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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 산책로

by 어수정

이사를 한 후 집 주변의 탐색은 계속 되었다. 가까운 곳에서부터 좀 멀리 떨어진 곳까지 시간되는 대로 주변의 경치가 좋은 곳이나 생활에 필요한 장소를 찾아 다니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며칠 전 남편과 함께 동네 산책을 하면서 숲길에 낙엽이 떨어져 수북히 쌓인 모습에서 옛날에 읽었던 수필 '낙엽을 태우면서'에서 작가는 낙엽을 태우는 행위가 시간이 소멸하는 일이 아니라, 또 다른 생활의 활력을 찾아오는 일이라고 하였던 말이 떠올랐다. 낙엽은 마치 지금 인생의 끝자락을 향해 가는 나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낙엽이 떨어짐은 끝이 아닌 계속되는 삶의 과정을 말해주고 때론 삶에 추임새로 다가오기도 한다는 말을 생각하면서, 오늘따라 사그락거리는 낙엽 밟는 소리도 쓸쓸하기보다 무척 정겹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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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kaoTalk_20241111_194459640_04.jpg 낙엽이 수북히 쌓인 숲길


발길은 1시간 가량 계속 숲길 안으로 깊숙히 들어갔다. 한참을 걸어가다 보니 '고인돌 산책로'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그 산책로를 따라 한참을 걸어 올라가니 고인돌 1기와 좀 떨어져 2기~6기가 모여 있는 곳이 보였다.


{경기도 기념물 제129호인 지석묘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고인돌이라고도 부르며, 주로 경제력이 있거나 정치권력을 가진 지배층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4개의 받침돌을 세워 돌방을 만들고 그 위에 거대하고 평평한 덮개돌을 올려놓은 탁자식과, 땅 속에 돌방을 만들고 작은 받침돌을 세운 뒤 그 위에 덮개돌을 올린 바둑판식으로 구분된다. 경기도 파주시의 다율리, 당하리, 교하리가 인접한 구릉지대에는 100여 기가 넘는 고인돌이 무리를 지어 분포되어 있었는데, 군사시설이 들어 서면서 대부분 파괴되고 20여 기가 남아 있으며 그 중 6기는 보존 상태가 양호하여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후략>}

KakaoTalk_20241111_194459640.jpg 경기도 기념물 제129호 지석묘(고인돌)
KakaoTalk_20241111_194459640_01.jpg 지석묘(고인돌)
KakaoTalk_20241111_194459640_02.jpg 지석묘(고인돌)


내가 알고 있는 고인돌은 강화도에 많이 분포되어 있는 것으로, 4개나 2개의 받침돌 위에 평평한 덮개돌을 올려 놓은 모양만이 고인돌인 줄 알았는데, 이곳은 대부분 바닥에 돌을 올려 놓은 모양이었다. 설명이 없으면 그냥 커다란 돌들이 바닥에 있는 정도로만 이해했을 것이다. 고인돌의 주인들도 그 당시는 지배층으로 잘 살았겠지만, 지금은 돌로만 남아있는 모습이 인생무상을 느끼게 한다. 그래도 부유층으로 살아서 후대까지 고인돌로나마 흔적을 남겼지만, 그들의 삶은 행복했을까? 민초들은 아무 흔적도 없이 다시 흙으로 돌아갔을 것을 생각하니 ... 행복의 조건은 다 다르겠지만 예나 지금이나 삶의 모습은 비슷비슷한 것 같다.


무성하게 숲을 이룬 길을 남편과 함께 걸으면서 켜켜히 쌓여 있는 낙엽을 밟으며, 또 낙엽을 바라보며 마음 한쪽은 감상(感傷)을, 또 다른 한쪽은 활력(活力)을 갖는다. 만추(晩秋)를 보내면서 느낀 나의 단상(斷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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