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일, 강성은 시(詩)로 보는 사랑과 전쟁
<사랑과 전쟁>은 한국방송공사에서 방영된 텔레비전 드라마이다. 1990년대 후반 사회적 이슈였던 대한민국 부부들의 이혼 문제를 허심탄회하게 다룬 시추에이션 드라마 형식으로 이혼 위기에 처한 부부의 사례를 리얼리티하게 재구성한 게 특징이다. ‘이혼을 부추긴다'는 요지의 비난과 그 밖의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장장 십년 동안 최장수 프로그램으로 기록될 만큼 큰 인기를 누렸다.
이 프로그램의 장수 비결을 두고 몇몇 전문가들은 IMF를 겪으며 사회문제로 대두된 이혼이라는 소재를 직접적으로 다루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또한 실제 부부 생활에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현실성을 반영한 점으로 꼽았다. 다시 말해 시의적절 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런 평가는 2010년대에 이르러서 시즌2 역시 10% 안팎의 시청률을 꾸준히 유지한 것을 충분히 설명해주지 못한다. 그러므로 시의성 보다는 시대와 관계없이 시청자의 공감을 이끌어낸 요소에서 인기의 이유를 찾아야 할 터인데, 그런 시점에 닿을 때 한번 더 눈길이 가게 되는 것이 바로 프로그램의 제목이다. ‘사랑’ 과 ‘전쟁’. 이 두 단어의 병치는 어떠한가. 그대로 읽자면 ‘사랑 그리고 전쟁’이 맞겠으나 프로그램의 맥락상 ‘사랑은 전쟁’으로 읽어도 무리가 없다.
물론 <사랑과 전쟁> 프로그램 내에서만 이런 은유가 적용되는 건 아니다. 그 외적으로도 두 단어는 유사한 점이 많은데, 우선 상흔을 남긴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굳이 프로이드의 명제를 들먹이지 않아도 우리는 이별이 남기는 것들 즉, 사랑하는 사람의 애정적 상실로 인한 아픔과 그 충격에 대한 불안에 쉽게 공감할 수 있다.
이것은 신체적 고통과는 다르게 피부 조직의 훼손 없이 발생한다. 심적 고통의 출혈 흔적은 상해의 장소에서가 아닌 사랑하는 대상과의 유대감정에서 찾을 수 있다. 연인과 맺었던 끈끈한 유대감의 단절은 수습하기 힘든 심적 고통을 낳는다. 이러한 결별은 급작스럽게 내면의 평화를 뒤흔들고 끊임없이 고통을 유발한다. 연인과의 이별은 심적 체계의 계속성을 부수어버리고 마음의 균형을 잃게 하며 즐거움을 잊게 만든다. 한 개인에게 있어서는 가히 전쟁의 상흔과 비유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별에 이토록 큰 충격과 고통을 받을까. 사랑은 그에 상응하는 고통을 참아낼 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일까? 김중일과 강성은도 그들의 시에서 유사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김중일,「해바라기 전쟁」
구형 턴테이블 위에 낡은 LP버전의 지구를 올려놓고 모래바람의 목쉰 노래를 듣는 밤입니다. 보내주신 계절들은 잘 받고 있습니다. 항상 부족한 계절만큼 우리는 또 한 무리의 어린 병사들을 잃어야 합니다.
한번도 울어본 적 없다는 신의 동공같이 까맣고 건조한 대사막의 밤은 아름답습니다. 별들을 무수히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백전노장, 불멸의 전장영웅 밤과 하늘은 나란히 선봉에서 지금도 우리를 지휘하는 중입니다.
고통스럽게 죽어간 어린 병사들의 계급장으로 쌓은 계단을, 끝없이 밟고 구름 위로 오르는 야간행군은 얼마나 고되고 가혹한 훈련인지요.
배신자들. 오래전 우리는 해바라기를 되찾기 위해 출정했습니다. 시간의 해방군으로부터 마을이 점령당하고, 해바라기들은 모두 흩어졌지요. 우리는 더듬이가 잘려나간 귀뚜라미처럼 숨어서 울어야 했습니다.
마음의 한 가지 얼굴. 미친 해바라기들. 고작 하나의 마음일 뿐인 그것들은 변변한 몸 없이도 우리를 떠나 행복할까요. 오늘도 나는 대사막 한가운데에서 얼굴 없는 해바라기들과 맞닥뜨리고 있습니다.
턴테이블 위에서 아직도 노래는 계속됩니다. 해바라기의 목쉰 노래를 따라 나는 턴테이블 위를 둥글게둥글게 돌고 또 도는 야간행군을 하는 중입니다. 먼저 간 병사들의 시체가 내 그림자 대신 발목에 매달려 질질 끌리는 밤입니다.
당신은 안전하십니까?
나는 마리오네트처럼 유쾌하고 분주하고 심각합니다. 검고 질긴 비가 내 손목을 휘감아 들어올립니다. 지금은 비의 리듬을 따라, 슬퍼하지 않고 우는 법, 기뻐하지 않고 웃는 법을 연습중입니다
「해바라기 전쟁」은 이별을 맞이한 사람을 상상하게 만든다. 속이 뒤집어질 만큼 커다란 이별의 내상을 입은 한 사람이 묵묵히 걷기 시작한다. 그는 복잡한 생각을 머리에 얹을 만큼 심적으로 여유롭지 못하기에 그저 땅바닥만 보며 걷고 있다. 아침부터 시작된 여정은 하얀 벽돌 땅이 밤기운과 함께 검은색이 될 때까지 이어진다. 생각하면 넘어지고 넘어지면 아프다. 그는 더 이상 아프기 싫다. 이미 아파서 걷고 있으므로. 그래서 생각부터 멈춰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러고 나니 어느새 여정은 행군이 된다. 돌고 도는 LP판 위에서, 그 검은 바닥위에서 말이다.
그 턴테이블은 ‘구형’이며 LP 판은 ‘낡’았으며 흐르는 노래마저 ‘목쉰’ 것이다. 따라서 화자는 ‘오래전’ 기억을 되새기고 있는 것이다. ‘계절’은 전시 상황에서의 보급품으로써 부족하면 병사를 잃게 된다. 이 계절을 시간으로 해석할 때 기묘한 역설이 발생하는데 바로 화자의 군대를 저지하는 것이 ‘시간의 해방군’ 이기 때문이다.
‘계절’ 즉, 시간이 부족하면 화자의 군대는 힘을 잃는다. 이별의 아픔을 충분히 다독이고 나서야 제대로 나아갈 수 있을 터인데 ‘백전노장’과 ‘전장영웅’은 건조한 ‘대사막’에서의 진군을 늦추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병사들은 ‘고통스럽게’ 죽어간다. 그런 그들이 쫓는 것은 ‘시간의 해방군’이며 이들은 사랑을 뜻하는 해바라기를 달아나게 만든 장본인이다. 그들로 인해 화자의 군대는 “더듬이가 잘려나간 귀뚜라미처럼 숨어서 울어야” 되는 처지에 이른다. 다시 말해, 사랑을 잊기 위해 시작한 행군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데 또 그런 그들이 쫓는 것은 그 시간(해방군)이 달아나게 만든 해바라기(사랑)인 것이다. 여기서 LP판의 이미지가 떠오르며 “해바라기의 목쉰 노래를 따라 나는 턴테이블 위를 둥글게둥글게 돌고 또 도는” 화자의 처지가 형상된다. 또 그 LP판 위에는 갈수록 “병사들의 시체가” 쌓여 “내 그림자 대신 발목에 매달려 질질 끌리” 게 된다.
강성은,「오, 사랑」
우리는 달려간다 중세의 검은 성벽으로 악어가 살고 있는 뜨거운 강물 속으로
연필로 그린 작은 얼룩말을 타고 죄수들의 호송열차를 얻어타고
우리는 달려간다 눈가를 검게 화장한 여배우처럼
글러브를 끼고 아스피린을 먹으면서
짧지도 길지도 않은 즉흥곡 사이를 우리는 달려간다
죽은 군대의 첫 전쟁터로 우리의 발자국이 잠든 사원으로
우리는 우리를 읽지 못해 장님이 되는 밤
어둠속에서 총으로 서로의 심장을 정확히 쏘는 마술
톱으로 잘라낸 피투성이 몸을 다시 이어붙이는 마술
오래전에 연주했던 악장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끝없이 반복되는 도돌이표를 우리 몸에 새겨넣고
우리는 달리면서 눈을 감는데
우리는 달려가는데
새들은 울면서 노래하고
강성은의 『오, 사랑』에서는 이와 같은 사랑의 고통을 “중세의 검은 성벽, 악어가 살고 있는 뜨거운 강물 속으로” 뛰어드는 장면들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그 상황을 “연필로 그린 얼룩말과 죄수들의 호송열차를” 탄다고 말함으로써 사랑이라는 불안정한 형태의 감정을 나타내고 있다.
“고작 하나의 마음, 감정일 뿐인” 사랑은 그에 상응하는 고통을 참아낼 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일까. 『해바라기 전쟁』에서 화자는 “더듬이가 잘려나간 귀뚜라미처럼 숨어서 울어야 했다.” “마을은 점령당하고, 해바라기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흩어진 해바라기들은 그마저도 얼굴과 몸이 분리되어서 사막에서 길을 잃고 헤맨다. 얼굴이 없는 해바라기를 해바라기라고 부를 수 있을까. “우리는 우리를 읽지 못하는” 즉 서로를 읽지 못하는 관계를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더듬이가 잘려” 방향감각을 잃은 귀뚜라미처럼 서로를 “읽지 못해 장님”이 되는 우리. 이렇듯 두 시가 연결되는 지점 역시 이별의 상처가 머무는 곳이다.
한편『오, 사랑』에서는 서로의 심장을 총으로 쏘기도 하지만 잘려진 몸을 붙이기도 한다. 사랑이라는 관계 속에서 서로를 읽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고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마술같이 서로를 치유하기도 한다. 『해바라기 전쟁』에서 슬퍼하지 않고 우는 법, 기뻐하지 않고 웃는 법을 배우고 있는 마리오네트는 “유쾌하고 분주하고 심각”하다. 사랑이라는 관계 속에서 실에 묶여 타인에 의해서만 움직일 수 있는 마리오네트는 상처를 받을 때도, 치유를 받을 때도 흔들리지 않기 위해 슬프지 않아도 울 수 있게, 기쁘지 않아도 웃을 수 있게 연습한다.
『해바라기 전쟁』에서는 병사들의 시체가 쌓여 어두운 땅을 밟으며 행군하고 있는 화자의 발목을 잡는다. 해바라기를 찾아나선 병사들이 죽어 집착이 된 것이다. 『오, 사랑』에서도 “죽은 군대의 첫 전쟁터로, 우리의 발자국이 잠든 사원으로” 화자는 달려간다. “아스피린을 먹으면서” 고통을 견뎌가며 달려간다. 우리의 발자국이 있는 곳으로. 과거의 그곳으로 말이다.
『해바라기 전쟁』의 화자는 한발 한발 무겁고 조심스럽게 검은 길을 걷고 있다. 시속에서 화자가 걸으면 노래가 흘러나온다. 그야 화자는 LP판 위에 서 있으니까 당연한 일이다. 판이 돌아가면 노래가 나온다. 그 “목쉰” 노래 때문에 계속 걷게 되는 것일까. 그 노래가 화자의 발목을 잡고 있다. 걸으면 나오는 노래가 걸음을 힘들게 한다. 『오, 사랑』에서도 끊임없이 반복되는 도돌이표로 인해 “오래전에 연주” 되었던 지난 기억이라는 제목의 악장들이 동시에 달려들고 끊임없이 들려온다. 돌아가는 LP판과 마찬가지로 그 노래와 기억은 화자를 행복하게 하거나 슬프게 만든다.
두 시는 비슷한 방향성을 지니고 있다. “돌고 도는 LP판”에서, “몸에 새겨진 도돌이표”에서 벗어나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 질문하고 있으며 두 시 모두 그 관계를 벗어난다기보다는 얽매여 있는 상황에서 끝을 맺는다. 『해바라기 전쟁』에서는 그 모습이 검은 비라는 실에 묶여 벗어나지 못하는 마리오네트로 형상화 되어있고, 『오, 사랑』에서는 눈을 감고 뛰어가는 화자의 뒤편에서 “울며 노래하는 새”들을 통해 표현되고 있다. 결국 화자는 여전히 도돌이표 속에서 갇혀있는 것이다.
“당신은 안전하십니까?”
이때 김중일은 섬뜩하게 묻는다. 당신은 이 사랑과 전쟁에서 안전하냐고, 혹은 전쟁 그 자체인 이 꼬리물기식 감정소비로부터 안전하냐고.
두 시의 화자들은 행군하고, 달린다. 어쩌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을까. ‘이젠 잘려나간 내 더듬이를 찾아야 할 시간이다. 이젠 몸에 새겨진 도돌이표를 지워야 할 때이다. 방향감각을 되찾고 둥근 길에서, 오래전 연주했던 악장으로부터 탈출 할 시간이다. 또 노래가 들리면 귀를 막아버릴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꼭 한번 진짜 웃음보이고 싶다. 꼭 두 눈을 뜨고 달려보고 싶다. 그때가 되면 끝없이 둥글게 도는 LP판의 음악소리도, 뒤편에서 슬피 우는 새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겠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