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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수정 Sep 18. 2023

오호, 통재(痛哉)라!

교사 수난 시대

오호, 통재(痛哉)라! 오호 애재(哀哉)라!  

아, 고통스럽고 통탄할 일이다. 아, 슬프고 슬프도다. 

요즘의 교육 현장을 한마디로 표현한 말이다. 어쩌다 교육계가 이렇게까지 나쁘게 변했는가? 


학교는 지식만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학생들의 바른 인성과 바른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가르쳐 주는 곳이다. 학부모와 함께 아이들이 올바르게 성장하도록 해 주어야 하는데, 왜 학부모는 담임 교사에게 함부로 대하고 교사는 학부모를 두려워하게 되었을까? 왜 학부모는 자식의 담임인 교사를 괴롭히는가? 아이가 잘못했을 때 조금이라도 교사를 존경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담임 교사에게 아이의 잘못된 행동을 사과하고 아이가 학교 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가정에서도 지도해야 한다. 왜 학부모는 교사를 존경하지 않을까? 자꾸 "왜?"를 되내이게 된다. 


40년 간 교육계에 몸담았던 나의 생각은 학생을 지도하는데 있어서 제일 우선은 가정교육이라 생각한다. 

가정교육과 학교교육이 연계가 잘 이루어져야 학생이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다. 가정에서 선생님은 부모이고, 학교에서 담임 교사는 부모와 같은 존재이다. 부모의 성격, 인성, 가치관 등을 아이들이 그대로 습득하여 학교에 보내지는데 부모가 선생님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험한 말을 하거나 욕을 하면 학생도 무의식적으로 그대로 따라하게 된다. 어떤 일이 있어도 부모는 아이들 앞에서 선생님을 험담하면 안 된다. 더구나 담임 교사를 고소하는 일은 절대로 해서는 안될 일이다. 아이가 무엇을 배우겠는가? 선생님을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좋은 인성을 지닌 부모 밑에서 좋은 자녀가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의 40년 교직생활 중, 요즘처럼 교사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 이 때에 기억에 남는 훌륭한 학부모(할아버지)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내 나이 40대 초반. 1990년대 처음 남자고등학교 2학년 담임을 맡았을 때의 일. 그 당시 남자고등학교에서 여선생님은 많지 않았다. 전근 간 첫 해 여선생님은 4명(양호교사, 음악교사, 미술교사, 그리고 나) 뿐이었다.

많이 긴장되어 생활 지도에 중점을 두고 학급 운영을 했다. 학기초 학생들에게 생활 태도에서 말썽을 피우면 학부모 소환이라고 하면서 아버지, 학생, 담임 셋이서 상담을 한다고 했다. 어머니는 안 된다고 했다. 그때의 나는 고등학생 정도의 아들들은 엄마 말은 안 듣고 아버지는 어려워한다고 생각했고, 그리고 아버지도 자식 교육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 때였다. 아버지를 학교에 오시라고 하는 것은 그 당시 학생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었다. 지금도 싫어하겠지만, 어쨌든 내 의도는 학교생활을 열심히 잘 하라는 의미도 있었다. 

몇 달은 신경을 쓰며 잘 하더니 좀 해이해졌는지 한 학생이 잘못을 했다. 어떤 잘못을 했는지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아버지를 학교에 오시라고 했다. 며칠 말없이 보내더니 아버지가 바쁘셔서 집에 늦게 오신단다. 나는 아버지가 몇 시에 퇴근을 하시는지 기다리겠다고 했다. 몇 번 더 채근을 했더니 할아버지가 오시면 안되냐고 했다. 괜찮다고 했다. 아버지에게 야단을 맞을까 봐 말씀을 못드린 것이다.


며칠 후 학생이 할아버지와 같이 교무실로 왔다. 

 담임(나) : (자리에서 일어나 옆자리를 가리키며) 안녕하세요, 여기에 앉으세요.

 할아버지 : (인사를 하며) 네, ** 할아버지입니다.

그러면서 자리에 앉지 않고 서 계셨다.

  담임 : (그 자리에 선 채로 다시 자리를 가리키며) 여기에 앉으세요.

  할아버지 : 네, 선생님 먼저 앉으세요.

나는 속으로 놀라면서 엉거주춤 하다가 먼저 앉았다. 그런 다음 할아버지가 앉으셨다. 그 당시 할아버지는 60~70대로 보이셨다. 그 분의 눈에는 담임은 한참 아래의 나이인데도 손자의 담임이라는 이유로 깍듯이 예우를 하시는 것이었다. 잠깐의 어른 둘의 행동을 학생은 옆에 서서 다 보았다. 

  담임 : **야, 지금 할아버지의 행동에서 무엇을 느꼈느냐?

  학생 : (반성하는 표정으로)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할아버지와 학생과 많은 상담을 한 후, 나는 할아버지에게 고맙다고 말씀을 드리고, **가 앞으로 잘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할아버지도 손자에게 신경을 더 쓰고 아들(**의 아버지)에게도 잘 말해 놓겠다고 하셨다. 다음 날 상담한 내용을 반 전체에게 말해 주면서 **를 칭찬해 주었다. 그런 이후 학급 학생들이 생활 태도에 모범을 보이면서 무사히 1년을 보내고 3학년으로 올려 보낸 기억이 있다. 


요즘 빈번히 일어나는 여러 사건들은 아동 인권을 내세우며, 교사가 학생들의 잘못을 정상적인 범위 안에서 지도하는데도 '아동학대'라는 말로, 아동의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일부 학부모들로 인해 나타나는 일이다. 어디까지나 이것은 학부모의 잘못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학부모들이 학력이 높아지고 지식은 많아졌지만, 지혜가 부족하고 자기 자식만 최고라 생각하는 근시안적인 생각이 낳은 결과이다. 수업 중에 교실로 들어와 큰소리를 내며 선생님을 야단을 치고, 자기 아이는 잘못이 없다고 선생님을 고소하고, 몇 년 동안 선생님을 괴롭히며 민원을 넣고, 그것이 자식을 망치는 길임을 생각하지 못하는 학부모의 어리석은 행동인 것이다. 어떻게 우리나라 교육계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지금은 고리타분한 말이 됐지만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 했고, '선생님의 그림자는 밟지 않는다'고도 했다. 그만큼 선생님을 존경한다는 의미이다. 그래도 옛날에는 '스승과 제자' '선생님과 학생'이었는데, 지금은 '선생과 학생' 관계이다. 존중의 의미인 '~님'은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가 없다. 자기 자식의 인권을 말하면서 교사의 인권은 생각하지 않는지 학부모의 몰상식과 욕심이 최악의 관계를 만들고 있다. 가정에서 부모가 올바른 가치관을 갖고 아이에게 기본적인 예의 범절을 가르치고, 선생님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충분히 대화를 하면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일들이다. 


내가 지금 교직에 있다면 나도 당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니 몸서리가 쳐진다. 학생 인권도 중요하지만, 교사의 인권도 매우 중요하다. 교사들이 밝고 건강한 마음으로 교육에 임해야 그 영향이 학생들에게 간다. 몇몇 비뚤어진 학부모들로 인해 교사들이 수난 시대를 맞고 있는데, 교사와 학생 모두가 안심하고 편안하고 즐겁게 

교육하고 교육받을 수 있는 날은 언제쯤 다시 올까? 


진관사로 올라가는 길 옆 언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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