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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들레 Feb 28. 2022

‘나 혼자’ 병이 언제쯤 완치될까요?
-집단상담의 힘

2012.09 계간 <니>28호 '상담, 함께 변화하고 성장하다'

    

심리상담 before&after? 이 주제에 관해 난 아직 쓸 말도, 할 말도 없다고 생각했다. 분명 정은선은 2011년 10월을 기점으로 변화하고 있겠지만 지금의 나는 뭐라고 딱히 할 말을 찾기 힘들다. 변하긴 했으나 미진한 것 같아 말할 거리가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내가 자신의 변화를 너무나 과소평가했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왜 그랬는지 이유를 약간은 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 이 글을 쓴다. 


얼마 전 친구와 통화할 때 친구가 나를 보면 집단상담의 힘이 느껴진다며 자신도 곧 나와 같이 알트루사 나오겠다고 했다. 그런데 내 반응은 시니컬하게 ‘내가 뭐 그렇게 많이 변한 거냐’며 시큰둥한 모습이었나 보다. 그랬더니 친구는 그동안 얘기는 못 했는데 자기 얘기를 들어주는 태도가 달라졌단다. 서로 힘든 일, 가족 일을 거의 다 털어놓는 친구인데 나라면 감당할 수 없었을 힘든 일을 겪은 친구이기에 가끔은 얘기 내용이 내 깜냥으론 받아주기 힘들다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런 내 마음을 들켰구나 하는 느낌과 더불어 내가 변한 게 맞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도 글로 쓸 만큼 변한 건 없다고 느끼면서 <니>에 글을 쓸 수 없어 슬펐던 이유는 뭘까? 지금의 내가 느끼기에는 그 변화한 모습들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원래 내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일까? 내게는 눈물을 확 쏟으며 큰 깨달음을 얻는 드라마틱한 순간이 없어서였을까?  


오늘에서야 느낀 건 내가 아직도 과시하고 싶고, 보여주고 싶어 하는 사람이란 사실이다. 우리는 모두 특별하다는, 알트루사에서는 너무도 당연한 얘기를 다시금 생각해본다. 내가 그렇게 억지로 만들어 보여주지 않아도 나는 이 세상의 유일한 존재이며, 특이하게 태어났다는 사실을 몰랐다. 나에게는 나만의, 그것도 남들이 멋지게 생각하는 특별한 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동안 나에게는 내세울 만한 장점이 없다고 여겨 일부러라도 만들어 내야겠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특별해야 하는데 이 정도는 너무 남들과 비슷하다는 생각. 그래서 남들과 확실히 다른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 순간순간 나를 스치고 가다 보니 내 속에 있는 것들을 창피해서 못 꺼내놓겠다는 태도였다. 난 더 멋있는 사람이고 싶은데 그렇지 않아서 속상하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척, 속에 뭐가 더 있는 척하며 웃고 있는 때가 많았던 거다. 나를 보여주는 순간 평범해져서 나에겐 아무것도 특별한 것이 안 남게 될까 봐, 사람들이 보기에 멋있고 특이한 점이 없는 사람이란 걸 들킬까 봐 두려웠다. 사실 지금도 두렵다. 병이 아닐까 느낄 정도다.


이 병 이름을 ‘나 잘난’ 병으로 지으려다 ‘나 혼자’ 병으로 지었다. 누구에게 의지하는 건 약한 모습이고 혼자 서야 한다는 의식이 아직도 내 마음에 깔려 있다. 힘들고 어려우니 도움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하는 내 자신이 참 어색하고 못나게 느껴진다. 남편한테 미리 도와달라고 요청하지 못하다가 나중에 도와주지 않은 것에 화나고 서운해한다. 거기에는 나는 잘난 사람이어야 한다는 강박이 숨어 있다. 혼자서도 잘 이겨내는 사람, 누가 봐도 멋있는 면이 있는 사람, 표현도 정확함을 넘어 절묘하게 잘하고 글도 잘 써야 한다는 생각. 이런 이상적인 모습에 지금의 내가 따라주지 못한다고 혼자 생각하고 혼자 실망하는, 매일 쳇바퀴 같은 생각 속을 헤매고 있다. 알트루사에서 배운 대로 내 마음에 충실해야지 하면서도 그 마음이 남들 보기에 보잘것없지 않을까 해서 그 마음을 펴보이기 부끄럽고 숨고 싶었음을 알았다. 


작년 10월 정말 터져버릴 것만 같은 마음으로 알트루사의 문을 두드렸다. 나를 이곳으로 이끈 것은 문은희 선생님이 쓰신 <엄마가 아이를 아프게 한다>였다. 책에 나온 얘기 하나하나에 공감했고 엄마들에게 단순한 위로가 아닌, 진정한 위안을 주는 단서가 숨어있다고 느꼈다. 심지어 읽은 사람 모두를 알트루사로 향하게 하는 홍보서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당신도 바뀌고 싶어? 바뀔 수 있어! 이런 곳이 있는데도 안 와볼 텐가?’ 이런 목소리를 들었고 여기를 찾아왔고 이젠 문 선생님의 진짜 목소리로 얘기를 듣고 있다. 지금 생각하면 문 선생님의 아이 같은 천진함도 느껴졌었다. 


당시의 힘들었던 내 상황을 간단히 얘기해보자면 육아 스트레스에, 바쁘고 무심한 남편과의 갈등이 깊어졌고 출산 후 경력단절 때문에 생긴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인가에 대한 질문과 의문이 떠나지 않았다. 게다가 시어머니에 대한 반발심으로 인해 도대체 결혼은 왜 했을까, 그리고 왜 하필 이 사람이랑 했을까 후회하는 나날들이었다. 결혼하고 아이 낳고 남편과 살며 좋은 날들도 있었겠지만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오히려 현재의 생활을 전혀 의미 없다 여긴 채 우울하고 불행했던 많은 날들만 되새기고 남편에 대한, 나에 대한, 그리고 나를 이렇게 만든 누군가들에 대해 불평불만에 빠져 살았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불만이었지만 무엇보다 나 자신에 실망해서 거기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난 왜 어려움을 지혜롭게 헤쳐 나갈 수가 없지, 왜 그렇게 못났지 하는 생각을 하다 보면 엄마 자격도 없다는 생각도 들고 이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회의만 들었다. 


아이와 처음으로 힘겹게 집단상담 모임에 나갔을 때 아이와 어른들이 이렇게 편안하게 같이 있을 수 있는 모임이 있구나, 놀라웠다. 나 또한 편안한 기분을 느꼈다. 자신의 솔직한 얘기를 하며 눈물 흘리는 사람들을 보며 나도 저렇게 마음속의 돌멩이들을 녹여내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동안 살아오며 원했던 진정한 나를 여기서 발견할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며 희망의 빛이 보였다. 집단상담을 다룬 미국 소설을 읽으면서 얼마나 부러워했던가. 거기 나온 일반인들이 어찌나 유식하고 자기 느낌에 충실한지 부러우면서도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게 가능할까 싶었다. 그러다가 알트루사 집단상담에 오고 나서 그동안 내가 얼마나 모르고 살았나, 내 주변 사람들을 얼마나 무시하고 살았나를 깨달았다. 모람들 모두 자기를 알기 위해 대단한 노력을 하고 있으며 자기표현은 얼마나 수준급인지... 


지난 9개월간 알트루사라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 알트루사에 많이 오려고 노력했다. 신랑과 사이가 안 좋거나 아이하고 지내다 문제가 있으면 심란한 마음을 카페에 올리기도 한다. 아이와 함께 지하철 타고 와서 뜨개질도 했고 집단상담은 꼭 참석하려고 노력한다. 재미있는학교, 미술치료에도 참여했다. 계간지 <니> 교정 보는 일도 즐겁게 하고 있다. 알트루사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정기총회와 창립기념회에 참석해서 기분 좋은 경험을 했다. 신랑은 대학 다닐 때보다 더 왕성한 활동을 하는 것 아니냐며 좀 부러워하는 것도 같다. 


집단상담 첫 시간 둘째를 낳으라는 모람들의 말에 지금 남편의 애는 도저히 낳을 수 없다고 강하게 얘기했고, 다음 시간에는 다른 사람들이 시댁 얘기하는 틈에 육아에 간섭하는 시어머니에 대한 나의 불만을 봇물 터지듯 쏟아놓았다. 나중에 녹취파일을 풀면서 그때의 내 목소리를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손발이 오그라들고 얼굴을 들 수 없었다. 목소리 자체가 지금과 다르다. 그리고 생각하는 방식도 다르다. 결혼생활에서 나만의 기준을 남편에게 얼마나 강요해왔는지 깨닫고, 내가 그 사람과 어떤 마음 상태로 결혼했는지 깨닫고, 남편을 내 식으로 평가하면서 바꾸기 위해 얼마나 어설프게 시도했었는지 깨달으면서 나의 고집, 오만함을 인정하게 됐다. 변화의 계기를 정확하게 기억할 수는 없다. 다만 해가 바뀌고 집단상담에 참여할수록 알트루사 모람들의 반응이 나에게도 당연하게 일어난다. 각자가 유일하고 독특하며 그 마음을, 느낌을 서로 소통하며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혼자서는 할 수 없고 함께 해나가야 하는 것. 남편, 아이가 곧 내가 아니라 내 세계와 그들의 세계가 만나는 것이 관계라는 것, 그리고 각자의 세계를 존중하면서 소통하는 방식을 매시간 배운다. 


그렇게 배우며 변해가면서도 아직 ‘나 혼자’ 병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알트루사와 조금 거리를 뒀다 싶으면 ‘할 수 있을까 병’과 ‘만사 귀찮아 병’이 심한 감기처럼 혹독하게 지나간다. 난치병이 아닐까 걱정도 되지만 알트루사와 함께라면, 집단상담 주사를 계속 맞는다면 언젠가는 완치되지 않을까 희망해본다.     

 

정은선 -멋진 사람이고자 하지만 아직 자신의 멋진 면을 잘 모르는 사람. 남편과 네 살배기 세훈 씨와 살고 있다.   joy_aglin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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