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2. <니>29호 '첫 단추 잘 끼워야!-임신,출산,양육'
요즘 세훈이와 나는 서로 미안해한다. 특히 잠들기 전. 세훈이가 나한테 먼저 얘기할 때도 있다. 엄마 미안해요. 그 얘기를 들은 나는 니가 뭐가 미안하냐고 엄마가 미안하다고. 소리 지르고 화내서 미안하다고 얘기하면 기다렸다는 듯한 녀석의 반응. 그날 하루분의 사과를 받고 나야 잠이 드는 것도 같다.
알트루사를 다니기 전보다 지금 소리는 더 많이 지르는 것 같다. 창피하지만 사실이다. 아이가 자라면서 내 참을성은 점점 더 짧아진다.
아이를 뱃속에 품고 있을 때, 그리고 낳아서 품에 안은 첫 몇 개월간은 아이에게 화를 낸다는 건 생각도 못했었다. 난 부족한 엄마,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은 항상 있었지만 결정적으로 아이에게 미안하다 느낀 계기가 있었다.
아이를 낳고선 모유수유에 집착했었다. 모유수유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고,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믿음이 어느 순간 덜컥 들어찼다. 내가 바이블로 여기던 육아서에 나온 대로 아이가 하루에 몇 번, 몇 분 동안 젖을 먹는지 기록하고, 똥싸고 오줌싼 횟수도 다 기록했다. 아이와 같이 있고 싶단 마음보다는 모유수유에 성공하려면 그렇게 해야 한다길래 거의 대부분 모자동실 상태였다. 젖 물릴라 치면 얼마 안 돼 잠이 든 것 같은 아이를 깨우려 노력도 하고 언제 깰까 아이만 쳐다보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처음엔 그리 무리되진 않았고 재미있기도 했다.
그런 상황은 병원 산후조리를 마치고 친정에 가 있은 후 집에 돌아와서도 계속됐다. 밤에 잠을 못 자는 게 힘들었고 그보다 아이가 내 젖을 제대로 빨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서 괴로웠다. 젖 먹으면 잔다는 신생아시절에도 아이는 자지 않았다. 그리고 아이를 굶긴다는 시댁 쪽 얘기도 괴로웠다. 아이가 먹고 싶은 양껏 못 먹으면 성격 버린다는 얘기도 신경 쓰였다. 그래서 분유를 먹이되 최소한만 먹이려고 하루 종일 버티다 아이가 안 자는 밤이면 분유를 먹였다. 그러면 아이는 온종일 굶기라도 한 듯 분유를 벌컥벌컥 먹었다. 난 모유가 부족한 게 틀림없다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젖양을 늘리고 아이가 바른 자세로 잘 먹게 할까 고민이었다. 비싼 유축기를 빌리고 아이가 입을 크게 벌려 물지 않은 것 같으면 빼고선 다시 물게 했다. 그러던 중 아이가 젖 먹기를 거부했다. 정확히 얘기하면 내 젖꼭지 빠는 것을 거부했다. 젖 먹이려 안기만 하면 아이가 질겁을 해서 난 유축기로 짜서 먹이고 하느라 점점 더 힘들고 어떻게 해야 하나 겁이 났었다. 그래서 급하게 검색해서 모유수유 전문가라는 사람을 출장 오게 해서 교육도 받았다. 그 사람이 같이 있을 땐 잘 빨던 아이가 나와 둘이 있을 땐 여전히 거부했다.
그러다 내가 믿던 육아서 저자가 하는 모유수유 클리닉에 가게 됐다. 젖 물리는 자세도 좋고 아이도 잘 크고 있다고 했다. 조금 안심은 됐지만 아이가 잘 먹고 있는지 잘 크고 있는 건지 의심이 되는 밤이면 아침이 되자마자 콜택시 불러 상담하고 아이의 몸무게를 쟀다. 돌 되기 전까진 그 클리닉을 다니며 내가 의심가는 것, 궁금한 시시콜콜한 것들을 다 물어봤다. 선생님의 괜찮다는 대답을 들어야 괜찮은 거 같았다.
남편은 그런 나를 제지하진 않았지만 이해하진 못 했다. 육아서에 의존하고 시어머니 말은 듣지 않으면서 의사 말은 신봉하는 나에게 아이를 사랑하지 않아 그런다고 했다. 사실 난 아이를 사랑하는 건지 아닌지도 잘 모르겠는 상황이었다. 아이가 뱃속에 생겼을 당시는 이질감이 너무 심했고 세상 모든 것들이 아이와 임신한 나에 대해 적대적이라 여겨져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태어나고 나서는 내 방식의 모유수유를 고집해 아이가 힘들어했다고 여겼다. 그러고 나니 난 모성이 깊지도 않은, 엄마 자격이 없는 사람인가 싶어 우울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난 아이에게 미안했다. 전엔 누가 언제 제일 행복했냐고 물으면 난 백일 되기 전 아니었을까 대답했다. 그런데 세훈이는 그와는 정반대였다는 생각에 정말 미안했다.
미안한 마음은 완전히 모유만 먹이고도 잘 자란다는 확신이 들고 이유식 먹고 앉고 서는 것을 보면서 서서히 없어지는 듯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미운 마음이 드는 거였다. 그것도 이유를 찾자면 모유수유. 밤에도 2-3시간으로 젖을 먹고 먹다 깨물기도 하고 그러려니 하다가도 불쑥 화가 났다. 이게 뭐 하고 있는 건가 싶기도 했다. 그래도 화를 내진 않았다. 그러다 화를 낸 건 아이가 유리컵을 던져서 깼을 때였던 거 같다. 몇 번 제법 잘 들고 있길래 머그컵을 줬는데 던지고 깨진 쪽으로 자꾸 가려고 했다. 소리를 질렀는데 세훈이가 아주 깜짝 놀라 울었다. 아이한텐 그러지 않는다는 마지노선이 무너진 듯 한 번 소리를 지르자 비슷한 일이 생길 때 참지 않고 지르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러고선 밤에 애가 잠들면 미안해하고 후회하는 일이 반복됐다.
세훈이한테 직접 미안하다고 얘기한 건 알트루사를 다니고 나서부터인 듯하다. 처음엔 알아듣나 싶기도 했지만 점점 눈빛이 알아듣는 것 같았고 이제는 미안하단 말을 주고받기까지 한다. 미안할 일을 저지르지 않으면 될 텐데 싶지만 나도 훈이도 어쩔 수가 없다. 난 가끔 훈이를 보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몸이 너무 처질 때, 재미있는 책을 볼 때, 숙제해야 할 때 등등. 그리고 지금은 지난 일이지만 세훈이가 우유나 물을 엎질렀을 때, 쉬통에 쉬를 할 만도 한데 그냥 서서 오줌쌀 때는 정말 죽일 듯이 소리를 질렀다. 걸레로 닦고 오줌 절은 옷을 빨고 하는 게 정말정말 귀찮고 짜증이 났었다. 너무나도 내 중심으로 생각했던 것 반성한다. 아이가 뭐 엎지르고 오줌싸고 하는 게 당연하다는 건 알겠으나 그걸 처리하는 일을 내가, 나만 해야 하는 게 싫었다. 애가 그런 실수를 덜 하는 게 아니라 점점 더 많이 한다는 생각에 일부러 그러는 건가 싶기도 했다. 지나고 나니 한때라는 말을 알아듣겠으나 당시에는 아이가 정말 자랄까 싶었다. 매일 자라는 게 보여 신기하던 날들이 지나 그날이 그날 같고 그래서 지겹고 그랬었다.
지금도 가끔씩은 세훈이랑 있는 것이 지겹다 느낄 때가 있다. 아이랑 같이 있다기보다 뭐를 해줘야 한다는 마음에 괜히 더 하기 싫기도 하다. 싫을 땐 아이에게 짜증도 낸다. 그러다 정신 차리고 아이의 얼굴도 살피고 미안하다 사과한다. 아직 내 수준은 여기까지다. 그래도 지금은 난 다른 엄마보다 짜증을 더 잘 내고 소리도 더 잘 지르는 엄마지만 내 나름 아이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 노력해야 할 부분이 분명 있지만 지금 내 상태를 자학하진 않게 됐다. 아직도 가끔씩 잘못하고 있단 얘기를 들으면 확 흔들리고 그러다 보면 다른 사람이 훈이 엄마였으면 좋았겠다 싶기도 하다. 하지만 날 보며 환하게 웃는 아이 얼굴을 다른 사람 말보다 더 믿게 됐다. 좋은 엄마가 되겠다고 안 좋게 느껴지는 내 모습을 무조건 덮어 버리지만 말고 서서히 나다운 좋은 엄마로 바뀌고 싶다. 아이에게 무조건 화내지도, 무조건 미안해하지도 않는 엄마, 아이와 함께 있어 더 행복한 내가 되고 싶다.