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옛날 어린 시절에 살았던 집과 주변 동네가 어떻게 변했는지 보고 싶어서 친정 오라버니와 함께 다녀왔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랄까, 회귀(回歸)의 마음이랄까. 그런 마음이 계속 사라지지 않아 실행에 옮기게 되었다. 친정 오라버니도 세월을 무시할 수 없는 나이에 머리는 희끗희끗해졌고, 건장했던 몸도 많이 빠져 있어서 나이들었음을 실감하게 되었다. 각자 생활에 바빠 자주 만나지는 못하고 가끔 전화나 카톡으로 안부를 묻기도 했는데, 오랜만에 만난 모습에 마음이 많이 안 좋았다. 동생을 위해 시간을 내어준 오라버니에게 감사할 뿐이다. 나는 서울 태생이라 딱히 고향이랄 것도 없지만, 내가 결혼하기 전까지 살았던, 고향과도 같은 동네 만리동. 어린 시절 뛰어놀던 동네 골목이 어떻게 변했을까 상상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만리동으로 향했다. 50여 년이 지났으니 상전벽해(桑田碧海)라고 많이 변했으리라 생각하면서도 그때의 흔적이 조금은 남아 있을 것이라 기대감을 갖고 갔다.
지하철 4호선 회현역에서 만나 '서울 7017로'를 건너서 만리동으로 갔다.
큰길에서 동네로 들어가는 길에 있었던 병원은 없어지고 학원으로 변했고, 우리집으로 들어가는 골목길은 왜 그렇게 좁은지... 옛날에는 그렇게 좁지 않았는데 반으로 줄어든 것 같다. 우리집 앞에 커다란 마당이 있어서 친구들과 공기놀이, 고무줄놀이도 했던 공간은 너무 좁아져서 놀이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작아졌다.
우리집 대문은 미닫이문이었는데...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그대로 있어서 올라가 보았는데 다 협소하고 지저분했다. 우리가 성인이 되어서 그런지 모르겠으나 상상 밖의 모습이라 약간 실망을 했다.
집 안의 모습도 많이 변했을 텐데 부엌에서 연결된 좁은 길로 가면 앞마당에 꽃밭이 있었는데, 그대로 있는지, 허물고 방을 만들었는지... 아니면 새로 건물을 지었는지...
실제로 와서 보지 않고 어린 시절 동네 모습을 계속 상상하면서 지내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큰길 건너 동네는 아파트가 들어서서 옛날의 모습을 하나도 찾을 수가 없었는데, 우리가 살던 동네는 자그마한 흔적은 남아 있어서 그 시절의 추억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
아쉬움을 달래고 만리동에서 염천교 다리를 지나 남대문시장에 들러 점심을 먹고 시청으로 발길을 돌렸다.
남대문시장에 오랜만에 들렀는데 관광객들이 많아 북적거렸다. 점심을 먹으러 갈치조림집에 갔는데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며 그야말로 장사진이었다. 많은 사람들을 비집고 2층 다락방같은 방으로 올라가서 겨우 점심을 먹었다. 정말 맛집으로 이름날 정도로 음식맛은 있었다. 소화를 시킬 겸 시청으로 걸어 갔는데, 마침 시청에서는 편안한 곳에 앉아서 책을 읽는 행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편안하기는 하지만, 주위가 산만한 곳에서 책을 읽는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햇볕이 내리쬐고 집중이 되지 않는 환경에서 책을 읽는 행사를 하는 것은 보여주기식 행사인 것 같아 마음이 언짢았다. 그냥 잠시 쉬었다 가는 목적으로는 괜찮은 행사이다.
시청을 지나 우리의 발길은 광화문으로 향했다. 광화문까지 걸어 와 월대에서 마무리를 했다.
2023년 10월에 완전 복원된 광화문 앞 월대. 월대 맨 앞에는 상상 속의 상서로운 동물 조각상 2점이 장식되어 있다. 중고등학교 재학 시절, 또 직장생활을 할 때 광화문 앞을 자주 지나 다니던 곳인데, 월대가 만들어진 이후에는 처음 방문이다. 광화문 앞이 환하게 트여 있어서 시원해 보이고 서울 한복판에 옛 모습이 재현되어 있어 뿌듯했다.
다리도 쉴 겸 빵집에 들러 시원한 팥빙수를 먹으면서 오늘 하루를 정리했다.
만리동에서 광화문까지 걸어서 17,850 보(步). 어린 시절의 흔적을 찾아 내가 보고 싶은 곳에 와서 추억을 되새기는 것도 괜찮은 일이라 생각한다. 특히, 모처럼 친정 오라버니와 함께 한 하루여서 마음이 따뜻해지는 뜻깊은 날이었다. 둘 밖에 없는 우리 남매에게는 오늘 어린 시절 함께 지냈던 추억의 장소와 순간순간이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보물들이다. 그 추억은 앞으로 남은 우리의 삶 속에 행복과 감동을 주며, 지금을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되어줄 것이다. 추억을 가슴에 품고 따뜻한 마음으로 남은 삶을 살아가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