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知者樂水 仁者樂山 (지자요수 인자요산)
(2) 知者動 仁者靜 (지자동 인자정)
(3) 知者樂 仁者壽 (지자락 인자수)
논어 옹야편에 있는 공자의 말씀이다.
(1)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
그러므로 (2) 지혜로운 사람은 동적이고, 인자한 사람은 정적이다.
그 결과 (3) 지혜로운 사람은 인생을 즐겁게 살고, 어진 사람은 인생을 길게 산다.
물은 때때로 잔잔한 형태를 유지하기도 하지만, 멈춤이 없다.
항상 아래로 흘러 가면서 새로운 세계를 만나고
큰 바위나 산을 만나면 정면으로 부딪치기도 하고
그것이 안 되면 우회하여 방향을 틀기도 하는 지혜가 있으며,
자신의 한계를 단정짓지 않고 시대와 환경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면서
결국은 더 큰 세계, 바다로 흘러간다.
지혜로운 사람도 새로운 것을 찾아 마음은 언제 어디서나 활발하게 움직인다.
물의 이런 특징을 의인화하여 지혜롭고 총명한 사람에 비유하기도 한다.
세상 만물을 끌어안은 산은 항상 그 자리에서 반겨준다.
눈이 오나 비가오나 바람이 부나 4계절을 오롯이 감싸고 있다.
그리고 지친 우리의 심신을 달래 주며,
우리에게 삶의 지혜와 자연의 섭리를 가르쳐 주기도 한다.
온갖 동물들이 산에 생채기를 내어도 산은 침묵하며 모든 것을 다 수용한다.
산에서 우리는 침묵의 위대함을 느끼고
인간의 한계와 분수를 깨닫고 자연의 위대함과 조화로움을 느낀다.
어진 사람의 마음은 세태의 변동에 움직이지 않고 동요하지 않는다.
어진 사람은 담담하고 고요한 마음 가짐으로 자신의 삶을 영위하여
변하지 않는 산과 비슷한 점이 있으므로 산을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흔히 사람들은 '지자요수 인자요산'하면서 물을 좋아하니, 산을 좋아하니 하고 묻는다.
물을 좋아한다고 하면 그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고,
산을 좋아한다고 하면 그 사람은 어진 사람이라고 단정한다.
이분법적으로 사람을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또 그렇게 판단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물과 산을 다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둘 다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마 둘 다 싫어하는 사람은 없겠지.
나는 계곡에서 흐르는 물소리는 시원하고 산뜻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깊은 바닷물은 왠지 무서운 느낌이 든다.
옛날 국민학교때 세계지도에서 깊은 바닷속 생물의 모습이 있는 부분을 보다가
가슴이 철렁! 충격을 받은 적이 있었다.
시커멓게 칠해진 바다의 모습을 보고 가슴이 쿵쾅쿵쾅하면서
서늘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부터 지도 책을 펴기가 두려웠다.
펼쳤을 때 시커먼 바다가 나오면 어쩌나? 하고
마음이 조마조마하면서 두려움이 컸었다.
어른이 되어 수영장에서 수영을 배우다가 깊은 곳에 가면
누가 나를 물 속으로 잡아 끌어 내리는 것 같아 무서워서
앞으로 나가지 못하여 결국 끝까지 배우지 못했다.
그러나 산은 항상 그 자리에 있다. 산에서도 무서운 느낌이 들 때도 있지만,
물에서 느끼는 무서움과는 다르다.
산은 포근하며 어머니의 품 속 같은 느낌이 더 많이 든다.
나는 물보다 산을 좋아한다.
젊은 시절, 동료들과 내설악에 갔을 때 대승령에서 백담사까지
가는 길에 날이 어두워져 길을 잃어 헤매며, 칠흑같이 어두운 계곡을
오르내리던 일로 나의 산행은 더욱 성숙해지고,
산은 잔잔히 나의 가슴속에 스승이 되고 친구가 되어
자리를 잡아갔던 기억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디음 등산 일정이 알려지면 일주일 전부터 가슴이 설레고 생활이 즐거워졌다.
그 당시 산은 나에게 생활의 윤택함과 활력소 역할을 했다.
산과의 친근하고 조화로운 관계를 체험하면서 마음의 자유를 느끼며(感),
산을 알고(知), 산을 좋아하고(好), 산을 즐기며(樂), 살아있는(生) 나로
남아있기를 바라며 꾸준히 산행(山行)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지금은 힘든 산행은 할 수 없고,
산을 바라보면서 동네 산책 등 걷기 위주로 대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