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수정 Mar 22. 2023

새 단장한 병풍

나의 20대는 말수가 적고 내성적인 성격으로 조용히 나만의 취미를 즐겼다. 그때 나는 서예에 심취해 있었다. 한문 서예, 한글 서예를 배우는데 즐거움이 있었다. 대학 3학년 때부터 한문 서예를 배워 20대 중반에는 나의 실력이 일취월장하여 1974년 결혼할 때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써서 8폭 병풍을 만들었다. 지금도 명절날 차례 지낼 때, 기제사 때 그 병풍을 쓰고 있다. 한글 서예는 교사 생활을 하면서 각종 상장, 졸업장의 이름을 쓰기도 했다. 그때 손목증후군으로 팔이 많이 아팠던 기억도 난다. 지금 다시 쓰라면 엄두가 나지 않는데, 그때의 난 참 대견스러웠다.


그리고 2023년, 49년 동안 사용해 온 병풍이 너무 많이 낡아 새롭게 표구를 하기로 했다. 옛 것을 그대로 보존하고 사용하는 것도 좋지만, 시간이 오래 되고 병풍 뒤가 낡아서 들어 옮길 때마다 버석버석 소리가 나서 몹시 조심스러웠다. 잘못하여 뒷부분에 조그만 구멍이 난 곳도 있다. 아무데나 맡길 수가 없어서 표구사 여러 군데를 알아보고 다니다가 인사동에 자리한 표구점 한 곳이 눈에 띄었다. 문화관광부가 지정한 문화재 보전 보수 수복 기능자, 한국표구협회 회장 역임, 노동부국가표구기능 심사위원, 인사동 전통문화보존회 감사직을 맡고 있으며, 유능한 기능 보유자가 직접 운영하는 표구점이다. 자신의 일에 자부심이 있어 보여 믿고 맡겼다. 


한 달 정도가 걸린 병풍은 새롭게 단장하고 나에게로 왔다. 마치 목욕재계하고 나온 새색시를 맞이하는 기분이었다. 눈이 번쩍 뜨이고 마음이 환해지는 것 같았다. 앞으로도 명절날 차례 지낼 때, 기제사 때 병풍을 쓰겠지만, 자식에게도 물려 주어 계속 사용하기를 바랄 뿐이다. 자식 대대로 쓰다보면 그것이 바로 가보(家寶)가 되지 않을까?

 

갑인년에 내가 직접 쓴 병풍, 도연명의 '귀거래사'
작품 보수 과정
새로 단장한 병풍


매거진의 이전글 인사동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