때문이다. 이건 내가 공명정대하다는 신념이 아니다. 오히려 이것과의 반대의 경우가 많다. 나는 이런 경우를 숨기려는 것이 아니다. 즉 나는 내 체험을 표현할 뿐이지 꼭 사실만을 기록하려고 하진 않는다. 사실이란 것은 비교적 그 당자에게만 중대할 따름이지 남이 볼 때엔 그다지 중대한 것이 못 된다. 일기도 또한 글인 이상 나는 그러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왔다.

  

  ‘구용일기’에는 역사 속 흥미로운 사건들이 생생하게 기록되어있고 그 사건들 위에 시인이 풀어내는 ‘표현한 체험’이 덧씌워진다. 위 일기를 근거로 우리는 이제 조금 더 적극적으로 그의 일기와 시를 통합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구용일기’는 단순한 기억 속 문장의 나열이 아니라, 분명하게 취사선택된 이야기들이기에 이 일기를 통해 김구용의 시작법(詩作法)을 분석하는 것에는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이미 검열된, 계획된 두 작품 간의 비교인만큼 김구용이 가지고 있었던 아주 소소한 기억들과 그의 시를 만나게 해볼 생각이다.

  다만 김구용 시의 내, 외향적 특징들은 매우 개성적이어서 개별로 구별하지 않고서는 쉽게 설명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여 아쉽지만 ‘추상명사’와 ‘난해함’ 그리고 ‘시선’이라는 주제로 김구용의 시를 나누어 분석하고자 한다.   


  3. 추상명사


  1976.1.17.

  어느 외국에서 새로운 소설 수법이 한참 시도되더니 우리나라 시에서도 추상 명사를 몰아내는 언어 조립이 나타났다. 젊은 시인들에게 “작품은 계속 써지는데 발표할 지면이 부족하지나 않느냐”고 물었더니 그 중 한 시인은 “그렇지도 않다”는 대답이었다. “요즘 신설(新設)들은 매우 신중한 편이냐”고 물었더니, 뜻밖에도 그들은 일제히 웃었다.

  우편배달에 이상이 있나보다. 김영태 시집 「초개수첩」, 이건성 시집 둘째의 공간도 나에게 보냈다는 데 받지 못하였다. 그래서 간청해서 다시 받았다. 그러고 보면 우편물이 중간에서 없어지는 일은 이 외에도 있을 것 같았다.

  박재삼 씨는 곧잘 우리를 웃게 한다.

  “박희진 씨 말이 한용운 시집 초판본을 가지고 있다기에 이중섭 씨 소품과 바꾸기로 약속하고 며칠 후 갔더니 한용운 시집이 아니라 한하운 시진 초판본이었어요. 도로 가지고 나올 수도 없고 해서 결국 그림만 날려버렸어요.”

  박재삼 씨의 웃음에서 나는 숲 속의 새를 본다. 어디서나 고독하지 않았다. 한하운이 한용운으로 들렸을 정도라면 씨의 순도(純度)가 짐작될 것이다.    

  뒤에 가서 박재삼씨의 이야기로 끝맺지만, 일기의 시작은 추상명사를 몰아내는 언어조립이 나타나고 있는 문단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김구용 시의 두드러지는 특징 중의 하나가 추상명사를 즐겨 쓴다는 점이라는 걸 고려해 볼 때 꽤 흥미로운 부분이다. 게다가 김구용은 일상에서 많이 사용되고 익숙한 추상명사가 아니라 한자의 뜻을 따져 보거나 사전을 찾아보아야 하는 정도로 생소한 추상명사를 사용하는 편이다. 이렇게 추상명사를 시에 많이 사용하는 이유에 대해서 그는 “우리나라 시에서는 거의 대부분이 물질명사만 쓴다. 내가 읽어본 서양 사람들의 시를 보면 그들은 추상명사를 자유로이 쓰고 있었다. 그래서 추상명사를 우리나라 시에 도입을 해서 정신이 있는 내부성을 표현해 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물질명사만 쓰면 보기만 좋지 내부세계는 허술해진다고 생각했다.” 라고 밝히 바 있다.

  이렇게 의도적으로 추상명사를 골라 시작(詩作)하는 김구용의 입장에서 젊은 시인들의 ‘추상 명사를 몰아내는 언어 조립’은 마냥 보기 편하지만은 않았을 듯하다.

  자, 그럼 이제 조금 더 깊게 김구용 시 속에 있는 ‘추상명사’를 살펴보자.    

  묵념은 등대의 목줄기를 쳐다보며 별들의 숨을 쉰다. ……도난당한 밤의 피곤은 눈을 못 떴다. ……의욕은 연 잎사귀에 뼈만 남았다. ……靜觀(정관)은 바다 안개로 皮化(피화)한 가로등 불에서 소리를 발견한다.

  「말하는 風景(풍경)」 부분    

  적막은 集散生滅(집산생멸)의 의상으로 춤추며 물러가는 길거리의 시각을 알린다.

  「아리랑 III」 부분   (모을 집) (흩뜨릴 산)    

  행위는 후회를 모르는 춤이었다. ……행동은 초침에 말려들어 구슬땀을 흘리며 쓰러질 듯 춤추었다. ……추억이 앞에서 묵중한 철문을 열었다. 고막을 찢는 기관의 금속성과 함께 ……거리의 계산은 유리와 洋灰(양회){시멘트}로 人情을 막았다. ……睡眠(수면)은 박하 고약처럼 퍼졌다. ……소모는 綠(녹)빛 딸라의 계절에 낙엽처럼 흩어졌다.

  「꿈의 이상」 부분    

  문제는 술잔에 빠져 모발을 펴고 있었다.

  「杜甫(두보)」 부분    

  시집을 넘기며 굳이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될 정도로 추상명사는 김구용의 시에서 자주 사용된다. 그리고 시에서는  추상명사를 사용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추상명사를 과감하게 주어로 내세우면서 의인화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홍신선은 “사물이나 추상적인 관념들이 주어로 자리 잡은 이 같은 현상은 우리 세계를 인간적인 뜻과 값이 없는 세계로 되돌린 데서 온 것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세계를 인간의 가치 체계나 값 쪽에서 일관되게 바라보고 해석한 것이 아닌, 사물이나 현상의 뜻과 값을 나름대로 방임해 놓고 있는 태도에서 온 현상”이라고 말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술어가 형용사가 되든 동사가 되든 상관없이, 추상명사들은 구체적인 상태나 행위의 주체가 됨으로써 그 추상적, 관념적 속성을 벗어나 그 자체로 존재화 한다는 점이다. 추상명사들이 추상적으로 설명되지 않고 문맥 속에서 구체적으로 형상화되어 살아 움직이는 주체적인 존재가 됨으로써 시는 활력을 얻게 된다. 추상성과 구체성이 날카롭게 결합하면서 문맥을 역동적으로 살아나게 한 것이다.

  또한 반대로, 왜 당시 젊은 작가들이 추상명사를 시에서 잘 쓰지 않았는지를 생각해보면 오히려 김구용의 의도가 더 분명히 드러난다. 왜 그들이 시에서 추상명사를 잘 사용하지 않았는가. 답은 간단하다. 형상화가 어렵기 때문이다. 추상명사는 그 말뜻 자체가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이기에 사용하는 것 자체가 정신세계에 대한 탐구시도라고 할 수 있다. 김구용은 이미 형체를 가지고 있는 보통명사에 기대기보다는 유형화되지 않은, 글자 그대로 추상적인 명사의 영역에서 자신의 상상력을 작동시킴으로써 세계와 존재에 대해 질문하고 탐구하며 의식의 영역을 넓히려 애쓴 것이다.    


  4. 난해함과 시선  


  김구용의 시는 1950년대 전후(前後) 한국의 피폐한 현실을 불교적 사유와 실존의 성찰을 통해 담아내면서도 일상적인 어법과 사실 재현의 방식이 아니라 한자어와 조어, 관념적인 추상명사의 빈번한 사용과 낯선 은유, 환상의 서술, 극단적인 산문시의 파편적 서사, 압축과 과감한 생략 등을 활용함으로써, 이른바 난해의 장막이라는 시편들 중의 하나로 지적되어 왔다.

  이른바 ‘난해의 장막’이라고 불리는 김구용의 시편들의 시발점은 앞에서 다룬 추상명사의 사용에 있다. 추상명사 중에서도 일상에서 잘 쓰이지 않는 한자어를 택하면서 외적인 형태의 새로운 의미를 창출해낸다. 언어의 성격상 본질적으로 많은 의미가 함축된 한자어가 자주 사용되고, 또 그런 한자어들이 끊임없이 발생하듯 뛰쳐나오며 시의 호흡을 이끌어나가는 것이다.

  가히 실험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한자 언어의 탐구와 그 외의 다양한 시도로 난해의 장막을 펼치는 김구용의 시를 기존 학자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해석하고자하는데, 주로 50년대라는 시대상에 맞추어 전쟁에 초점을 맞추거나, 모더니스트로서의 김구용을 조명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위 두 가지 방식과 부합하는 일기와 시를 한 편씩 골라 합쳐보았다. (단순한 방식과 전달의 용이성은 모더니즘으로서의 문학작품이 추구하는 바가 아니며 오히려 즉각적으로 이해  되는 것에 저항하는 태도가 진정한 모더니스트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 착안한다면 복잡성을 특징으로 하고 있는 김구용의 난해성은 모더니즘 예술의 한 특징으로써 설득력을 얻게 된다)

 

  1951.12.5.

  나무 없는 산과 산, 부서진 거리가 차창에 나타난다. 눈바람이 에어내는 듯한 작년 겨울에 숱한 피난민들과 제2 국민병들이 걸어갔을 신작로의 연속이다. 바로 옆에 서 있던 두루마기 차림의 사람이 조끼 주머니가 찢어지고 돈이 없어졌다는 바람에 나는 불안하였다. 낙동강 철교를 지날 때 승객들은 차창을 열고 저무는 강산을 내다본다. 벌써 격전의 자취도 없었으나 으스스하였다. 대구에 하차. 캄캄한 골목길로 들어서서 성이가 신세지고 있는 하숙집을 찾기까지 방황하였다.

  광명이 밤 길거리의 매력이라면 무엇이 나타난다는 말인가. 나는 걸을 때 과일집, 이발관, 구두점, 극장, 다방, 은행, 골동상, 포목전, 고깃간, 악기점, 요리집, 책집, 백화점, 운동기구점, 인쇄소, 관공서, 신문사, 이러한 연속에서 혹란한다. 생각은 직업에 부침하는 군중들로 휩쓸린다. 공간에 꾸겨지는 호흡이 무겁다. 건물과 불빛 사이의 현상은 주의할 단 하나의 진행 방법이다. 그러한 사이를 가노라면 나의 그림자는 건물들의 종면에 혹은 광고지에 금세 거목으로 자라나고, 어떤 각도에서는 고무줄처럼 늘어나 목이 꺾여진 채 끊어질 듯이 소리를 낸다. 그 모양은 용하고도 놀랍다. 그림자들이 충돌해도 사고 없이 교류하는 사실을, 나는 이상히 여기며 가야만 한다. 인조 물품들의 현혹한 기상이다. 가지가지 색채, 조형, 음향이 나를 부르는 진열창의 내부 앞에서 의욕은 덜미를 잡혀 반대편 아스팔트 위로 나동그라진다. 나의 저항은 화려한 빛에 밀려날 때마다 기쁨을 조작한다. 그것은 구매력과 소유욕을 정확히 지표하는 나침반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살피지 않는다면 언제 암초에 파산할지 모른다. 한숨의 안개가 지침을 뒤덮는다. 헤트라이트가 계속 내 그림자를 양단한다. 자동차, 전차, 여러 가지 차량들이 질질 끌려가는 내 위로 질주하나 나는 아프지 않다. 속도와 방향에 따라 차체마다 기어오른 나의 그림자들이 요란스레 떨면서 유종을 헤어난다. 안계가 무너질 듯이 흐느적거린다.  

  두 번째 문단인 ‘광명이 밤 길거리의……’부터는 「피곤」시의 일부이다. 일기의 연장선처럼 느껴지도록 구성해보았다. 시의 연장선처럼 구성해보았다고도 할 수 있겠다.

  위 글의 화자가 위치한 공간적 배경은 공통적으로 거리이다. 그것도 전쟁의 기운이 남아있는 거리이다. 그 위에서 각 문단 화자들의 마지막 행동은 방황하는 것과, 흐느적거리는 것이다. 사실상 같은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위 글에서 우리는 모더니스트이자, 전후(前後)를 겪고 있는 한 인간인 김구용을 한 인물에게서 동시에 볼 수 있다.

  배경에 대해서 더욱 구체적으로 말하면 ‘도시의 거리’가 된다. 우리의 화자, 이 모더니스트가 위치한 곳은 도시의 한구석이고, 그곳에서 화자의 시선은 도시 안의 풍경에 고정되어 있으면서 소외된 사람에 대해 이야기한다. 조끼 주머니가 찢어진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그러하고, 당장 그 길거리를 방황하고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그러하다.

  ‘건물 사이를’ 걸어가면서 흐느적거리는 화자는 거리를 걸으며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서 “혹란”의 어지러움을 느낀다. 그에게 도시는 생업으로서의 온갖 “직업”에 종사하는 인물 군상과 그 일들이 이루어지고 있는 “호흡이 무겁”게 느껴질 만큼 고통스러운 실존적・세속적인 장소로 다가온다. 이러한 실존의 극한 상황은 “그림자”가“건물들의 종면에 혹은 광고지에 금세 거목으로 자라”난다든가“어떤 각도에서는 고무줄처럼 늘어나 목이 꺾여진 채 끊어질 듯이 소리를 내”는 정서적 불안 상태를 가중시키고 있다.

  “헤트라이트”에 의해 계속 “그림자가 양단하”고 있는 상황을 몹시 불안해하는 화자, 그림자 위를 질주하는 차량으로 존재의 위협을 느끼는 불안한 자아는 “안계가 무너질듯이 흐느적거리”는 충격과 공포의 체험을 겪고 있다.

  단순히 바라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 것이다. 도시의 관찰자인 시적 주체로서의 김구용의 경험은 단순히 이색 풍경을 보는 것, 그리하여 도시에서 벌어지는 일을 표피적으로 묘사하는 단순한 그림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전쟁이 진행되고 있는 혼란한 도시를 바라보는 거리의 산책자는 새로운 풍경을 대면한다는 단순한 신이, 경이를 벗어나고 있다. 그는 전후의 실존 풍경 가운데 충분히 주관적 감정을 유발할 수 있는 경악, 통증의 저변과 기층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면서도 이에 대해 매우 건조하고 객관적 시선을 보내고 있다.

  김구용 시의 난해성은 일기와의 비교를 통해 두드러진다. 일기가 전후의 ‘단순한 그림’이었다면 시에서는 ‘새로운 풍경을 대면한다는 단순한 신이, 경이를 벗어나고 있다.’ 그는 풍경 위에 이미 놓여있고 그 곳에서 유발되는 저변의 감정을 묘사한다. 그리고 그 위에 시선이 얹어지면서 ‘난해의 장막’이 펼쳐지는 것이다.   


   5. 마무리하며


  김구용 시인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이뤄지기 전까지 ‘난해의 장막’은 김구용의 시에 걸려있는 게 아니라, 김구용 시인에게 걸려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장막으로 인해 가려져 있는 작품 기저에 일관된 시적 진실을 확인하기 위한 연구자들의 많은 시도가 있었다. 한 인간의 존재론적, 인식론적 사유체계를 규명하기 위해 개인적 기록인 ‘구용일기’가 어떻게 활용되었는지를 살펴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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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김구용 문학 전집5, 구용일기 1p.

 김구용․김종철 대담, 국어 문법론, 127면.

 김구용 문학 전집, 시집340p                                                                                  

 유정이, 한국 전후 모더니즘 시 연구 : 신동문, 전봉건, 김구용 시를 중심으로. 학위논문(박사)-- 동국대학교 : 국어국문학과 2008. 8 .

 박선영, 김구용 시 연구 = A Study of Kim Gu-yong's Poetry, 학위논문(석사)- 성신여자대학교 : 국어국문학과

  김구용 산문시 연구.1,「소인(消印)」(1957)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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